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는 어린이 그 자체이다'. 어린이가 놀이를 하지 못한다면 건강하지 않거나 억압 또는 저해를 받고 있는 중이다.
어린이의 놀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 어린이의 놀이에는 어린이가 살아가야 할 이 세상이 담겨있다.
- 어린이의 놀이에 자신이 경험한 바가 재연된다.
- 어린이는 놀이를 통해 이미 배운 능력을 실험하고, 새로운 능력을 시도하며 배운다.
- 그래서 놀이는 어린이의 발달상태를 잘 보여준다.
- 어린이의 놀이는 즉흥적이고 변화가 잦은 놀이에서 계획적이고 지속적인 놀이로 발달한다.
- 어린이의 놀이는 신체적인 움직임에서부터 상상으로, 상상으로부터 사고, 기술, 인내, 의지가 담긴 놀이로 발달한다.
- 놀이에 대한 어린이의 만족감은 결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과정에 있다.
- 어린이는 놀이감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이 세상에 대한 질문을 하고 스스로 탐구한다.
- 어린이의 놀이는 후에 '일'로 변한다. '어른들'이 하는 일과 어린이 놀이와의 차이점은 일은 외부로부터 과제가 주어지지만 놀이는 어린이 내면의 충동과 상상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 어린이는 놀이를 통해 인간 삶의 기능 속으로 들어간다.
기타 등등...
놀이에 대하여 열거할 것들은 한없이 많지만 이것들만 가지고도 '놀이가 어린이 그 자체'라는 말을 누구든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어린이의 놀이에 이 세상이 담겨있다는 뜻은 어린이들이 이 세상을 놀이에 재연하고 있다는 뜻이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어린이들은 끊임없이 성인들의 세계를 관찰하고 집, 거리, 상점, 주유소, 대인관계 등 주변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놀이에서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성인들의 행위와 삶이 어린이 놀이의 모델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성인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어린이들의 놀이에 바람직한 모델역할을 하고 있는가? 어린이들은 자신이 경험한 것들을 놀이에 곧잘 재연한다. 그래서 어린이들의 놀이를 잘 관찰해 보면 놀이의 종류, 내용, 어린이의 행위, 언어를 통해 요즘 세상의 모습과 아이들이 주로 하고 있는 경험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것을 보면서 우리는 어린이들이 과연 건강한 경험을 하면서 자라고 있는가에 대하여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놀이는 어린이들의 신체, 인지, 정서 등의 발달을 촉진시켜주는 전인교육을 위한 가장 자연스러운 '교육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놀이를 잘 할 줄 아는 아이는 나중에 공부도 잘하고 사회생활도 잘 하게 된다. 그런데 학원을 다니느라, 학습지를 하느라 가장 자연스러운 '교육 프로그램'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어린이들은 점점 더 인위적인 프로그램에 의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린이의 놀이는 '그저 노는' 것이 아니다. 놀이를 하면서 동작의 섬세함을 익히고 기술을 배우며, 가장 긴밀하게 이 세상과 만나고 있다.
그런데 요즘의 놀이감들은 이러한 만남의 가능성을 앗아가고 있다.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차, 말하고 웃는 인형, 미디어나 컴퓨터 같이 기능이 주어졌고 이미 모두 완성된 기계들은 어린이들의 '자기행동'을 앗아간다. 놀이감이 고도로 발달할수록 어린이들은 자기 스스로의 행동을 할 필요가 없게된다.
놀이는 어린이를 이 세상으로 안내하는 길이다. 놀이를 통해 어린이들은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이 세상의 삶이 어떤 것인지 맛을 보고 인간의 삶 안으로 합류된다. 깊은 만족감과 넘치는 즐거움으로 그 길을 경험했을 때 어린이에게 있어서 삶이란 즐거운 것이고, 세상은 정말 '살맛 나는' 좋은 세상이 된다. 그 즐거움은 나중에 어린이가 삶을 능동적으로 가꾸어갈 힘으로 전환된다.
놀이가 이처럼 중요한데 안타깝게도 요즈음은 놀이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만화영화를 보고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세상과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은 줄어들고 있고, 성인의 세계를 모방하지 못하고 기계의 동작을 모방하다보니, 어린이들의 움직임은 점차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그래서 놀이의 행위가 특정한 목적이 없이 흥분하여 '날뛰며 노는' 아이들이 늘어가고 있다. 어른은 그것을 못 견디고 아이들을 다시 비디오 앞에 앉혀 놓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도록 유도한다. 그것에 열중하여 있는 동안 억제되어있던 놀이(움직임)에 대한 본래의 자율적인 충동은 폭발되어 어린이로 하여금 다시 '날뛰게' 만든다. 어떤 어린이들은 놀이하는 법을 잊어버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혼자서 놀이를 전혀 할 수 없는 아이도 있다. 그런 어린이들이 과연 이 땅에 두 발을 굳게 디디고 이 세상 속에서 미래의 세상을 향해 이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제 놀이의 관찰대상인 성인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뿐 만 아니라, 놀이하는 법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어차피 밖에 나가도 바쁜 스케줄과 컴퓨터 게임을 하느라 함께 놀 다른 친구가 없고, 자유롭게 놀이를 할 장소도 마땅치 않으니, 우리는 어린이들의 놀이 파트너가 되어 안전하게 놀이를 할 장소를 마련해 주고, 놀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성인들이라 놀이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우리 스스로가 옭아매 놓은 기존의 형태 안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어린이와 같은 상상력을 가지고 풍요로운 놀이를 잘 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금방 지치고 '친구' 역할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게 된다. 그렇다. 성인은 어린이들의 놀이 파트너가 아니다. '놀아주는' 사람은 친구가 아니다. 성인이 할 수 있는 놀이 파트너 역할은 놀이 그 자체 이상인 삶에 있다. 성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삶을 다양하게, 풍요롭게, 열심히, 창의적으로 사는 것이다. 그 안에서 성인이 장난감을 다룰 수 있다면 그 시간마저 풍요롭고 창의적이기 때문에, 그 때는 진정으로 놀이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성인의 삶이 담긴 놀이를 어린이들이 함께 '맛' 볼 수 있는 바로 그 관계가 어린이들의 놀이에 모델이 되고, 놀이를 촉진시켜주고, 창의적인 놀이를 하게 한다. 우리는 어린이들을 위해 그리고 우리 자신의 삶을 위해 어린이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형성해야 한다. 어린이에 대한 생각은 곧 우리 자신에 대한 생각이며, 그들의 미래를 생각한다는 것은 곧 우리의 미래를 강하게 하는 일이다.
놀이는 어린이들의 자연스러운 행위이자 권리이다. 성인인 우리에게 일할 권리가 있듯이.
윤선영·건양대학교 아동보육학과 교수, 한국보육교사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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