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상/편집위원 sang21@hani.co.kr
지난 7월 15일과 17일 미국 상원과 하원은 이른바 회계개혁법안들을 각각 승인했다. 두 법안 가운데 관심의 초점은 민주당 지배의 상원이 통과시킨 ‘2002 공개기업 회계개혁 및 투자자보호법’이다. 하원의 법안이 기업 내부고발자를 보복하는 간부들에 대해 민사는 물론 형사 책임을 묻게 한 것을 빼곤, 상원의 법안이 진전된 내용을 담고 있다.
두 가지 핵심사안 빠져
상원의 법안은 뼈대는 비회계법인 인사들이 다수 참여하는 회계감독위원회 구성, 기업의 회계감사를 맡는 회계법인의 컨설팅 업무 등의 제한 등이며 이에 대해서는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 반면 스톡옵션(주식매수청구권)을 비용으로 처리하는 규정을 두지 않은 점이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의 맹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회계법인이 기업과 ‘짜고 치는’ 이른바 이해상충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수적인 훨씬 더 중요한 두 가지 사안이 빠져 있다. 하나가 회계법인이 고객인 기업에 세금 관련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곧 고객인 기업에 회계법인이 제공할 수 없는 비회계 업무의 범위에 세금 관련 서비스는 포함되지 않고 있다는 문제점이다.
다른 하나는 회계법인이 고객 이외의 기업들에 모든 컨설팅 서비스를 허용한 것인데, 이는 얼핏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미국 자본주의의 현실에 비춰 회계법인의 이해상충 문제 해결을 ‘빛좋은 개살구’로 전락시킬 위험성을 갖고 있다.
먼저 고객이 아닌 기업에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의 맹점부터 살펴보자. 이를 위해선 미국 공개기업의 90% 이상이 ‘빅5’로 불리는 아서앤더슨, 언스트앤드영, 들로이트앤드투쉬, KPMG, PwC 등 5대 회계법인에게서 회계감사를 받고 있다는 독과점 상황을 알아야 한다. 이 업체들은 세금 절약법을 포함해 본질적으로 같은 유형의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이해상충의 상황을 낳는다.
공개기업 90%이상 5대업체 고객
아서앤더슨이 KPMG에게서 회계감사를 받는 A라는 기업에 합법성 여부가 의심스러운 세금 절약 서비스를 제공했다고 치자. KPMG 역시 이와 비슷한 서비스를 아서앤더슨에게서 회계감사를 받는 B라는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다.
KPMG는 기업 A를 대상으로 회계감사를 하면서 아서앤더슨이 제공한 세금 절약 서비스가 법적으로 취약하다는 지적을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KPMG 역시 기업 B를 대상으로 비슷한 절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공개기업의 90% 이상이 5대 업체의 고객이고 보면 이런 이해상충의 상황은 연쇄고리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미국 자본주의의 현실은 5대 회계법인이 회계감사 고객인 기업을 뺀 나머지 기업에 회계감사 이외의 서비스를 제공할 때도 이해상충이 두루 존재한다는 것이다.
상원의 법안이 안고 있는 두 번째 치명적 문제점은 회계법인들이 고객인 기업에 세금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서 비롯한다. 법안은 보통 컨설팅으로 불리는 “회계와 관련이 없는 법률 및 전문 서비스”에서 세금 관련 서비스를 배제하고 있다.
회계법인은 많은 돈을 받고 절세 등 세금 관련 서비스를 기업에 제공한다. 그 적법성 여부는 미국 국세청(IRS)에서 판단한다. 국세청이 이런 세금 절약을 합법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기업들은 납세용 준비금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큰 돈을 벌 수 있는 회계법인이 그럴 가능성을 충실히 지적하기란 쉽지 않다. 일반 투자자에게 신의성실에 바탕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회계법인의 목적과 상충되는 셈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이런 두 측면에서 볼 때, 상원의 회계개혁법안은 일부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본질적 한계를 안고 있다. 그런 법안이 민주당 지배의 상원에서 통과됐다는 것은 금융 탈규제를 통해 신경제 거품을 만들어낸 장본인이 바로 클린턴 민주당 정권이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제대로 달 수 있을까. 회계개혁법안의 뻥 뚫린 큼직한 구멍은 신자유주의 세력의 일부로 변질돼가는 민주당을 상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97호] 7.22 ~ 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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