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공공연맹 정책부장)
지난 호에서 세 가지의 간단한 근거를 내세워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 제도가 폐지되어야 한다는 이유를 제시하였지만, 이번 호에서는 보다 많은 근거를 들어 정의롭지 못한 한국의 부르주아 의회정치와 국고보조금 제도가 폐지되거나 정치시장에서 퇴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자 한다.
"정의야말로 제도 구축에 있어서 최고의 덕목"이라고 했던 롤즈(J. Rawls 1971)의 지적처럼, 어떠한 제도든지 구축되는 과정과 운영이 정의롭지 못하다면, 구성원 모두가 그 제도에 복종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제도를 폐지시켜야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의 부르주아 의회정치와 국고보조금 제도는 롤즈의 지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국고보조금 제도를 만드는 과정과 그 내용이 정의롭지 못하였으며, 또한 정의롭지 못한 제도를 운영하는 과정조차 정의롭지 못하다. 그리고 노동자 계급정치의 출현을 저해하는 주요 수단이다. 주범은 부르주아 의회였고, 공범은 부르주아 정당들이다.
첫째로는 사회 구성원들의 의지가 전혀 반영되지 못하고 내용조차 사회의 특권세력의 이해만을 반영하고 있는 제도는 정의롭지 못하다. 국고보조금 제도는 사회 구성원들의 의사를 묻지 않은 상태에서 1980년 신군부 세력을 중심으로 한 쿠데타 세력에 동참한 몇몇 정치인들의 '자유의지'대로 만들어졌다. 그 의지는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는 부르주아 정치세력에게 돈을 대주는 것이었다.
권력을 위임받은 국회의원들이 정당한 절차를 거치면서 만들었다고 한다면, 사회 구성원들이 권력을 위임한 대리인들의 행위였다는 점에서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국고보조금 제도는 국회가 해산된 상태에서 만들어졌으며, 그 핵심 내용은 부르주아 정당의 운영에 필요한 돈을 국가가 제공하는 것이었다.
물론 헌법과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정당의 보호'와 '정당정치의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정당에 많은 돈을 주고 있는 제도가 국고보조금 제도다. 정의롭지 못하게 만들어진 제도를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고 있다는 명분에서 그 제도의 정당성을 찾아서는 안된다. '악법도 법'이라는 격언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어떠한 행위도 그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둘째로는 정당의 주체가 당원이 아니라 국가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의롭지 못하다. 한국은 정당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경비를 국가가 다 지원하고 있다고 해고 과언이 아니다.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고보조금의 사용처는 다음과 같다. "기본경비로써 인건비, 사무용비품 및 소모품비, 사무소 설치비·운영비, 공공요금이 있고, 정치활동비로는 정책개발비, 당원교육훈련비, 조직 활동비, 선전비, 기타 정당의 활동에 소요되는 경비, 선거관계비용(선거보조금에 한함)등에 사용하라"고 규정되어 있다.
1990년 대 후반에 사용한 정당의 정치자금 총지출 규모와 국고보조금 간의 상관관계를 아래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다.
<표> 정당의 정치자금 총지출액 대비 주요 지출경비의 비율
구분/1995/1996/1997/1998/1999/연평균
총지출액(억)/2,182/2,943/2,617/2,023/1,191/2,191
기본경비(억)/895/1,393/982/665/602/907
인건비(억)/-/607/586/381/367/485
국고보조금,당비/761,260/477,377/503,395/775,259/251,323/553,322
총지출액대비기본경비비율(%)/41/47.3/37.5/32.8/50.5/41.3
총지출액대비 당비비율(%)/11.91/12.81/15.09/12.80/27.12/14.69
기본경비, 인건비지출액대비 국고보조금비율(%)/23.85/32.07/74.09/25.90/39.72/-
자료: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당의 활동 개황 및 회계보고(1995-1999)
1995년부터 1999년까지 각 정당의 기본경비·인건비 지출액 대비 국고보조금의 비율은 많게는 74.09%이고 적게는 25.90%이다. 반면에 각 정당의 년간 총 지출액 중 당비가 차지하는 비율은 평균 15.75%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정당운영의 기본적인 경비의 최소 25.90%에서 많게는 74.09% 이상이 국가로부터 지원되고 있는 것이다.
