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자와 남은 자들⑭]"희정이 마음으로 살아야지"

권희정 열사 어머니 강선순씨

한박정미 woodfish@kdlpnews.org
1990년 고척고등학교 시절, 어머니는 학내 재단 비리와 관련해 끝까지 항의시위를 벌이던 권희정 열사가 그 자리에서 어머니에게 한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 나는 용기가 없어서 앞에 못 나선 거예요. 용기 있는 친구들이 부당하게 퇴학을 당하고 대학도 못 가게 생겼는데 어떻게 제가 여기서 집에 갈 수가 있겠어요.”

이후 권희정 열사는 1996년 성신여자대학교 총학생회 정책국장(당시 23세)으로 ‘예결산안 공개, 등록금 소위원회 재개” 등을 요구하며 학내 자주화 투쟁의 선봉에 섰다. 그리고 학교측이 학생들의 요구는 외면한 채 학생들에게 위협을 가하자 총학생회장과 함께 투쟁을 승리로 이끌겠다는 각오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그리고 10일간 계속된 단식후유증에 시달리던 권희정 열사는 갑작스런 심근염으로 운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딸의 죽음을 슬퍼하는 많은 이들을 보면서 그제야 딸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게됐다. 대학생활 4년이 넘는 시간동안 어머니가 딸의 운동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딸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한 번은 책상에 일기장이 펼쳐져 있더라고. 그치만 나 그거 안 읽었어. 믿어야지. 부모가 일기장을 읽고 자식을 나무라면 자식이 어떻게 부모를 믿고 존경하겠어.”

권희정 열사를 키우면서 자식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행복은 다 누린 것 같다고 말할 만큼 권희정 열사는 부모님께 언제나 자식이상의 믿음직한 버팀목이 되는 큰딸이었다.
“희정이가 1년에 두 번씩 농활을 꼬박꼬박 갔었어. 한 번은 희정이가 농활간 동네 이장님이 직접 나한테 전화를 주신 거야. 그리고는 어떻게 이렇게 훌륭한 딸을 두셨냐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시잖아. 그러더니 희정이 돌아오는 날에도 전화를 하셔서 지금 차 태워 보냈다고 전하시더라구.”

지난 24일 어머니를 만나 뵙기 위해 찾아간 곳은 조계사였다. 그 날은 마침 1년이 넘는 시간을 끌어온 권희정 열사 명예회복을 위한 첫 번째 심사가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명예회복위원회에 가야 할지 말아야 할 지를 고민하던 어머니는 결국 조계사로 향했고 그 어느 때보다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조심스레 불공을 드리시고 계셨다.

건강해 보이신다는 말씀을 건네자, “얼굴이 부어서 좋아 보이는 거야. 내가 희정이 보내고 나서 신경을 어찌나 많이 썼던지 고기를 많이 먹는 것도 아닌데 동맥경화증에 걸렸어. 게다가 우울증까지 겹치고. 그치만 지금은 더 나빠지고 있지는 않아.”

잠깐 어머니 얼굴에 6년 세월이 만든 우울증의 그림자가 드리우는가 싶었으나 이내 어머니는 “나는 희정이 얘기 할 때가 제일 기분이 좋다”며 예의 그 밝은 얼굴로 딸의 생전 이야기들을 이어가셨다.
“희정이가 대학 들어가 얼마 되지 않아서지. 김귀정 열사 추모식에서 그 어머니를 뵙는데 어머니 얼굴이 내 얼굴로 보였다는 거야.”

어머니는 딸이 자신의 운명을 예견했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한다. 그러나 강해 보이던 어머니도 딸이 그렇게 죽을 때까지 아무런 힘도 돼 주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이어지면서는 이내 눈가에 눈물이 번져났다.
눈물을 훔치시던 어머니는 한동안 권희정 열사의 친구들을 원망했었노라고 털어놓으셨다.
“우리 집에 잘 오던 친구들한테 내가 그렇게 부탁했었거든. 혹시 우리 희정이한테 무슨 이상한 눈치 보이면 꼭 좀 알려달라고.”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어머니에게 원망 같은 건 없다. 원망은 커녕 6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않고 찾아주는 선후배친구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권희정 열사를 기억해주는 많은 이들을 위해 이제 어머니는 구체적인 봉사활동을 계획중이다.
“누굴 원망하고 슬픔에 낙담하고 있는 건 우리 딸의 뜻이 아닐거야. 내가 다른 사람 위해 남은 생 살아가는 게 희정이 뜻일 거라 생각해.”

이미 오래 전부터 권희정 열사 이름으로 장학금을 수여하고 계신 사연을 어머니는 기어코 기사에 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셨다. 이러한 어머니의 모습에서 권희정 열사가 남긴 글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우리 엄마이다. 내가 엄마 나이 때엔 꼭 엄마 같은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언제나 옳은 일 앞에선 뜻을 굽히지 말라고 가르치시던 우리 엄마.”

어머니를 뵙고 온 날 저녁 심사결과가 궁금해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의 낮은 음성을 타고 좋지 않은 결과가 전해졌다. 추모사업회에 따르면 현재 명예회복위원회 제출된 자료 중에서 권희정 열사처럼 김영삼 정권시절 열사들은 심의가 늦어지거나 아예 진행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때문에 권희정 열사의 명예회복을 위한 여정 또한 결코 순조롭지 않을 것 같다. 부디 어머니를 비롯해 열사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이 지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 98호] 7.29 ~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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