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현/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무더운 여름, 짜증스러운 한판의 코미디가 벌여졌다.
전경련, 경총 등 경제5단체는 지난 8일 은행권의 주5일제 실시에 대해서 강력히 항의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겠다고 예고했다.
내용인즉슨 은행권이 7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주5일제로 인해 기업이 불편을 겪고 있으니 이에 대한 항의로 “회원사들이 우체국이나 외국은행 등을 포함해 토요일에도 문을 여는 금융기관으로 거래처를 옮길 수 있도록 독려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난 9일 이들은 부랴부랴 이를 취소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이들이 은행권에 대해서 극약처방을 꺼내든 이유는 노사정위원회에서 주5일제와 관련된 협상의 막바지에 개별적 협약으로 주5일제를 타결함으로써 ‘적전분열’을 드러낸 은행권을 단죄하겠다는 인식에서였다.
그러나 이는 재계가 2년 전 노사정위원회에서 합의한 “△2000년말까지 주 40시간 노동제 도입 및 실노동시간의 단계적 단축 △연월차 휴가를 임금으로 받지 않고 적극 소진토록 함으로써 실노동시간 단축 △노동시간 단축시 임금감소는 없으며, 기존의 임금은 보전”의 내용과 위배되고 있다. 더구나 재계는 그 이전에는 법개정이 아닌 개별 단협을 통한 주5일제 도입을 줄기차게 주장하지 않았던가.
더구나 이들이 이를 철회한 핵심적 이유가 실제로 거래은행을 변경하면 오히려 해당 기업이 더 많은 손해를 보고 “우체국과 외국계은행은 재계의 토요일 업무취급요구에 대한 어떠한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 있기 때문에 실제로 실행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라는 데 이르면, 어처구니가 없어진다.
이 취소소동에도 불구하고 경제5단체장들은 의연히(?) 나라를 걱정하는 애국자답게 같은 날 오전 불법파업 엄단 촉구 기자회견을 벌였다. 이들은 월드컵 이후 대외신인도와 이미지가 격상돼 경제를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됐는데 “월드컵이라는 막중대사와 정권말기 공권력의 이완을 틈타 불법파업과 불법행위가 묵과되고 있다”면서 노사분규의 급증은 경제전반에 치명적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노동계는 월드컵이전의 불법파업 관행을 청산하고 모든 불법파업을 즉각 중단”하여야 하며, 또 “정부도 불법에 대해서는 엄정하고 예외없는 법집행을 해야 할 것”이다.
현재 70여개 정도 되는 파업의 상당수는 대부분 매년 되풀이되는 평범한 임단협 관련 쟁의이다. 이것이 장기파업으로 치닫게 된 데는 해당 사업주들이 대화조차 기피하며 월드컵 국면을 악용해 노조파괴에 골몰한 데 주요한 책임이 있다. 이들 중에서 불법파업의 딱지가 붙은 병원의 경우도 실은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개정을 권고하고 법원에서도 위헌제청을 한 직권중재라는 단체행동권을 박탈하는 위헌적 제도로 인한 것일 뿐이다.
일부의 사업장은 합법적 파업에 업무방해죄 등 형법을 적용하는 검찰의 부당한 법집행으로 인한 것이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재계는 불법이라는 딱지를 붙여 국민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다음날인 10일 산업자원부와 한국생산성본부는 ‘2002년 1분기 노동생산성 동향’ 발표를 통해 노동생산성지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1.9% 증가했다고 밝혔다.
내가 아는 바로는 세계최고의 상승률이다. 열심히 노동자들의 생산성은 세계최고로 올라가지만 노동자들은 쉬지도 말고 임금을 올리지도 말아야 한다. 정말로 빌어먹을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다.
[ 96호] 7.15 ~ 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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