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거버넌스] ICANN, 이제는 내 맘대로?

지난 6월 말, 루마니아 부카레스트에서 열린 국제도메인관리기구(ICANN, http://www.icann.org)의 정기 회의에서 ICANN은 도메인 관련 정책 결정 과정에 인터넷 이용자들의 참여를 봉쇄하는 결의를 채택하였다. 즉, 더 이상 민주적 절차와 구조라는 부담을 떨쳐버리고, 지금까지 인터넷의 형성과정을 주도해왔던 미국 중심의 '그들'을 중심으로 계속 인터넷을 관리해나가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ICANN은 도메인이나 IP 주소와 같은 인터넷 주소자원을 관리하기 위한 국제기구이다. 우리가 브라우져 주소창에 http://www.jinbo.net 라고 입력하면, 전 세계 어디에서나 진보넷 홈페이지에 접속할 수 있는 것은 국제적인 표준이 정해져있기 때문이다. ICANN은 전 세계적으로 연결된 인터넷이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계속 발전하도록 하기 위한 정책을 결정하는 곳이다. .biz나 .name과 같은 새로운 최상위 도메인의 생성도 ICANN에 의해서 결정된 것이다. 그런데, UN과 같은 통상의 국제기구가 정부간 기구인 것과 달리, ICANN은 민간의 자율적인 참여에 의한 정책 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다. 즉, 정부는 ICANN의 자문기구로서 참여하고 있을 뿐, 엔지니어, 법률가, 기업, 시민사회단체 등 도메인 정책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러한 민주적 구조의 하나로 ICANN은 이사회의 멤버를 인터넷 이용자들의 직접 선거에 의해서 선출하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 ICANN의 정책을 최종 결정하는 이사회의 멤버 19명 중 9명을 이용자들의 직접 선거에 의해서 선출하기로 되어 있었으며, 지난 2000년에 최초의 전 세계적 온라인 선거를 통해 5명의 이사를 선출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나머지 4명의 이사 선출은 연기된 채, 이사의 직접 선거에 대한 공격이 계속되었다.

형식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의 참여를 허용하는 민주적 구조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실 그동안 ICANN은 그 비민주성에 대해서 끊임없는 비판을 받아왔다. 왜냐하면, 실질적으로 ICANN의 정책 결정은 상업적인 이해 관계에 편향되어 왔으며, 미국 중심의 핵심 멤버들이 그 운영을 주도해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올 해 들어서는 '효율성'이라는 명분 하에 거추장스러운 민주적 구조마저 개편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 시작은 올해 2월에 ICANN 최고 책임자인 스튜어트 린(Stuart Lynn)이 ICANN 개혁안을 갑작스럽게 제출하면서부터 이다. 이 개혁안의 핵심은 민주적인 절차보다는 '효율성'을 강조하고, 그리고 현실적 권력집단으로서 각 국 정부를 인정하며, ICANN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정부의 권한을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또한, 비효율적이고, 대표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ICANN 이사에 대한 이용자 직접 선거를 부정하였다. ICANN이 개혁되어야 한다면, 현재까지 참여가 부족했던, 제3세계와 시민사회의 이해를 어떻게 더욱 활성화할 것인가 하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린의 개혁안은 효율성과 현실성이라는 미명하에, 기득권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물론, 옴부즈만 제도 등 이용자들의 의견을 듣는 통로를 마련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가식적인지 우리는 많은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지 않은가? 결국 어떠한 의견을 받아들이고, 어떠한 결정을 채택할 것인지는 권력자들의 '내 맘대로'인 것이다.

린의 개혁안은 인터넷 공동체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ICANN은 지난 3월에 있었던 가나 아크라에서 있었던 정기회의에서 '발전과 개혁 위원회'(Evolution and Reform Committee)를 설립하여 린의 제안을 검토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6월 말에 열린 부카레스트 정기 회의에 제출된 것이다. 이 위원회의 '개혁 청사진(Blueprint for Reform)' 역시 기본적인 관점에 있어서는 린의 개혁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 15명의 이사 중 8명을 '인사 위원회(Nominating Committee)'에서 선출하도록 함으로써, 이용자들의 직접선거를 배제하였고, 여러 측면에서 정부의 입장이 반영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이 개혁안은 이번 부카레스트 정기 회의의 이사회에서 통과되었다.

인터넷 이용자들의 직접 선거만이 꼭 민주주의를 보장할 수 있다거나, ICANN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정부를 배제해야만 한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ICANN의 주도권을 둘러싼 변화의 맥락 속에서 ICANN 구조 개혁을 바라봐야 한다. 문제는 지금까지의 인터넷 운영의 주도권을 행사해왔던 세력들의 권력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개편되고 있다는 것이다. 효율성과 현실성의 이름아래, 지역적, 문화적 다양성이라는 ICANN이 추구하는 가치는 공문구가 되고 있다.

오병일(진보넷 사무국장) antiropy@www.jinbo.net

<참고 사이트>
- ICANN 홈페이지 : http://www.icann.org
- Committee on ICANN Evolution and Reform
http://www.icann.org/committees/evol-reform/
- ICANN: A Blueprint for Reform (2002년 6월 20일)
http://www.icann.org/committees/evol-reform/blueprint-20jun0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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