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제발 법대로 좀 합시다"

두달 넘긴 인천택시 파업

오진아 dodani@kdlpnews.org
“몸이 아프던 말던 하루에 7만4천원은 회사에 갖다줘야 해요. 운전대 잡기 전까지 이런저런 일을 해봤지만 택시만큼 힘든 게 없어요. 몸도 피곤하지만 7만4천원을 맞춰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제일 심하죠.”

택시운전 경력 6년차인 장정호(46)씨. 1일 맞교대 근무를 하고 있는 그의 근무시간은 새벽 4시부터 오후 4시까지다. 식사시간을 제외하면 평균 10시간을 일하는데 그렇게 해서 버는 수입이 하루 9만원에서 9만5천원 정도.
이중 7만4천원을 사납금으로 내고 나머지 돈은 집으로 가져간다. 26일 만근을 했을 때 장씨가 받는 월급은 73만5천원. 여기에 매일 1∼2만원씩 집으로 가져가는 돈을 합치면 월 1백10만원 정도가 장씨의 평균수입이다.

장씨는 택시노동자의 삶을 “하루살이 인생”이라고 말한다. 월급 73만5천원으로는 네식구가 도저히 먹고살수가 없으니까 손님 한명이라도 더 태워서 매일매일 ‘가욋돈’을 챙겨야만 한다는 것. 언뜻 생각하면 “열심히 일한만큼 더 가져가면 좋은 거 아닌가”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사납금 채울 시간이 되면 운전기사들은 정신 못차려요. 어떤 날은 정말 손님이 없을 때가 있는데 최소한 사납금은 채워야 하니까 합승도 하고 장거리 손님만 골라 태우게 되죠.”

‘사납금’은 택시노동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족쇄’이다. 사납금을 채우지 못하면 월급에서 가불을 해서라도 채워야 한다. 골라태우기, 불법합승 등 택시서비스가 개선되지 않는 이유도 바로 ‘사납금’ 제도에 있다는 게 정씨의 설명. “총파업투쟁 승리해서 사랑받는 택시되자”는 구호를 외치며 그가 지난 15일부터 인천시청 앞에서 동료들과 농성을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난 24일 오후 4시 인천시청 앞 광장. 20여개의 농성천막 주변에 내걸린 “인천시장은 택시파업사태 해결하라”, “불법경영 악덕사업주들 즉각 처벌하라”는 현수막이 이곳 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파업 62일째. 인천지역 61개 택시회사 중 민주택시연맹 소속 32개 사업장 4천5백여명의 택시노동자들은 지난 두달 동안 운전대를 한번도 잡아보지 못했다.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음에도 사태해결의 기미가 보이질 않자 지난 15일부터 강승규 민주택시연맹 위원장을 비롯 인천지역 32개 택시노조 위원장이 목숨을 건 단식농성에 들어간 상태다. 지도부 단식농성과 동시에 조합원 1백50여명도 이곳에서 철야농성을 시작했다.

현재 대부분의 택시회사들은 매일 얼마씩의 돈을 회사에 입금하고 나머지를 택시기사가 가져가는 사납금제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사납금 이외의 수입에 대해 6대 4로 택시기사와 회사가 나눠갖는 ‘업적금제’를 실시하고 있긴 하지만 일정액의 사납금을 회사에 입금시킨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파업중인 택시노동자들의 요구는 바로 이러한 임금체계를 바꾸자는 것이다. 완전 월급제의 전단계로서, 월 평균운송수입금의 50%를 월급으로 책정하고 성과수당은 월 개인별운송수입금에 대해 가감누진율을 적용하는 ‘가감누진형 월급제’를 도입하라는 것.

사실 이런 택시노동자들의 요구는 새로운 것도, 무리한 것도 아니다. 이미 97년 9월 1일부터 ‘택시운송수입금전액관리제’(월급제)가 입법화되었고 지난해 말 건설교통부가 ‘택시개선종합대책’ 발표를 통해 전액관리제의 철저한 시행을 약속한 바 있기 때문이다.

“우리 요구는 한마디로 ‘법대로 하자’는 거에요. 법에 사납금제를 없애고 월급제를 하라고 되어 있는데 사업주들이 안 지키고 있으니까요. 또 법을 어겼으면 처벌받는 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런데 정부는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으니 정부도 법을 철저히 집행하라는 거죠.”(단식중인 장기륜 경영기업분회장)

오후 5시. 인천택시 노조간부들이 노동청에서 교섭을 마치고 농성장으로 돌아왔다. 파업기간 동안 중단됐던 노사대화는 지난 9일 교섭으로 물꼬를 트나 싶었으나 단 두차례 만남 이후 또다시 결렬됐다. 연맹이 단식농성을 들어가며 25일까지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차량투쟁 등 전면적인 투쟁에 나서겠다고 경고한 터라 이날 교섭은 앞으로 택시파업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지 아니면 원만한 타결을 보게 될지를 가늠하게 될 중요한 자리였다.

이날 교섭위원으로 참석한 정봉열 연맹 인천본부 부본부장은 “노동청이 교섭에 나온 4명의 사장들 외에 나머지 사장들로부터 위임장을 받아와 이번 교섭이 노사를 대표하는 교섭임을 분명히 했다는 게 성과라면 성과”라며 내일 오전에 다시 교섭을 재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오후부터 삼삼오오 농성장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택시노동자들은 투쟁문화제가 열리는 오후 6시가 되자 1천5백여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이날 문화제는 대우자동차 노래패, 꽃다지 등 외부에서 초청된 팀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조합원들이 직접 나와 노래와 율동, 연극을 보여줘 큰 박수를 받았다. 한성운수 소속 노래패 ‘꽃미남’은 공연에 앞서 “위원장님이 집회에 참석하는 시간 외에 남는 시간에 연습하라고 해서 2시간 밖에 연습을 못했다”고 말했는데 신나는 노래공연에 조합원들이 연신 “한번 더”를 외치자 “2시간 동안 한 곡 밖에 연습을 못해 앵콜곡이 없다”고 해서 좌중이 웃음바다가 되기도.

이날 농성장 주변에는 아이와 함께 나와 문화제를 구경하는 가족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남편이 우창기업 조합원이라는 김미영(30)씨는 “남편이 지금 하는 일이 옳다는 걸 안다. 하지만 파업이 두달 넘게 계속되다보니 경제적으로 힘든 게 사실”이라며 “빨리 사태가 해결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조합원들에게 초 하나씩이 돌려졌다. 강승규 연맹 위원장을 시작으로 초에 불이 붙여졌다. 촛불은 옆에 있는 동지들에게로 이어지며 금새 농성장 주위가 환하게 밝혀졌다. 그렇게 불이 붙여진 초들이 한데 모여서 글자를 만들어냈다. ‘파업 승리’.

“여보! 내 하나의 힘은 미약하지만 우리 동지가 있고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한 이 싸움은 기필코 승리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당신의 노고와 희생에 대한 보답을 이 싸움의 승리로 돌려드리겠습니다. 이 싸움이 승리하는 날 당신과 우리 아들, 딸 데리고 가까운 공원이라도 가서 조촐한 우리만의 파티라도 합시다. 머지 않아 우리 가족에게도 웃음이 찾아올거라 믿으며…”
(40대 조합원이 낭독한 ‘아내에게 쓰는 편지’ 중에서)
[ 98호] 7.29 ~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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