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혁(노동자의 힘 회원)
1750명에 대한 정리해고와 전면파업, 공권력투입에 의한 파업대오의 해산, 1년여에 이르는 산곡성당에서의 농성투쟁, 농성지도부의 출두와 재판, 그리고 이 주체들이 대부분 집행유예 등으로 풀려난 오늘에 이르러서도 아직까지 대우자동차 투쟁은 끝나지 않은 채 정리해고특별투쟁위원회를 중심으로 원직복직을 위한 지난한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1년 6월을 훌쩍 넘기는 장기 투쟁이었기에 투쟁 전 과정에 걸쳐 피눈물을 흘리면서 고통스러움에 몸부림쳐야 하는 온갖 우여곡절도 투쟁해왔던 주체들의 가슴속에는 선연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여기에서는 이런 모든 것들을 담을 수는 없다.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의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성당의 수배자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정치학교가 갖는 의의와 한계를 간단하게 고찰해보고자 한다.
정치학교의 요일별 프로그램
성당에서 정치학교가 열리게 된 것은 성당에 거점을 둔 투쟁만으로는 현장 내부에 있는 조합원들에 대한 지도력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 이에 따라 노동조합은 현장과 긴밀히 교류할 수 있도록 직무대행체제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었다는 점, 또한 정특위 역시 노동조합을 거점으로 한 투쟁으로 전환하면서 산곡성당이 갖는 상징성 역시 점차적으로 축소되고 있다는 조건에서 수배자들이 한편으로 예전과 똑같은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집단적인 훈련 속에서 정치의식을 제고하기 위한 길로서 교육이 시작되었다.
월요일은 정특위 집회가 성당에서 열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특별한 일정을 잡지는 않았었다. 화요일은 전체적인 정세를 공유하면서 이후 투쟁방향에 대한 토론과 모색을 하는 자리였다. 수요일은 교양 강좌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예를 들어 초기에는 컴퓨터 교육을 진행하다가 나중에는 수배자들이 오랜 수배생활로 인하여 대개가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건강 강좌까지 진행하기도 하였다. 목요일은 노동운동에 대한 폭과 깊이를 넓혀나가기 위한 강좌가 준비되었다. 처음에는 노동운동사를 중심으로 하면서 점차적으로 철학 등으로 그 깊이를 더해나가고자 시도하였다. 금요일은 노동운동 이외의 부문운동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학생운동, 빈민운동, 정치운동, 통일운동 등에 대하여 토론을 하면서 전체적으로 노동운동에 머물지 않고 그 시야와 폭을 확장하고자 시도하였다.
정치학교의 소중한 의미
정치학교를 진행한 지 한달 반 정도의 세월이 흐른 후에 중간평가를 진행하였다.
첫째, 오랜 수배생활을 해왔음에도 서로를 이해하는 폭과 깊이가 평면적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었는데 상호간에 공동 토론과 학습을 통해 일정정도 해소되었다는 점이다. 지속되는 투쟁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하는 바탕이 있기는 하였지만 그것이 토론을 통해서 깊어지지 못한 채 간헐적인 술자리를 통해 수배에서 오는 억눌린 감정을 토로하거나 폭발시키는 것이었다면, 정치학교 진행 동안은 체계적인 토론 속에서 서로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둘째, 투쟁과 교육선전의 결합을 꾀하는 과정을 통해 관성적 투쟁주의가 갖는 한계를 일정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투쟁을 계속하는 경우에 발생하기 쉬운 것이 일정 박기 이상의 투쟁을 생각하지 못한 채 그 이상의 투쟁을 상승 발전시키는 폭과 시야를 갖지 못하는 경우가 장기 투쟁 사업장의 경우에 종종 볼 수 있는 현상이다. 특히나 대우 자동차의 경우에 성당 중심의 투쟁에서 노동조합을 거점으로 한 투쟁으로 전술을 변화시킨 것은 남아있는 수배 간부들에게 투쟁의 공백 속에서 공허한 감정까지 느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성당에서 집회를 매일 진행하지 않으니 자신이 무엇 때문에 성당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하는 것이 일반적인 정서였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정정도 체계를 갖는 정치학습과 토론의 진행은 그동안의 투쟁을 일정정도 객관화하면서 스스로 투쟁을 해야만 하는 당위에서 벗어나 무엇 때문에 투쟁을 하고 있으며 어떤 내용으로 전체 농성대오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문제를 던져놓았다.
