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장갑차에 깔려 죽은 효순·미선양, 진실은 밝혀질까?

법무부 “미군에 재판권 포기” 요청 ― 포기 여부는 미군의 재량


지난 6월 13일 오전 10시 45분경,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56번 지방도에서 미2사단 44공병대(캠프하우즈) 소속 미군 장갑차(운전사 워커 마크 병장, 36세)가 앞서가던 여중생 신효순?심미선(14세, 조양중 2년)양 두 명을 치어 그 자리에서 숨지게 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효순·미선양은 6·13 지방선거가 치러지는 임시 공휴일을 맞이해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 생일잔치에 가기 위해 왕복 2차선 도로(편도 3.3m)의 갓길을 걸어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미군 장갑차의 차체가 갓길로 들어서면서 앞서가던 신양 등의 몸을 장갑차의 오른쪽 궤도 부분이 그대로 밟고 지나가버린 것이다.

미군의 자체조사 결과는 거짓말로 판명

6월 19일 미2사단은 자체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장갑차가 시속 10km의 저속주행을 하고 있었으나 소음 때문에 사람이 있다는 선임자의 경고음을 운전자가 듣지 못해 일어난 사고라고 밝혔다.
사고가 난 장갑차는 운전자의 시야가 오른쪽 전방으로 45도 정도 가로막히게 되어 있다. 따라서 운전자의 오른쪽에 탑승한 선임자가 각종 통제를 하게 되어 있다. 미군측은 선임탑승자가 두 여학생을 발견하고 운전자에게 정지 명령을 내렸지만 “소음 때문에 운전자가 듣지 못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 곧 밝혀졌다. 미2사단측이 의정부 경찰서에 넘겨준 사고 운전자의 진술조서에는 “운전자가 본부와 교신을 하고 있어 정지명령을 듣지 못했다”고 되어 있었다. “소음 때문”이라던 19일 미군 발표가 명백한 거짓임이 드러난 것이다.
그런데 교신을 하고 있어 선임탑승자의 명령을 듣지 못했다는 주장 또한 신뢰하기 어려운 것이다. 궤도차량에 쓰이는 일반적인 무선장비 체계는 운전자가 본부와 교신 중이라 하더라도 선임탑승자의 무선이 먼저 들리도록 되어 있는 게 상식이기 때문이다.

15m 전방에서 급하게 갓길로 접어든 흔적

무언가 사실을 숨기고 있는 것이 분명한 미군 측의 불성실한 태도로 인해 사건의 진상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는데, 다만 지금까지 다음의 사실들이 확인되고 있다.
먼저 사고가 난 곳은 도로 폭이 3.3m밖에 되지 않아 너비가 3.65m에 달하는 장갑차가 중앙선을 넘어서 다닐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미군 장갑차들은 평소에도 중앙선을 넘어 다녔다.
또한 사고지점 15m 앞에서 장갑차가 급하게 도로 바깥쪽으로 방향을 바꾼 흔적이 확인되었다. 중앙선을 넘어서 달리던 장갑차가 마주오던 장갑차를 피하기 위해 갑자기 갓길로 접어들며 여중생들을 덮친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시속 10km의 장갑차를 피하지 못했다?

그러나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15m 전방에서 장갑차가 급하게 갓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면 앞서가던 효순·미선양은 왜 전혀 피하지 못했느냐는 것이다. 그것도 한 사람도 아니고 두 사람이 한꺼번에 말이다.
미군의 주장대로 장갑차가 시속 10km의 저속주행을 하고 있었다면 15m를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4초나 된다. 소음이 큰 장갑차가 바로 뒤에서 자신들을 덮치려고 오는데 5초 남짓이나 되는 시간 동안 이를 피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사고 당시 시속 10km의 저속주행을 했다는 미군의 발표가 사실이 아니거나 아니면 무언가 또 다른 진실이 은폐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SOFA 개정!

효순·미선양의 비통한 죽음이 널리 알려지면서 각계 단체들이 모여 ‘미군장갑차 여중생 고 신효순·심미선 살인사건 범국민 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유족들과 ‘대책위’는 이번 사건에 관련하여 △부시 미국대통령의 공개 사과 △유족과 사회단체 대표들이 참여하는 합동 진상조사 실시 △미군 피의자와 훈련책임자 구속·처벌 △캠프하우즈 미군 훈련장 폐쇄 △주한미군의 조속한 유족 피해배상 실시 △주한미군의 이 사건 형사관할권 포기 및 불평등 SOFA 개정 등의 요구들을 내걸고 연일 집회와 시위를 벌이고 있다.
현재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범국민대회’가 4차까지 진행되었는데, 처음엔 천명 미만이던 참석자가 날이 갈수록 늘어나 4차 대회에선 2천여명에 이르렀다.
특이한 것은 집회장에 여고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참여하는가 하면, ‘붉은 악마’ 차림을 한 참석자들도 눈에 띈다는 사실이다. 효순·미선양의 참혹한 죽음이 나이어린 세대들에게도 상당한 충격을 안겨준 것으로 보인다.
‘대책위’가 벌인 범국민서명운동에는 현재까지 10만여명이 참여했다. 2천 5백여만원의 모금도 이루어졌다.

법무부, 미국에 재판권 포기 요청

공무 중에 일어난 우발적인 사고라며 고압적인 자세로 버티던 미군은 애초의 사건발표가 거짓이었음이 드러나자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7월 3일 자체조사 결과를 토대로 운전자와 선임자를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4일엔 주한미군사령관이 미군의 책임을 인정하며 사과문을 냈다.
8일엔 검철청 의정부지청에 사고 관련자들을 출석시키겠다고 했다가 대책위 관계자 100여명의 시위를 핑계삼아 그냥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이 뜨겁게 달아오르자, 법무부는 10일 이 사건에 대해 미군측에 재판권 포기 요청을 했다. 한미주둔군협정(SOFA)에 따르면 공무중인 미군의 범죄에 대한 1차적 재판권은 미군에 있기 때문이다.
미군측이 재판권을 포기할 가능성은 적다. 법무부 또한 그렇게 보고 있다. “철저한 진상규명” “신속하고 충분한 유족보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미리부터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재판권도 없이 어떻게 진상을 밝혀낼 것인가?
불평등한 SOFA로 인해, 효순·미선양의 죽음은 진상을 규명하는 것조차 가로막혀 있으니, 기가 막힌 노릇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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