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아 dodani@kdlpnews.org
“시의회 의장 선거를 하는데 후보자도 없고 추천자도 없는 상태에서 공란에다가 이름을 쓰라니요. 1백2명 의원들 얼굴도 다 모르는데 누굴 씁니까. 초등학교 반장선거도 이런 식으로는 안해요.”
민주노동당으로는 처음으로 서울시의회에 진출한 심재옥(36·공공연맹 정치국장·사진) 의원은 의회가 열린 첫날부터 ‘열’이 받았다. 서울시의회 임시회기가 시작된 지난 9일. 시의회 의장단 및 운영위원 선출을 하는 이날 심의원은 처음부터 모든 게 생소하기만 했다.
제6대 서울시의원 1백2명의 정당별 분포를 보면 한나라당 87명, 민주당 14명, 민주노동당 1명으로 한나라당이 전체의석의 85.3%를 차지하고 있어 처음부터 ‘독주’가 우려되는 상황이긴 했다. 1백2명 중 유일한 민주노동당 의원으로 본회의장에 앉아 있는 심의원은 정말 “황량한 벌판에 혼자 서 있는” 느낌이었다.
벌판에 홀로선 느낌
오전 10시. 임시의장이 의장 선출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의장에 출마하겠다는 후보도 없었다. 누가 의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추천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냥 공란에다가 자기가 생각하는 의장 후보를 적으라는 것이었다.
더 황당한 것은 투표 결과. 한나라당의 이성구 의원(4선)이 95표로 당선된 것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선거는 계속됐다. 부의장 선거에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소속 의원이 한명씩 나란히 당선됐다.
부의장 선거가 끝나고 당선자가 앞에 나와 인사를 하는 동안 사무처 직원이 의원들 책상 위에 종이 한장씩을 놓고 나갔다. 14명의 이름이 적힌 ‘운영위원 선임 명단’이었다. 선거도 안했는데 명단이 벌써 나왔다니.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사무처 직원에게 발언신청서-발언하기 위해서는 미리 신청서를 받아다가 어떤 발언을 할 것인지를 적어 의장에게 제출해야 한다-를 갖다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신청서를 갖다주겠다던 직원이 감감무소식이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직원은 심의원이 신청서를 요구한 사실을 ‘윗선’에 ‘보고’를 했고 한참만에야 민주당 대표교섭 위원이 심의원에게 다가와 “교섭단체간 협의를 통해 나온 명단”이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
겨우겨우 신청서를 얻은 심의원은 선거과정에 문제가 있어 의사진행 발언을 하겠다는 내용의 발언신청서를 적어 직원을 통해 의장에게 제출했다.
“심재옥 의원께서 제출하신 내용은 원활한 회의진행을 위해 운영위원 선출 뒤에 논의키로 하겠습니다. 그럼 원안대로 통과시키고자 하는데 이의 없습니까.”(의장)
“이의 있습니다.”
본회장은 일순 조용해지면서 모든 시선이 심의원에게로 쏠렸다.
“지금 안건처리중이니 회의 진행에 협조를 해주시기 바랍니다.”(의장)
“상정된 안건에 대한 의사진행 발언입니다. 의장님, 발언하게 해주십시오.”
단상 앞으로 걸어나오며 심의원은 속으로 혼자말을 하면서 떨리는 가슴을 가까스로 진정시켜야만 했다. ‘심재옥, 너 민주노동당에서 처음으로 나와 발언하는 거야. 실수하면 안돼. 천천히, 또박또박….’
“존경하는 시의원 여러분 그리고 의장님. 오늘 저는 정말 많은 기대를 안고서 의회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후보도 없고 정견도 없는 의장단 선거를 지켜보면서 어떻게 이렇게 선거를 치를 수 있는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14명의 운영위원 명단이 미리 나온 것을 보고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도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명단이 나와버려 저는 참여 기회조차 박탈당했습니다….”
‘서울시의회 교섭단체 및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관한 조례‘에 따르면 상임위 배정과 관련, 비교섭단체 의원의 경우 의장이 먼저 해당 의원의 의사를 물어 상임위에 배정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상임위원회는 10∼15명까지 구성할 수 있게 되어 있으므로 14명 외에 한명을 더 추가해 배정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주민의 뜻으로 이 자리에 와 있습니다. 의원 여러분들께서 부디 현명하게 판단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심의원의 발언 내용은 차후에 반영하기로 하고 원안대로 통과시켜도 되겠습니까.”(의장)
“네.”(심의원을 제외한 전원)
심의원은 할 말을 잃었다. 결국 심의원은 이날 모든 선거에서 투표에 기권을 해야만 했다. 운영위원장 선출까지 끝내고나서 몇몇 의원들이 심의원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심의원님, 아까 말씀 잘하십디다”
“저도 한나라당이지만 이건 좀 너무해요”
“심의원님, 저도 심의원님 말씀에 1백% 동감합니다.”
진심일까, 그냥 해보는 말일까.
명함 찍어온 의장
오후 4시. 회의가 끝나고 개원축하 리셉션이 열렸다. 이명박 서울시장과 의장은 의원들과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쪽에서는 의장 보좌관이 의원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명함을 나눠주고 있다. ‘서울시의회 의장 이성구’. 세상에. 바로 좀 전에 의장에 선출된 사람의 명함에 ‘의장’이라고 선명히 찍혀 있었다. 회의도 하기 전에 물밑으로 의장단과 운영위원장, 운영위원을 나눠먹더니 아예 명함까지 미리 찍어놓았던 것이다.
3일 뒤인 12일 속개된 회의에서는 심의원 대신 한나라당 의원 한명이 운영위원으로 추가되었다. 심의원의 발언이 “반영된” 결과가 그랬다. 그래도 상임위 배정에서는 1차 지망이었던 재정경제위원회에 배정될 수 있었다. 첫날 그런 ‘소동’이 없었더라면 이것 역시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심의원은 생각한다.
심의원은 요즘 회기가 시작되고 나서 매일 의사과에 서너번씩 전화를 걸고 있다. 초선의원이라도 한나라당, 민주당 의원들은 선배의원들이 챙겨주지만 민주노동당의 유일 의원인 심의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혼자서 판단하고 혼자서 배워야 하기 때문.
서울시 현안을 알기 위해 지난해 행정사무감사자료를 찾아보고 싶었으나 사무처로부터 “보관용 외에는 없다”는 답변만을 들었을 뿐이다. 어디에 가야 어떤 자료를 찾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마디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다.
“의회에 첫 출근해 이렇게 황당함을 느낀 사람이 과연 당에서 저 혼자뿐이었을까요. 반장선거보다도 못한 의장단 선거, 국민들이 알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서울시만 이런게 아니라면 전국적으로 당이 문제제기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이 아닐까요. 중앙당에 정말 부탁드립니다. 우리당 소속 의원들이 첫 임시회기 동안 어떤 걸 느꼈고 무엇을 했는지 현황부터 파악해주세요. 중앙당에서 박사급 정책위원을 모셔서 의원들 정책지원을 하겠다고 하는데 벌판에 홀로 나가 있는 의원들에게는 ‘박사’가 필요한 게 아니에요.”
[ 96호] 7.15 ~ 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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