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8월이면 전남 무안에선 마늘까기가 한창이다. 9월 중순에 파종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8월부터는 종자를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올해는 대책이 없다. 중국산 마늘이 대량으로 들어오게 된 마당에 제값에 팔지도 못할 마늘을 심을 수도 없고, 또 이제껏 지어온 마늘 농사를 ‘휙’하니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무안군 남천마을 정자엔 여느 때처럼 한낮의 땡볕을 피해 마을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대부분이 일흔을 넘긴 어르신들. 그러나 이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막상 마늘 이야기가 나오자, 한꺼번에 격앙된 목소리들이 쏟아진다.
“죽으라는 얘기야!”
“풍년이 들면 뭘 하나. 차라리 생활보호 대상자가 낫지”
“마늘 한 톨이 떨어져 있어도 얼마나 애지중지하며 줍는 지 알아? 그런데 핸드폰 팔아먹으려고 농민들을 죽여?”
마늘과 양파로 유명한 전남 무안. 이곳에서만 6,400호가 마늘 농사를 짓고 있다. 전체 2500핵타에서 생산되는 마늘은 전국 마늘 생산의 7.8%. 주변의 고흥, 신안, 해남까지 합하면 전국 생산량의 44%에 달한다.
“원래 여기선 밀하고 목화를 재배했는데, 미군들이 밀가루를 원조하면서부터 채소를 심기 시작했던거야. 마늘 농사를 못 짓게 되면 너도나도 양파나 배추, 보리를 심어야 하는데 그러면 또 가격이 내려가 다 갈아엎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악순환의 연속이라고.”마늘 문제는 지난달 농협중앙회가 “중국산 수입 마늘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를 2006년까지 4년간 연장해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불거졌다. 이 과정에서 2000년 7월 한·중 마늘 협상 당시 2003년부터 마늘 수입을 사실상 자유화하기로 합의했던 사실이 드러난 것.
현재 국산 깐마늘 판매가격은 kg당 1,500원 수준으로 1,200원 정도인 중국산과 가격경쟁에서 뒤진다. 따라서 국내 연간 소비량 43만~45만톤 가운데 그나마 세이프가드 조치로 2~3만톤 수준에 그쳤던 중국산이 내년부터 급격히 증가할 것임은 불보듯 뻔한 사실이다.
“마늘 안 들어가는 양념 있나. 우리 농산물 먹자고 떠들면서 탁상에 앉아 땀 한번 안 흘려본 사람들이 뭘 알아. 쟁기질을 하다가도 애가 울면 젖을 주는 법이니,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이미 남천마을 주민들은 지난 22일 서울에서 있었던 농민대회에 참가했던 터였다. 목이 터져라 재협상을 외쳤다. 협상에 참여했던 사람이나, 그것을 보고 받은 사람이나 모두 ‘잘 몰랐다’며 돌아서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분통이 터질 노릇이었다. 대통령도 몰랐다고 하지만, 이제와서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농지변경도 못하게 하니 천상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데, 돈 한푼 안 되는 농사를 지어 무엇해. 토지거래도 안 되는 땅이니, 차라리 나라에서 땅이고 종자고 다 사들이라고 해.”마을 정자에 모인 어르신들은 하나 둘 씩 드러눕기 시작했다. 이웃들의 농담에 가끔씩 웃음이 오갔지만, 당장 이놈의 마늘을 어찌해야 할 지 내일이 암담하기만 하다.