셋째, 투쟁과 결합된 공동문화의 개발과 함께 개인들이 갖는 장점을 일정정도 개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산곡성당을 거점으로 투쟁이 이루어졌을 때의 문화는 투쟁이 가져다주는 극단적인 긴장감을 이겨내기 위하여 과도한 음주를 하는 등 스트레스를 개인적으로 풀어 가는 경우가 허다했었다. 정치학교를 진행하면서 바뀐 문화는 음주가 있는 경우라 할지라도 그것을 집단적인 문화로 만들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이외에도 공동으로 족구를 하면서 체력단련을 하는 등 대부분이 공동으로 풀어나가는 문화를 지향했다. 그래서 어떤 활동가는, 성당에서 투쟁도 배치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공동의 학습과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을 정도이다.
또한 한번은 자유 창작시간을 갖기도 했는데 거기에서 어떤 활동가는 간단한 시를 지었는가 하면 또 어떤 활동가는 작곡을 또 어떤 활동가는 개사곡을 그리고 어떤 활동가는 수필에 가까운 글을 또 어떤 활동가는 쓰지 못하는 디스켓을 가지고 전체 한국의 상황에서 성당투쟁이 차지하는 위상을 응축된 작품으로 또 어떤 활동가는 간결한 그림을 통해 우리가 처한 어려움을 표현하면서 정말로 서로가 어떤 장점들을 가졌는지를 확인하게 했던 점이다. 이것에 기초하여 이후에도 자신들이 갖는 장점을 운동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해볼 것을 상호간에 권장하기도 하는 아름다운 광경도 더러 연출되었던 것이다.
몇가지 아쉬움
첫째, 상호간에 공동으로 평가했던 것중의 하나로서 토론의 깊이를 일상생활로까지 이끌어내지는 못했던 것이다. 현장투쟁을 하는 와중에서 하는 학습과 토론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심화시켜나가는 것에 적지 않은 어려움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평가하는 자리에서 한 활동가는 "우리가 토론을 하는 것 중 절반 이상은 결론을 짓지 못한 채 문제의식으로서만 남겨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조건상 더욱 심화된 공부를 하기는 어렵다면 술좌석에서라도 그 토론의 연장에서 이런 저런 의견을 나누어야 하는데 여전히 술좌석이 사소한 일상생활에 대한 문제를 주고받는 것으로 그치고 있다"는 의견을 제기하였다. 그러면서 술좌석에서도 정식 토론과 유사한 토론 문화를 활성화시켜보고자 했으나 성과있게 진척되지는 못하였다.
둘째, 언제 정리될지 모르는 수배라고 하는 조건이 심화된 토론으로 나가는 것에 장애로 작용하였다는 점이다. 수배생활은 언제 어떤 상황이 밀어닥칠지 모르는 힘겨운 생활의 연속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생활조건이 이렇게 안정적으로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 토론과 학습의 심화된 내용을 요구하는 것은 애초부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어떤 활동가는 중간 평가를 하면서 "우리의 학습이나 토론이 너무 자족적인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시간 때우기를 위해서 이것을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고 하는 정도로까지 비관적이며 자조 섞인 평가조차 있었던 것이다.
셋째, 농성 투쟁에 걸맞는 커리큘럼이나 지침서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수배자들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고 하는 점이다. 일상적 시기가 아닌 투쟁시기에 걸맞는 대중적 프로그램 외에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훈련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은 거의 찾아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투쟁과 교육의 결합
지금도 여전히 전국 곳곳에 투쟁사업장은 수없이 존재하고 있으며 또한 이후로도 투쟁사업장은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하지만 투쟁이 진전될수록 투쟁에 걸맞는 토론이 부족할 뿐 아니라 그에 걸맞는 내부 교육과 선전은 더욱 부족한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 그래서 투쟁에 대한 공유 역시 일부 간부들의 수준에서만 이루어질 뿐 투쟁에 동참하는 다수의 대중들은 오히려 대상화되고 있기조차 한 것이다. 이것이 보다 높은 수준으로 나가는 투쟁을 가로막는 하나의 요인으로 작동됨은 말할 필요조차 없는 진리이다. 투쟁을 지원하는 단체나 조직 역시 이런 요구에 눈을 감거나 돌려서는 안된다. 현실 투쟁과 결합하여 이름 빛내는 사업을 하기는 쉬운 일이다. 그러나 더욱 높은 투쟁을 위한 밑거름이 되는 교육과 선전 등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과 결합 속에서만 정말로 발전된 투쟁을 해나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은 새삼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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