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사상태 산업연수제, 호흡기를 뗄 때

정부, '외국인력제도개선대책' 발표... 산업연수제 쿼터 확대 "여전히 미봉책으로 일관" 각계 반발 봇물


지난 17일 정부는 "급증하고 있는 불법취업 외국 인력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중소제조업과 서비스업 분야의 인력부족문제를 아울러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외국인인력제도개선대책'을 발표했다. 이 제도에 따르면 기존의 산업연수제 허용 업종을 현행 중소 제조업과 건설업 뿐 아니라 농·축산업까지 넓히고 그 수도 현행보다 1만8,750명 늘어난 14만5,500명으로 확대하며 유흥업을 제외한 서비스업종에 외국국적 동포의 취업을 허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주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으며 여전히 근본적 제도개선에는 등을 돌린 미봉책으로 일관하는 행정을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외국인력제도개선대책'의 요지

산업연수제도 확대 및 제도 개선

정부는 중소제조업, 건설업, 연근해어업, 농축산업의 인력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연수생 정원을 늘리고 관리체계를 개선키로 했다.
이에 따라 우선 현재 12만6,750명인 산업연수생 총 정원을 14만5,500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세부적으로는 △현 2,500명 수준인 건설부에서 7,500명으로 확대하고 △농축산업 중 계절적이고 기업화 된 분야에 한하여 5천명 범위 내에서 산업연수생 도입 등이다. 또한 연수생 도입·관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비리를 예방하기 위하여 연수생 위탁관리제를 폐지하고 송출국가 및 고용주의 관리 책임을 강화하기로 하였다.

서비스분야 「취업관리제」도입

또한 정부는 현재 식당 등 서비스 분야에 상당수의 중국동포 등이 종사하고 있고 내국인만으로는 필요한 인력을 구할 수 없는 현실을 감안, 서비스 업종에 한해서 외국 국적 동포에게 취업을 허용하는가칭 '취업관리제'를 새로이 도입키로 했다. 취업 분야는 음식점업, 사업지원서비스업, 사회복지사업, 청소관련 서비스업 등이며 유흥관련업은 전면 금지된다.

취업기간은 1년의 범위 내에서 허용하되 1년에 한해 1차례 연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산업연수를 거치지 않은 이상, 취업자격은 40세 이상인 사람 가운데 국내에 8촌 이내의 혈족 또는 4촌 이내의 인척이 있거나 국내호적에 등재돼 있는 경우에 한한다. 또한 장기체류 방지를 위해 사업장 이동과 가족동반은 금지된다.
이에 따라 외국인 고용을 희망하는 사업주는 임금 등 고용조건을 명시하고 1개월 동안 내국인 구인노력을 한 뒤 구하지 못하면 외국 동포를 고용할 수 있게된다.

불법체류 단속 및 이후 조치

정부는 이번 제도개선 방안이 실효를 거두고 조기에 정착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이 중요하고 보고 범정부적 단속체제를 구축하기로 하였다. 이를 위해 부처별 세부지침을 마련하여 오는 11월부터 시행하기로 하였으며, 먼저 7월1일부터 합동대책반을 편성, 이번 자진신고기간 중 신고한 불법체류자 25만6천명에 대해서도 출국유예기간인 내년 3월31일까지 모두 출국시키기로 하였다

이젠 입이 아프다

한마디로 이번 정부의 개선책은 실망스럽지 않을 수 없다. 지난 10년 간 시행되어 온 외국인 인력공급 제도인 산업연수제도의 문제점은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언론까지 입이 아프게 말하며 이 제도의 폐지를 주장했다. 단순히 이 제도가 각종 송출비리, 이주노동자 인권침해, 불법체류자 양산 등 부작용으로 얼룩져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은 공식적으로 25만명이 넘는 규모로, 한국인이 기피하는 3D산업의 현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렇다면 단속과 추방으로 일관하기보다 그들의 노동을 인정하는 근본적인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도 정부와 노동부에서는 외국인 인력을 합법적으로 고용하는 '고용허가제'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었다. 이에 고무된 민주노총과 시민사회단체들은 더욱 전향적으로 이주노동자들에게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주고 완전한 노동3권과 노동비자를 보장하는 '노동허가제'를 뼈대로 한 법안을 만들어 입법청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월드컵을 앞두고는 대대적인 자진등록신고로 이주노동자들을 접수처 앞에서 밤 새워 줄을 서게 하더니, 월드컵을 치룬 뒤 마련된 개선책이라는 것은 결과적으로 '산업연수제 확대'였다. 그동안 할 듯 말 듯 도입의 가능성만 비치며 거론되어 온 '고용허가제'조차도 온데 간데 없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완전한 노동3권을 달라며 '노동허가제'를 주장해 온 쪽은 김칫국부터 먼저 마신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정책이 기존의 연수제도를 '철폐'하지는 못하더라도 개선조차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악용의 소지가 많을 뿐 아니라 실현가능성이 불투명한 정책들로 일관된 것으로 보여진다.

