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한국학교수
민주노동당 활동가 유호근의 병역거부 선언의 희보(喜報)를 들었을 때, 역사가 진일보하는 현장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세계진보운동사에서 처음부터 사회주의를 동반해온 전쟁거부의 정신이 한국 사회주의자 사이에서도 드디어 본격적으로 발휘됐다는 것은, 한국 진보운동이 성숙단계에 진입했음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당장 들었다. 그러나 기쁨과 함께 걱정이 오기도 했다.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를 들추어보면 ‘전쟁을 먹고사는’, 그리고 군사주의 선전으로 대중의 뇌를 마비시키는 제국주의 세계에서 평화와 만국 근로자의 형제·자매애의 원칙에 충실하기란 얼마나 힘든가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친미반공 극우세력들이 아직까지 지배층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특수한 상황에서 사회주의적 평화주의의 길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 아닐 수 없다.
미제의 최초의 본격적인 아시아 침략인 1899~1902년간의 필리핀 침공·식민화 때는, 미국 내 초기 사회주의적 단체야말로 가장 일관성이 있는 반(反)침략, 평화주의적 입장을 시종일관 고수해왔다.
그러나 진정한 시련의 시기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왔다. 소수를 제외하고는, 전쟁의 주요 당사국인 프랑스, 독일, 영국, 러시아의 ‘주류’ 사회주의자들은 군사주의적 선전의 맹공(猛攻)에 못 이겨 제국주의적 살육을 ‘조국방위전쟁’으로 받아들였다.
지금도 세계 평화주의자들의 귀에 그 당시 영국의 ‘반(反)징병제 연대’(Non-Conscription Fellowship)의 한 설립자였던 젊은 사회주의자 클리포드 알렌(Clifford Allen)의 공판 진술이 생생히 들린다.
“지배자들은 우리에게 ‘나라가 위태롭다’고 들먹이지만 그게 누구의 탓인가? 우리에게 ‘나라가 위태롭다’는 말로 언제나 협조를 얻을 수 있다는 현실에 지배자들이 익숙해지면 50년 후에 오늘과 같은 살육 상황이 또 반복될 것이다.”
지배자들이 강요하려고 했던 살육을 끝까지 거부한 알렌은 젊은 나이에 감옥에서 병으로 죽었다. 그와 함께 그때 영국에서 병역거부로 재판을 받은 수천명의 사회주의자들이 옥고와 각종 모욕과 공격들을 당했다.
미국에서도 전쟁을 비판한 ‘죄’를 범한 사회주의자들의 공판, 수형(受刑)이 1917년 이후에 줄을 이었지만, 상당수의 진보운동가들이 보수적 ‘주류사회’와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 전쟁협력의 요구에 굴복하기도 했다.
제국주의적 지배층과의 ‘공존’에의 미련을 끝내 버리지 못하는 자칭 ‘현실주의자’와 각종의 고초를 각오하고 살육을 끝까지 거부하려는 진정한 사회주의자 사이의 논쟁은 열이 식을 날이 없었다.
사민당과 녹색당이 미국의 아프간 침략에 ‘조건부 지지’를 보내는 반면 민주사회당(PDS)이 미국의 살육을 철저하게 비판하는 현재의 독일 진보운동계의 상황은, 이와 같은 역사적인 문맥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번의 비극적인 ‘서해교전’이 보여주듯이, 우리는 화약고 위에 앉아있는 것이고, 지배층의 전쟁광들을 어느 정도 억제할 만한 반전운동이 없으면 그 화약고가 폭발될 위험성이 높아진다. 전쟁반대의 가시밭길을 당당하게 걷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나라와 나라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다.
[ 98호] 7.29 ~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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