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익(노동자의 힘 회원)
평소 축구를 보는 것도, 하는 것도 무척 좋아하던 나로서는 6월 내내 꿈같은 날들을 보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유럽의 내노라 하는 나라들을 연파하며, 4강까지 진출했기 때문이다. 이런 걸 두고 cool running이라고 하는가 보다. 결과 못지 않게, 내용 또한 좋았다. 홈 경기의 이점이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지만, 정말이지 한국 선수들은 경기 시간 내내 죽을 힘 다해 뛰는 것 같았다. 끊임없이 상대선수들을 압박했다. 공격라인과 최종 수비라인은 어떤 선수가 공을 잡던 간에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마치 밀물과 썰물에 따른 파도의 움직임처럼, 그들은 사전에 계획한 팀 전술 대부분을 소화해냈다. 불굴의 정신력과 기필코 이기고자 하는 투지, 그리고 그에 걸맞은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고서, 그러한 경기력을 선보인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축구는 축구일 뿐 거기에다 별도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는 주장에 대체로 동의한다. 하지만, 축구선수단이 포상금을 똑같이 나누어 갖겠다고 하자, 그러한 발언은 경쟁에 의해 뒷받침되는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부정하는 빨갱이 발상이라는 망언을 일삼은 한심한 고위 축구브로커가 있는 한, 월드컵에 대해 마냥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무엇보다 '아시아의 자부심'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눈에 들어왔다. 월드컵 역사상 아시아에서 8강까지 올라간 나라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때 북한과 한국 단 두 나라이다. 이러한 성과를 한반도에 속한 나라들만이 이루어냈다는 자칫 '자민족 중심주의'로 흐를 수도 있었을 법한 사안을 '아시아의 자부심'이라는 구호는 전체 아시아 민중의 기쁨으로 고양시켰다. 특히 한국과 황당한 전쟁을 벌였던 베트남 인민들이 거리로 뛰어나와 자기 일처럼 좋아하던 모습, 한국에서 온갖 수모와 냉대, 질시 속에 3D 업종의 고역을 감내해 온 파키스탄 출신의 이주노동자들이 열광하던 모습이 내내 인상적이었다.
정말이지 속으로 찔렸다. 만일 거꾸로 베트남이나 파키스탄과 같은 나라들이 과거 서구 제국주의 모국들을 제치고 축구 경기에서 승리한다면, 우리도 저들처럼 기뻐하고 환영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확실히 그렇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한국인들의 독특한 배타성에서 연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지난 반세기동안 장시간, 저임금노동의 초과착취 덕에 세계 10대 산업국의 반열에 올라, 일본과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나라들을 업신여기고, 이제는 주인처럼 행세하려는 제국주의적 한국자본의 높아진(?) 위상 때문일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국가경쟁력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한국의 독점 대자본에게 이 세계는 거대한 전쟁터로 여겨질 따름이다. 아시아 민중들이 제공하는 값싼 노동은 싱싱한 착취의 소재이며, 포화상태를 넘어 폭발일로에 있는 인구는 상품의 가치를 실현하는 엄청난 잠재적 시장으로만 그 존재의의를 지닌다. 월드컵이 끝나기가 무섭게 국가브랜드 구축이니 한국자본의 인지도가 1%이상 올라갔다고 떠벌리며, 주판알 퉁기기에 여념이 없는 자본에게 애당초 아시아 민중의 연대나 나눔의 정신은 오직 그것이 가져올 금전적 가치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이 다소 의미가 있었다면, 그것은 한국 선수들의 하고자 하는 열망과 이를 뒷받침한 민중들의 열띤 응원에 힘입은 것이다. 한달 동안 우리는 부정부패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따른 사회-경제적 억압, 우파들의 전쟁선동이 난무하는 일상에서 탈출하여 신선한 미풍을 잠시 흡입한 것일 뿐, 이 사회는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자본과 국가는 국가브랜드니 이미지 구축이니 하면서, 그 성과를 독식하려 하고 있다. 게다가 이를 통해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움직임마저 노골화하고 있지 않은가? 누가 그것을 허용하기나 했단 말인가? 우리가 대표팀을 응원한 것은 파업이나 하지 말라고 노동자-민중의 입에 재갈을 물리면서 뼈빠지게 일만 하라는 자본의 요구에 순치 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국가 브랜드 어쩌고저쩌고 하는 호들갑은 서구라는 타자의 눈에 길들여져 자기검열을 일삼아온 자본과 국가에게만 해당될 노릇이다. 만일 국가이미지의 실체라는 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리고 그게 그토록 걱정스럽다면, 국가이미지를 실추시킨 장본인은 권력을 참칭하여 수 십억의 돈을 삥 뜯다가 감옥에 간 아들을 둘씩이나 둔 현직 대통령에게서나 찾으면 될 일이다.
미군전차에 의해 꽃다운 누이가 죽임을 당하고, 50만원도 채 안되는 최저임금에 치를 떨어야 하며, 연평도 교전으로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를 엄혹한 우리의 현실에 대놓고, 국가브랜드니 하는 잡소리는 집어치우길 바란다. 세계의 노동자-민중들, 특히 아시아 민중들은 그동안 온갖 불의와 억압에 맞서 끊임없이 저항해온 민중운동의 이름으로 한국을 기억한다. 진정 한국의 진보적 민중운동이야말로 아시아민중의 자존심으로 대접받을 만 하다. 해서 아시아 민중의 연대를 위해 한국의 진보적 사회운동이 한층 더 앞장서야겠다. 이번 6.13 지자체 선거의 결과를 계가해 보면,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입장이 대중적 좌선회로 규정할만한 증좌가 분명 있다. 국보법 완전폐지, 노동·주거·건강·복지·교육 등 민중들의 제 생존-생활권 확보, 평화체제의 항구적 구축을 통한 주한미군 철수 등 한국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진보세력이 성취해야 할 과제는 너무도 많으며, 우회할 것이 아니라, 이번 한국 축구 4강 진출처럼 정면 돌파하면서 역사란 찔끔찔끔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단숨에 도약하는 것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이것은 아시아 민중, 나아가 세계 노동자-민중의 보편적, 일반적 목표이기도 하다.
차제에 한 가지만 더 지적하면,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조종(弔鐘)이 그 중추인 미국사회 내부로부터 울리고 있음을 목도한다. 거대기업들의 장부회계 조작을 통한 폭리취득 등 각종 금융스캔들이 난무하는데, 어째서 미국의 신용등급은 그대로인지, 미국기업의 투명성을 본받자, 민영화만이 살길이라며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자고 핏대를 올려대던 남한의 시장경제의 전도사들과 거대 언론자본들은 한결같이 꿀 먹은 벙어리들인지? 금융스캔들에 대처하기 위해 부시 행정부는 러시아 혁명 직후 암거래를 집중단속하던 비밀경찰 '체카'의 미국판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업범죄수사대의 창설을 공표 했다. 역사의 복수가 시작되었다. 자본주의는 어쩌면 부지불식간 이렇게 저물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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