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대중음악은 노동계급의 전유물이다. 부르주아지는 '예술음악'을 감상하므로 대중음악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다. 특히 '록음악'이라 불리는 음악은 지난 반세기 동안 노동계급의 정체성과 밀접히 연관되어 발전해 왔다. 중간계급 출신이 록 음악을 연주하는 경우가 점차 많아지기는 했어도 그건 자신의 출신성분과는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간단히 말해서 연예계는 노동계급을 위한 것인 반면, 예술계는 중간계급 이상의 부르주아지를 위한 것이다.
그곳에서 노동계급의 조건이 한국의 노동계급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위의 공식이 똑같이 적용된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저런 선진국의 상황이 꼭 '좋은'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인의 음악 취향은 너무 민주적이다. 그게 한국의 부르주아지가 대부분 졸부들이라 부르주아지답지 도 못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한국의 노동계급이 학식과 교양이 충분해서 그런 것인지 곰곰 생각해 볼 문제다. 어쨌든 이런 현상은 '한국의 록'이 길을 잃어버린 미아 신세가 된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런 미아 같은 한국 록이 최근 하나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다름 아니라 오래된 한국 록의 음반들이 속속 재발매되고 있는 현상이다. 신중현과 그가 발탁한 여가수들인 이정화와 김정미가 발표한 60년대말~70년대초 음반들이 CD로 재발매되었고, 70년대 '고고클럽의 전설'이었던 휘닉스(Phonix)의 음반도 우여곡절 끝에 재발매되었다. 80년대 주류를 풍미했던 송골매의 경우도 작년에 정규 음반들 모두가 재발매된 데 이어 최근에는 헌정음반이 발매되었다. 그리고 스트레인저, 디오니서스, 아마겟돈 등 80년대에 활동했던 헤비메탈 그룹들의 음반도 재발매되었다.
이런 움직임이 그저 '매니아들의 관심사', '찻잔 속의 태풍'일 뿐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 30~40대 노동자들은 학창시절 '야전'을 들고 야외로 나가 '그룹사운드'의 곡을 틀어놓고 '고고춤'을 추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건 그저 '젊은날의 치기'였을까.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건 그저 방황할 때의 모습이었고, 지금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노동가요'만이 노동계급의 음악문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자료를 뒤져보면 70년대 그룹사운드든, 80년대 헤비메탈이든 그걸 듣고 열광하던 사람들 중에는 10대 노동계급 청소년이 꽤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지식인이나 대학생, 혹은 명문고 재학생들이 '팝송'이나 '포크'를 들으면서 한국의 그룹사운드 같은 음악은 '유치하다'는 태도를 보일 때 10대 노동계급 청소년은 즉각적 반응을 보였다.
그렇다면 이런 음악문화를 한국 노동계급의 음악문화 역사의 일부로 조망할 수는 없을까. 그것이 꼭 '진보적'인 것은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 최근 발매되는 음반들이 노동계급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재조명해보는 일도 노동계급의 미래의 음악문화를 조망하는데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그건 넓은 의미의 '민중가요'였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래서 자신이 즐겨 듣던 음반 하나라도 사서 '내가 이런 음악을 왜 좋아했을까'라고 곰곰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져 봐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게 진짜 노동계급의 음악이었군"이라고 흥분할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음악평론가 신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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