여전히 졸속 미봉책에 불과

이번 개선책의 가장 큰 문제는 물론 연수제도를 존속, 확대했다는 것이다. 또한 내용을 들여다보면 세부적인 문제점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문제1.<차리리 불법체류 조선족이 낫다>
우선 가장 획기적인 변화인 외국국적 동포에게 서비스업 취업을 허락한다는 방침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이미 식당과 갈비집 등에서는 서빙을 하거나 설거지를 하는 조선족 여성들을 보는 것이 흔한 일이 되어 버렸다. 이 분야는 높은 노동강도와 저임금으로 내국인으로 대체될 가능성도 희박하다. 어찌되었건 이주노동자들의 인력이 필요한 분야가 된 것이다. 때문에 합법적으로 고용하게 한다는 취지는 반가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절차와 자격은 '합법 취업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측면이 크다.

그 이유는 우선, 이들이 취업하기 위해서는 친척방문 비자인 'F1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이번에 제한 연령을 대폭 낮추었다고는 하지만 40세 이상이어야 한다. 또한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고용주들은 이들의 이탈을 방지하는 책임을 지고 귀국보증금을 300만원이나 예치해야 한다.

조선족 동포를 고용하는 업소는 젊은 사람들도 견디기 힘든 강도의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직도 잦은 편이다. 그런데 정부방침대로 40세 이상만을 고용하거나 보증금까지 예치해가며 조선족 동포를 '합법적으로' 고용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을 합법적으로 고용한다는 명목 하에 사업장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악용, 강제노동을 시키는 등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부작용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문제2.<고령의 청소용역직 여성노동자 고용불안 위기>
또한 이번에 허용되는 서비스업종 중에는 청소업까지 포함되어 있는데, 현재도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으며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일하고 있는 청소 용역직 노동자들에게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여기에 종사하는 이들은 노동시장에서 가장 소외된 저학력의 중년여성들이며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고 각종 복지혜택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그러다 최근 청소용역직 노동자들의 노조가 빠르게 조직되고 있고 이를 통해 부분적인 임금이나 근로조건 개선 등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용역회사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사실상의 노무 권한은 원청이 가지고 있는 간접고용의 형태 때문에 교섭에 난항을 겪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포로 제한된다고는 하지만 외국인 인력이 투입되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청소용역직 노동자들이 이제 막 자신들의 권리 찾기에 나섰지만, 고용주들은 이들의 조직화를 막기 위해 외국인 인력을 대체 고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아직은 이 분야의 노동시장은 고령의 여성노동자들이 가장 열악한 대우를 받으며 종사하고 있고,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이 흡수된 영역이 아닌 이상 악용의 소지를 남겨두면서까지 굳이 도입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문제3.<25만6천 불법체류자들, 모두 나가라!>
이번 개선책이 미봉책에 불과하고 실현가능성이 없다는 가장 큰 이유는 지난 자진신고등록 기간에 신고한 25만6천명을 포함해서 모두 출국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신고기간에 신고를 마친 이주노동자들의 대부분은 출국의 의지가 없다고 했다. 어차피 불법체류자인데 내년 3월까지만이라도 편히 살아보자는 목적과 단속에 걸리면 어차피 추방인데 손해볼 것이 없다는 속내가 자진신고를 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이 모두 출국했을 때 3D업종의 공동화 현상을 예상하며 '일부라도 사면해 주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나타났다. 지금의 불법체류자들은 모두 나가고 확대된 산업연수제도에 의해 새로운 13만명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여전히 단속의 눈을 피해가며 불법적인 노동을 하고 있을 이주노동자들은 나갈 생각이 없다. 7월부터 합동대책반을 편성, 강력한 단속과 추방을 한다고는 하지만 연수생을 배당받지 못한 영세기업들이 저임금을 목적으로 이들의 인력을 필요로 하고 이들에게 출국의사가 없는 한 26만명에 대한 단속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각계 반발 봇물
외노협 등은 지난 22일 '연수제도철폐 투쟁본부'를 발족하고 명동성당에서 노숙농성에 돌입했다. 투쟁본부는 정부가 자진신고 등록까지 한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에게 합법적인 노동권을 주고, '외국인력제도개선대책'을 철회할 때까지 무기한 노숙농성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투쟁본부장인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소장인 박천응 목사는 "국내 기업주들의 54.4%와 외국인 노동자의 79.9%가 노동허가제 찬성하는데 왜 노예제도와 같은 산업연수제도를 존속되어야만 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반문한다. 또한 "단속과 추방에 쫒기고 노동할 권리조차 없는 우리는 '노숙자'와 다름없다"며 "지붕도 천막도 없는 노숙자처럼 노숙투쟁을 하겠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민주노총도 성명을 통해 이 제도의 철회를 주장하며 "국가이미지를 훼손시키고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유린하는 산업연수생제도를 즉각 폐지하고 노동허가제를 실시하여 이주노동자를 노동자로 대우할 것"을 촉구했다.
아직 투입되고 있지도 않은 청소용역업종에 취업을 허락해서 내국인의 고용 불안을 낳는 것은 개선책이 될 수 없다. 이주노동자들의 인력을 필요로 하는 업종과 직종에서 합법적으로 이들을 고용할 수 있게 하고 현재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인정해 주지 않는 이상 거대한 규모로 방치되고 있는 불법체류이주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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