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구경거리에서 해방의 무기로

영화의 역사에서 거세된 계급투쟁을 복원해내기

김명준(노동자뉴스제작단)

원고 마감이 다가오면 언제나 쓰레기 더미 같은 상업영화들에서 이야기 거리를 찾아내기 위해 기를 쓰는 내 자신이 처량하기만 하다. 주류 영화들의 이데올로기를 폭로하는 작업도 중요한 것이긴 하지만, 대체 언제쯤 우리는 영화문화 혹은 산업을 우리의 것으로 생각하고 맘 편하게 영화를 즐기고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지...
다행스럽게도, 10년 전 쯤을 생각해보면 변한 것이 없는 건 아니다. 사회주의자 켄 로치의 영화가 개봉되기도 하고, 겨우 몇 년의 역사밖에 되지 않은 노동자 영상패들이 특히 인터넷을 통해서 맹활약을 하고 있기도 하다. 무엇인가 변하고 있긴 한 것이다. 문제는 그 변화의 어디 쯤에 우리가 서있는 것인지,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떤 역사를 딛고 서있는지 진지하게 되물으며 미래를 그 변화의 과정 속에서 구상해낼 수 있는가다.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블록버스터 중심의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영화문화가 언제나 이렇게 존재해왔던 것은 아니다. 그런 착각에 쉽게 빠지는 것은 한편으로는 워낙 현재의 시스템을 강요하는 자본주의의 힘이 강력하기 때문이지만, 보수적인 이론가나 평론가들이 기술한 영화의 '역사책'들이 급진적 혹은 계급적 영상운동의 역사를 철저히 배제시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굳이 혁명이후 소비에트의 사례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코미디 영화의 전성기 정도로 알고 있는 미국 무성영화의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의 상당수는 성장하던 노동조합 운동을 지지하던 영화사(!)들에 의해 제작된 것이었으며, 비슷한 시기 독일에서는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이, 프랑스에서는 공산당이 "노동자들의 투쟁을 영상화"하기 위해 직접 영화제작사를 지원하기도 했다.
반공주의가 휩쓸고 간 자리에서 다시 진보적 사회운동이 복원되기 시작하던 격동의 60년대에는 16미리 필름 카메라라는 새로운 기기를 활용한 진보적 다큐멘터리들이 대거 등장했으며, 이후 영화운동은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계급투쟁과 결합했다. 칠레의 아옌데 정권하에서 사회의 전면적 재조직화를 밑으로부터 진행한 민중의 투쟁과정은 <칠레 전투>를 통해서 '역사'로 기록될 수 있었고, 대처 정권에 맞서 싸운 영국 탄광 노동자들의 투쟁은 <캠페인 비디오>들을 통해서 진보적 비디오 운동가들의 조직적 엄호를 받았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이 전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바로 지금, 영화운동은 인터넷과 멀티미디어를 결합시키는 새로운 실험을 통해서 새롭게 탄생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1999년 시애틀 투쟁으로부터 시작된 독립미디어 센터(IMC=Indymedia center)가 놓여있다. 그 단적인 예로, 아르헨티나 독립미디어 센터의 활동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르헨티나 민중의 생생한 삶과 투쟁의 현장을 목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섣부르게 영화의 미래를 헐리우드 특수효과의 발전 따위로 착각하지 말자. 비록 강력한 영상산업의 장벽을 단번에 깨기란 쉽지 않지만, 미래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삭제된 역사를 복구시키고 그 실험들로부터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키워나가며 현재를 보다 풍부하게 해석하고 미래를 기획해내는 것이며, 그것으로부터 블록버스터의 태풍이 몰아쳐 오는 여름의 한복판에서 미래를 꿈꾸는 투쟁을 준비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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