또 돈으로 때우려고
시키는 대로 했건만…빚더미에 오른 농민들
정부가 농수산물 문제를 또 돈으로 해결할 모양이다. 정부는 25일 중국산 마늘 파동과 관련해 내년부터 2007년까지 마늘산업에 1조 8000억 원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대선을 앞두고 농민들의 반발이 걱정스러운 정치권은 결국 ‘표’를 잃지 않기 위한 방안으로 ‘돈으로 바르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러나 농민들은 이러한 정부대책이 전혀 달갑지 않다. 이제까지도 많은 돈이 농촌 살리기에 투자되었다고는 하나 실질적으로 농업의 ‘미래’를 책임지는 데 쓰여진 일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임채점 지회장(전남 무안군 농민회 몽탄면 지회)은 “그 돈으로 농업과 상관없는 사람에게 마구잡이 대출을 해 주고, 마을회관이나 도로 만드는 일에 투자했을 뿐 실질적으로 농가에 도움이 된 일이 있었는가”라고 반문한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돈으로 해결하려는 정부의 농어촌 지원책은 94년 우르과이라운드(UR)협상 직후 본격화되었다. 정영호 사무국장(전남 무안군 농민회)은 “우르과이라운드 협상을 140억 공적자금 투입과 맞바꾸면서부터 개방농경이 시작되었다”라고 말한다. 국내 농업을 회생시킬 생각은 하지 않은 채 농민들이 반발하면 달래고 보는 “무대책 농경”이 계속해서 농촌을 망치고 있다는 것.
농어촌에 대한 한 해 예산은 10조원 가량이다. 또한 정부는 94년부터 2004년까지 10년 간 농특세 15조원을 새로 걷고 있으며, 매년 2조원 내외의 기금을 지원해왔다. 또 92~98년 농어촌 구조개선 사업에 45조원을 투입했고, 99년부터 2004년까지 6년간 농촌 투·융자사업에 45조원을 지원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돈이 투입된 농어촌 구조개선사업은 그러나 별다른 대책도 없고, 관리자도 명확하지 않은 채 진행되었다. 그 와중에 농민들은 정부가 시키는 대로 대출을 받아, 심으라는 작물을 심었지만 결국 고스란히 빚만 떠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인터뷰
마늘이 온 마을을 ‘부도’로 몰고있다
전남 무안군 농민회 정영호 사무국장
마늘 협상으로 인한 무안군의 피해는.
중국산 마늘이 5분의 1가격으로 들어오면 약 120억의 피해가 예상된다. 다른 작물로 대체하더라도 공급 과잉으로 가격이 폭락할 것이 분명하다. 이미 중국산 마늘 수입으로 조생종 양파와 월동배추의 공급량이 늘어나 올 초에 이들을 폐기 처분한 바 있다. 결국 밭에 심을 것이 없다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재배면적이 10% 늘어나면 가격은 30% 폭락한다.
농민 뿐 아니라 농협과 냉동업자들도 타격이 크다고 하는데.
이미 무안농협은 부도상태다. 마늘 가격이 폭락한 뒤로 원래 정부가 일정량을 수매하고 나머지를 농협이 사기로 했는데, 정부가 강제로 농협에 수매를 떠넘겼다. 양파와 마늘을 저장하는 냉장고 설치비도 농협의 부채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냉동업자들도 월동배추와 양파를 폐기처분하면서 난관에 처했다. 농촌은 막다른 길로 몰리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의 입장은 어떤가.
마늘에 대한 입장은 농민과 지자체, 농협이 같은 입장이다. 지자체 재정도 그렇고, 농민들의 분위기를 봐도 군수가 다른 입장을 취할 수 없는 상황 아닌가.
일단 정부는 세이프가드를 연장할 수는 없다는 입장인데.
인정할 수 없다. 우리는 2006년까지 세이프가드를 연장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2000년 당시 협상 처리자들도 분명히 처벌해야 한다. 정확한 진상조사와 더불어 대통령의 공개사과도 있어야 한다. 오는 11월 13일에 서울 여의도에 농민 30만 명이 모일 예정이다. 대선 직전이니 만큼 당락을 결정하는 농민들의 표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 우리는 이 싸움을 농민들의 생존권을 건 ‘전쟁’, 제2의 동학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농산물에 대한 시장개방이 계속될 예정인데.
정부는 이번 마늘협상에 대한 농민들의 반응에 민감하게 대응할 것이다. 한국과 칠레간 자유무역협정(FTA)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니, 사전에 어느 정도의 반발이 있을 지 타진해보고자 할 것이다. 때문에 앞으로의 무자비한 시장개방을 생각해서라도, 이번 마늘협상은 순순히 넘어갈 수 없다.
* 사회당 기관지 전현정/jhj@s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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