회비를 내지 않는 조직원들에게 참여권을 부여하지 않는 조직의 기본원리에 비추어 본다면, 정당의 주체는 당비를 내는 당원이라고 할 수 있다. 위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국고보조금이나 사업비·후원금으로 운영되는 한국 정당은 당원에 의존하는 주체라기 보다는 국가에 의존하는 주체라고 할 수 있다. 미국·독일·일본의 경우에는 정당이 당원을 통해 자체적으로 확보하는 정치자금의 수준에 상응하여 국고보조금을 정당이나 후보자들에게 지급하고 있다. 비록 제한적일지라도, 이들 국가의 국고보조금제도는 당원들이 주인인 정당을 양성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그러나 당원에 의지하지 않는 한국의 정당들은 국고보조금으로 유급 인력을 거느리면서 방만한 중앙당 조직이나 지구당 조직을 당원들이나 유권자들로부터 '상대적 자율성'을 보유한 하나의 '관료조직'으로 존재하면서 당원들을 배제시킨다. 만약 부르주아 정치를 거부하는 정치세력들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정치활동의 토대를 강화하기 위해서 혹은 헌법과 법률에서 보장하는 정당이기 때문에 국고보조금을 수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정당을 특권적 주체로 생각하는 정치적 관료의식의 발로에 불과하다.
셋째로는 경쟁적인 정당정치의 구조를 가로막고 있다는 점에서 정의롭지 못하다. 한국의 정당들은 국고보조금을 중심으로 정당의 카르텔 구조를 구축하였다. 거대 3당이 국고보조금의 95% 정도를 독과점하고 있듯이, 또한 필요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정치행보를 자연스럽게 여기고 있듯이, 부르주아 정당체제의 비경쟁적인 담합구조가 구축된 것이다. 즉 국고보조금에 의존하여 정당을 운영하면서 국가에 예속되거나 비경쟁적인 위성정당으로 전락하여, 새로운 노동자 계급 정치세력의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카르텔 정당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 및 부르주아 정당과 경쟁적 관계를 유지해야 할 진보적인 정당은 비경쟁적 카르텔 정당체제를 극복해야 한다. 국가의 비경쟁적 위성정당으로 전락하여 자본의 이해에 복무할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카르텔적 부르주아 정당체제와 이 체제의 토대를 제공하고 있는 국가를 무너뜨리기 위한 독자적인 투쟁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만약 국가 및 부르주아 정당과의 관계에서 부르주아 정치를 거부하고 있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정치세력이 오히려 부르주아 국가의 부속장치를 작동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한다면, 그러한 정치세력은 정의롭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정체성의 혼돈상태에 빠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부르주아 정치세력의 기반은 '조직보다 돈'이다. 물론 부르주아 정치세력은 국고보조금이 아니라 하더라도 자본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면서 그들을 대변하게 될 것이다. 소위 진보진영에서는 이러한 사실들을 근거로 '정치자금의 평등'을 위한 투쟁의 전리품격인 국고보조금을 법률에서 규정한대로 투명하고 정당하게 사용하면서 정치적 토대를 강화하고, 더 나아가 국가권력을 장악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또한 국고보조금의 폐지가 부르주아 정치세력에게 오히려 득이 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본래 정당간의 '정치자금 평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정당이 동일한 액수의 국고보조금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정치자금이 평등하게 사용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국가의 작위적 담론에 불과하다. 정치자금이 부족한 야당에게만 지급하는 영국식 국고보조금(short money) 제도도 마찬가지다. 정당의 자금력은 이념에 동의하는 세력의 힘을 직접적으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노동자 계급의 국가권력이 수립되지 않는 한, 부르주아 정당들은 국고보조금 제도의 존재 유무를 떠나 막대한 정치자금을 동원할 수 있다. 노동자 계급은 부르주아 계급과 정치적 경쟁에서 기본적으로 돈을 필요로 하지만, 실질적으로 노동자 계급의 조직력과 투쟁력을 필요로 한다. 후자의 역량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전자도 역량이 구축되기 마련이다. 부르주아 정치세력의 비경쟁적 담합구조를 계급간의 경쟁적 독립구조로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운동의 경우만 본다하더라도, 그래야만 할 이유가 충분하다. 만약 조합원들의 권력을 위임받은 위원장과 노동조합이 자본과의 관계에서 경쟁적인 독립조직으로 존재하지 못하고 비경쟁적인 위성조직으로 존재하거나 담합조직으로 존재한다면, 조합원들은 그 위원장과 노동조합을 정의로운 주체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어용노조를 민주노조로 바꾸기 위해 투쟁했던 노동조합운동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넷째로는 "목초지의 비극"을 재촉하는 제도라는 점에서 정의롭지 못하다. 혈세를 주인 없는 무주공산(無主空山)의 목초지처럼 생각하는 부르주아 정치세력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목초지를 황폐화시키는 목축인들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정의롭지 못하다. "목초지 비극"의 원인이 목초가 주인 없는 '무상재'라는 점과 방어적 이유를 내세웠든 공격적 이유를 내세웠든 목축인들이 이기주의적 존재라는 점이었듯이, 부르주아 의회나 정당들은 목초지를 황폐화시는 목초인들과 마찬가지로 사회 구성원들의 삶을 황폐화시킨다.
