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출처 : http://www.kbs.co.kr/2tv/sswshow/
지난 16일 나는 KBS 방송사 앞에서 "서세원쇼" 폐지를 위한 1인 시위를 벌였다. 전생에 방송사와 무슨 악연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작년 초 가요순위프로그램 폐지운동 이래 방송사 예능국과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는 중이고, 서세원쇼 폐지를 요구하는 1인 시위도 그 과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방송사에 예능피디들에게 찍힌 내가 방송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다고 내 이력서에 큰일 난 것은 아니지만, 사실 내성적이고 마음이 모질지 못한 나로서는 1인 시위가 적성에 맞지는 않는 것은 사실이다. 겉으로는 당당하고 여유 만만하게 표정을 짓지만, 속으로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나에게 수업을 들었던 방송사 직원들과 얼굴이 마주치면 어떠할까, 그리고 지금 내가 왜 여기 있을까 하는 이런 저런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아는 피디들이 지나가면 애써 미소를 보이며 여유를 부려보지만, 어색하고 껄끄러운 건 마찬가지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도, 막상 "서세원쇼"가 나를 화나게 했던 장면들을 떠올리면 다부진 마음을 다시 추스른다.
최악의 연예오락프로그램 선정위원회가 처음으로 "서세원쇼"를 선정하고 나서 벌이는 1인 시위에 동참하면서 한 가지 고민되는 사실이 있다. 한 네티즌이 문화연대 게시판에 서세원쇼 폐지운동이 소위 "김남일 네 가족의 봉변 사건"에 편승하여 대중들을 손쉽게 설득해 보려는 발상이 아니냐는 날카로운 지적을 해주었는데, 서세원쇼 폐지운동의 시작과 취지에 대한 이 분의 오해에도 불구하고 소위 지금 펼치는 운동방식에 대해 보여준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하는 바이다. 사실 시민운동은 시민들이 원하고 지향하는 방향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전제되어야 한다. 만일 서세원쇼가 꾸준한 시청률을 자랑하고, 일반 대중들이 즐겨보는 프로그램이라면, 시민운동이 굳이 서세원쇼를 폐지하라고 주장해야하는가 라는 문제제기가 마냥 틀린 말처럼 들리지 않는다. 실제로 상당수의 시청자들이 늦은 밤에 텔레비전을 켜놓고 서세원쇼에서 출연하는 연예인들의 농담이나 잡담을 듣는 것을 재미있어 한다. 시청자들은 문화연대와 같은 시민운동단체들이 주도하는 서세원쇼 폐지운동이 시민들의 문화적 자기결정을 너무 무시한 문화 엘리트적 사고방식에 젖어있다고 비판할 만하다.
굳이 서세원쇼를 거론하지 않아도 소위 각종 연예오락프로그램의 문제들을 지적하는 입장과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을 소비하는 입장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고 이 간극이 커질수록 대중운동으로서 연예오락프로그램 개혁 운동이 실패할 것이라는 예상도 해본다. 대중들이 좋아하면 그것으로 족한 것일까?
물론 서세원쇼를 좋아하고, 그 프로그램이 야기하는 문제에 대해 모르거나 알아도 무관심한 분들만큼 서세원쇼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서세원쇼 어떻게 좀 없애줄 수 없냐는 의견도 게시판에 많이 올라오는 편이다. 그렇다면, 세세원쇼의 폐지운동은 개인의 취향에서 비롯된 것이라 말해야 할까? 폐지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취향이 중요한 만큼, 좋아하는 사람들의 취향도 존중하는 것이 마땅한 것일까?
사실 이런 생각들을 1인 시위를 하면서 내내 생각한 편이다. 이는 1인 시위를 하는 나를 처다보는 KBS 직원들의 다양한 반응과도 일치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맞아, 서세원쇼 폐지해야돼", "서세원쇼 이제 너무 오래된 것 아니야?", "왜 또 난리지?", "서세원쇼가 뭐가 문제라는 거야" 등등의 반응을 접하면서 이 프로그램을 바라보는 개인의 취향의 차이를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면서도 서세원쇼 폐지운동이 단지 소비 취향의 문제로 일별될 수 없는, 운동으로서의 정당성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개인의 취향의 문제라기 보다는 제도적인 문제이며, 전자를 충분히 홍보하기에는 후자의 문제로 인해 생겨난 사태가 더 크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서세원쇼가 갖는 폐해는 5년 동안의 장수프로그램으로 성장하면서 이미 거의 모두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진행자 서세원은 이제 방송권력을 적절하게 행사할 수 있는 연예인 위의 연예인으로 군림하고 있다. 자신의 프로그램에 출연한 스타급 정예 연예인 60여명을 자신이 제작한 영화 <긴급조치 19호>에 출연시킬 정도의 힘을 과시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가 진행하는 방송프로그램이 자신이 운영하는 서세원 프로덕션의 상징자본이 된 것이다.
자신의 음반과 영화, CF, 개그프로그램을 홍보하기 위해 연예인들의 사설 다방인 서세원쇼는 소위 흑심품은 어른들의 "모여라 꿈동산" 같아 보인다. 출연진들의 사담과 농담 개인기 행동들은 방송을 개인 사랑방으로 전락시키고, 공적인 스튜디오를 사적인 공간으로 변질시킨다. 이 공간의 변형은 즐거운 웃음에서 기반하기 보다는 그야말로 얼굴 도장찍기, 싼값으로 홍보하기, 매니저의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기에 기반한다. 연예인에게 개인기를 강요하거나 개인기로 승부하라는 요청이 바로 서세원쇼에서 비롯되었고, 그로 인해 각종 연예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가수들이 기획사나 스튜디오에서 노래연습보다는 개인기 연마에 열중하는 파행을 몰고 왔다.
서세원쇼 폐지를 위한 1인 시위는 지금도 KBS 방송사 앞에서 진행되고 있다. 시위는 월요일까지 예정되어 있지만, 이 운동에 동참할 신청자가 있을 경우 계속할 예정이다. 서세원쇼 제작진은 이 프로그램의 폐지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네티즌들과 시민단체의 압력에 밀려 불명예 퇴진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서세원쇼 폐지운동을 끝까지 벌일 생각이다. 자존심 때문이 아니라, 개인의 취향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 아니라 이 프로그램이 야기한 방송왜곡과 개인의 사욕의 무서운 결과를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공적 방송 프로그램을 자신의 전리품으로 생각하고, 방송가의 짬밥으로 권력의 순번을 매기려는 우리나라 대표 방송, 한국방송공사 KBS의 전근대적인 관행들이 이제 좀 개선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동연(문화연대 사무차장) sangyeun@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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