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번째 지문날인 거부자를 찾습니다
지문날인반대연대 윤현식 씨
몇년 전 주민등록증이 플라스틱으로 바뀌던 때, 지문날인과 전자주민카드 도입에 반대하며 신(新) ‘쯩’ 받기를 거부한 사람들이 있었다. 개중에는 통장·반장 성화에 못 이겨 신 ‘쯩’을 받은 사람, 구(舊) ‘쯩’으로 버티면서 욕보는 사람, 운전면허증이나 여권을 ‘쯩’ 삼아 사는 사람, 애가 탄 동사무소 직원이 지문없이 발급해준 신 ‘쯩’으로 ‘이상한 놈’ 취급받으며 사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운전면허증도, 여권도, 신 ‘쯩’도, 구 ‘쯩’도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아직도 새 주민증 없이 산다고? 그렇다).
3년여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잊혀진 줄 알았던 지문날인반대운동. 지난 지방선거를 앞두고, 주민증을 발급받지 않아 마땅한 대체신분증이 없는 사람들이 참정권 보장 문제를 제기하면서 제 모습을 드러냈다. 2001년 8월 발족한 ‘지문날인연대’가 그것이다.
“저는 결국 지난 지방선거 때 투표를 못했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주민등록등본에 사진을 붙여서 동사무소 직인을 받아오면 신원확인 증명서로 인정하겠다고 했는데 우리동네 동사무소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게 행정자치부 지침이라면서 발급을 거부했거든요. 공공기관이나 관공서가 발급한 증명서가 없으면 선거권 행사를 막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참정권 침해라고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대통령 선거는 해야지요.”지문날인반대연대 윤현식 씨(34세). 그는 참정권 침해 헌법 소송외에도 열 손가락 지문 원지의 반환, 폐기를 요구하는 ‘자기정보 정정 청구’를 경찰청이 거부한 데 대해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 ‘주민등록 조합방식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경찰정에 대한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법학과 박사 1년차, 그의 전공은 ‘헌법’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저도 열 손가락 다 지문 찍고 주민증 받았습니다. 그 때는 뿌듯했죠. 마빡에 ‘쯩’ 딱 붙이고 교실 돌아다니면서 ‘야, 너 쯩 까봐라’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예전에 일본에서 재일동포들한테 지문날인 받는다고 우리가 막 욕한 적 있잖아요. 엄지손가락 하나 받는 거였는데, 그것도 ‘평면 지문’으로요. 어쨌든 지금은 그것도 없어졌지만. 그 때 지문날인이 야만적인 제도라는 걸 처음 알았죠. 우리는 아직도 열 손가락 다 받잖아요, ‘회전 지문’으로요. 왜, 손가락을 붙잡고 좌우로 돌리잖아요. 지독하죠. 우리나라같은 데가 없어요.”지문날인은 곧 모든 국민을 ‘예비 범죄자’로 간주하는 제도다. 어른이 되는 순간 국가에 자기 정보를 몽땅 등록하고, 관리가 필요한 ‘예비 범죄자’가 되는 과정을 우리는 얼마나 즐겼던가.
그저 지문날인 거부자 중 하나로 남기를 바랬던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지문날인 거부 78+’ 홈페이지 때문이다. 지문날인 거부자 78명이 구 주민등록증 효력이 상실되기 바로 전날인 99년 5월 만든 이 홈페이지는 이후 돌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123번째로 이 곳에 가입한 윤현식 씨도 1년도 훨씬 지난 지난 해 8월에야 우연히 들렸다가 깜짝 놀랐다.
“‘78+’가 ‘1700+’ 얼마로 변해 있는 거예요. 홈페이지를 호스팅했던 진보넷에 문의했죠. 그랬더니 가입자가 홈페이지에 가입하면 ‘+’ 앞의 숫자가 자동적으로 올라간다는 거예요. 정말 뜨끔했습니다. 홈페이지 관리도, 선전도 안 했는데 그렇게 참가자가 늘어난 걸 보니, 큰 소리로 외쳤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가고 나는 그동안 뭘 하고 있었나 부끄러웠습니다.”‘소극적인 지문날인 거부’라지만 그것도 편한 건 아니었다. 대체신분증이 하나 있을 법도 한 나이이건만 그는 유독 주민증도, 여권도, 운전면허증도 없었다. 법 전공하는 박사 과정이 들락거려야 할 국회도서관도 그래서 맘대로 출입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더 절박해서 이 운동을 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죠. 얼마 전에는 여권이 꼭 필요했는데 못 만들었어요. 누구는 외교통상부에 가서 치고 받으면 나올 거라고 그래요. 그럴 거면 일찌감치 ‘빽’써서 신분증 아무거나 하나 받았겠죠. 주민증 없어도 살 수 있는 사회 만들자고 운동하는 거지, 대체신분증으로 살자고 운동하는 게 아니니까요.”지문날인 거부보다 더 근본적인 목표는 바로 주민증 없는 사회다. 주민등록제도는 ‘간첩이나 불순분자를 용이하게 식별·색출해 반공태세를 강화하기 위해’ 박정희 군부독재 시절 만들어진 구시대 악법이 아닌가 말이다.
“한 해 동안 52만 건이7 넘는 5대 강력범죄가 발생하고, 그 중 지문감식 의뢰가 들어오는 건 2만4,000건 정도됩니다. 그런데 지문감식으로 신원이 확인된 건 겨우 2,800여 건이예요. 강력범죄 발생 건수의 0.5%도 안 되는 수치입니다. 이 0.5% 때문에 몇 천만 명이 넘는 대한민국 국민의 열 손가락 지문을 뜨다니요.”‘집회같이 불심검문 받을 곳으로만 많이 다녀서 그런가, 예전부터 검문도 싫고 주민증 까보이는 것도 싫었다’는 윤현식 씨. 법을 공부할수록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국가 폭력에 더욱 화가 나고, 그래서 지문날인 거부, 주민증 없애기 운동에 더 애착이 간다.
“지금까지 지문날인 거부하고 대체신분증으로 어렵게 살아오신 분들, 고생하셨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그렇게 하고 계십니다. 매주 화요일, 행정자치부 앞에서 1인 시위도 합니다. ‘지문날인거부 1961+’ 홈페이지(fprint.jinbo.net)로 오세요. 그리고 1,962번째 등록자가 되십시오!”
사회당 장성희 기자/ jsh@s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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