이지안 mulu@kdlpnews.org
지난달 13일 발생한 여중생 미군장갑차 압사사건과 관련, 정부가 10일 미군 측에 재판관할권 포기를 요청함에 따라 주한미군사령부는 형사재판 포기 요청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11일 공식 발표했다.
법무부가 주한미군사령부에 재판권 포기를 요청한 것은 지난 91년 한미행정협정 (SOFA) 개정 이후 이번이 처음. 따라서 이번 결정은 그 의미가 크다.
그러나 정부가 재판권 포기 신청을 1차적 형사재판권 포기요청 마감 하루 전인 10일까지 미뤄왔던 점은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정부는 미군측 사건 관련자 2명의 과실을 인정, 기소한데다 한국 수사기관의 조사에도 응하기로 하는 등 긍정적 자세를 보임에 따라 재판권 포기요청을 미뤄왔다고 밝혔지만, 만약 마감일인 11일에 재판권 포기요청을 할 경우 시간이 늦어 공소시효가 어려운 상태에서 이같은 늑장 대응을 결정한 것은 아무래도 여론의 눈치를 살폈다는 증거.
적당히 얼버무리고 묻어두려 했다가 시민사회단체에서 들고일어나 여론이 나빠지면 그때서야 허둥대며 진화에 나서는 정부의 기존 방식을 계속해서 지켜봐 왔던 시민들이 “시민사회단체의 압력이 없었다면 정부가 재판권 포기신청을 했을까 의심스럽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또한 사건 발생 직후 대책위는 한국정부와 미군 측에 △부시 대통령의 공개 사과 △미군 장갑차 여중생 치사사건 및 전동록씨 감전 사망사건에 대한 전면적 재조사 및 가해자 처벌과 철저한 배상 △미군측에 대한 정부의 형사재판권 포기요청 제기 △유족과 사회단체 대표들이 참여하는 공동진상조사단 구성 △사고부대 캠프 하우즈의 폐쇄와 철저한 사고재발방지대책 수립 등을 요구한 바 있으나 지금껏 제대로 지켜진 것이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해 정부차원의 전면 재조사를 주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미군들의 잘못에 대한 1차적 재판권을 미군이 갖고 있는 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힘들다고 말한다. 소파 22조 3항에는 미국의 재산·안전에 관한 범죄는 미국이, 기타 범죄는 한국정부가 1차적 재판권을 갖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협정에 추가된 합의의사록에는 한국정부가 1차적 재판권을 갖는 경우라도 미군의 요청에 따라 재판권을 포기할 수 있도록 돼있다. 실제로 미군측은 지금까지 대부분의 범죄에 대해 한국에 재판권 포기요청을 해온 바 있다.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미군이 저지른 전체범죄 3백76건 가운데 경찰과 검찰 등 우리 수사당국에 의해 재판권이 행사된 경우는 26건(7.01%)뿐이었다.
이에 대해 이승헌 민주노동당 통일국장은 “우리나라가 재판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소파 협정 자체가 가장 큰 문제”라며 “미군 법무부에 재판관할권 포기를 요청한 것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이번 일을 계기로 불평등한 소파를 개정해야 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지금 그럴 의사가 전혀 없다. 사실 정부의 이런 태도가 가장 큰 문제다.
[ 96호] 7.15 ~ 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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