악어와 악어새처럼, 의회는 입법권을 활용하여 유권자 1인당 100원이었던 국고보조금을 800원까지 증액시켰고, 지자체 선거가 있는 해에는 선거보조금까지 지원하게 하였다. 법률로 규정된 국고보조금의 사용처를 증빙하는 서류를 보면 더욱더 가관이다. 참여연대의정감시센터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면, "1999년 각 정당이 지출한 국고보조금 265억 2천 5백만 원 중 46.3%가, 2000년도에는 정당 국고보조금 516억 원 가운데 75% 이상이 세법상 인정되지 않는 증빙자료로 구성되어 제출되었다.
이와 같이 부르주아 정치세력들은 혈세를 눈 먼 돈으로 생각하고 사회 구성원들의 삶을 황폐화시키고 있으며, 자신들이 만든 법률의 정당성을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부르주아 정치인들이 '득표극대화'와 '재정극대화'를 추구하는 합리적 존재로 행동하는 이상, 상호 경쟁적으로 국고보조금을 요구하고 증액함으로써 결국 혈세를 고갈시키고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1993년에 이탈리아에서 정당 국고보조금 제도가 폐지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다섯째로는 시장의 상식적인 논리에 비추어 본다하더라도, 국고보조금 제도는 정의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시장에 나오는 재화의 가격은 기본적으로 소비와 공급의 균형점에서 형성된다고 한다. 그런데 국고보조금은 '보이지 않는 부르주아 권력의 손'만이 작용한다. 권력을 위임받은 대리주의적 의회의 무소불위(無所不爲)적인 선택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의회의 입법권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사회 구성원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무상재' 형태로 사고 팔린다.
국고보조금의 주인은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 구성원들이다. 노동자 계급은 그 재화를 사거나 팔 수 있는 유일한 주체이다. 현재 부르주아 정치시장에서 무상재로 공급되고 소비되는 국고보조금은 주인이 돌려 받아야 한다. 그것을 위한 최소한의 수단은 노동자 계급의 돈이 부르주아 정치세력에게 무상으로 공급되는 장치를 없애는 것이다. 권력을 위임하는 과정에서 정치를 생산하고, 위임한 권력의 통치를 받는 과정에서 정치를 소비한다면, 사회 구성원의 대다수인 노동자 계급은 생산한 권력에 대해 통제할 수 소비권력을 동시에 보유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자신의 돈이 낭비되고 있는 부르주아 정당을 퇴장시키거나 혹은 더 이상 부르주아 정당에게 자신의 돈이 공급시키지 않는 권력을 보유하여야 하는 것이다.
국고보조금 제도를 폐지시키기 위한 투쟁은 노동자 계급의 생산권력과 소비권력을 확보하기 위한 시작에 불과하다. 부르주아 계급의 지배수단인 의회, 정당, 국가 등의 계급적 응집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투쟁인 것이다. 만약 노동자 계급정치가 부르주아 정치세력의 기반인 정치자금의 수요와 공급을 공격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정의롭지 못한 부르주아 의회 민주주의를 퇴장시킬 의지가 없는 것이며 더 나아가 오로지 노동자 계급을 정치적으로 동원하고 대상화하고자 하는 정치적 관료주의에 다름 아니고, 노동자 계급에게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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