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하나 : 2002년 7월의 어느 오후, TV 속.
한 명의 사회자와 네 명의 토론자. 사람들이 서로의 말을 잘라가며 언성을 높이고 있다. 프로그램의 제목은 토론인데, 듣고 있자니 거의 태그매치 수준의 말싸움이다. 그리고 이 싸움에 걸린 타이틀은 바로 "소리바다"다. 법원의 가처분 결정으로 또 다시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린 "소리바다 사이트 폐쇄 조치"에 대한 찬반 토론인 셈이다.
이 중 유독 나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사람,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여 나를 열 받게 하는 아저씨가 한 명 있다. 그의 이름 뒤에 "음반제작..."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음반산업 또는 음반자본의 대표 선수 자격으로 출전한 것이 분명하다.
물론 내가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 다시 한번 강조하여 내가 열 받게 된 것은 그가 "업자"이기 때문은 아니다. 소리바다에 대한 나의 입장과 그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은 더욱 더 아니다. 정작 나로 하여금 더 이상 참지 못하고 TV 채널을 돌리게 한 그의 주무기는 바로 "허무개그" 수준의 논법이었다. 소리바다와 관련된 수많은 토론회에서 마주쳤던 바로 그 무서운 "허무개그".
"소리바다는 정확하게 말해 유료도 무료도 아닙니다. 소리바다 운영자가 파일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P2P 방식으로 개인들이 파일을 공유할 수 있는 환경만을 제공한 것이니까요. 따라서 법원의 이번 결정에서 중요한 것은 사이트 운영자가 책임져야 할 법적 책임의 범주에 대한 부분입니다"라고 말하면, 그는 잘 안다며 이렇게 대응한다. "글세 운영자인 양모 형제가 본래부터 나쁜 놈이라니까요!"
"현재 한국 음반시장의 불황은 소리바다 때문만이 결코 아닙니다. 저작권 침해의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음반시장의 불황은 음반산업의 구조적 한계가 주된 원인입니다. 불공정한 제작 공정, 유통 및 홍보 과정의 부정부패, 편중된 음악 장르와 아이돌 스타 시스템 등"이라고 말하면,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항변한다.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음반을 만드는데요, 소리바다가 한국 음반시장 다 망쳤어요."
"대중음악의 유통과 소비 형태가 변하고 있습니다. 일방적인 규제보다는 새로운 디지털 패러다임에 대한 고민과 사회적 합의, 그리고 기술 발전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산업 시스템의 개발과 구축이 중요합니다"라고 말하면, 그는 흥분하며 이렇게 주장한다. "공짜 좋아하는 국민 정서가 큰 문제입니다." 내 손가락이 지닌 인내력의 한계는 "현재 한국에서 CD-R이 1억장 이상이 나가는 데, 모두 불법 복제에 사용되고 있어요!"까지였다.
사건 둘, 2002년 7월의 어떤 조간신문 1면.
한국의 일간지, 그것도 1면에 문화관련 기사가 나오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그 자리는 무협소설을 방불케 하는 보수 정치꾼, 군사독재이래 강행되어 온 경제 제일주의와 국가경쟁력(!)을 위해 언제나 비워두어야 할 곳이기 때문이다. 근데 어느 날 눈을 떠보니 갑자기 주요 일간지의 일면에 문화기사가 "떠억"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도 다름 아닌 대중음악과 관련된 기사가 말이다.
자세히 보니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일명 "PR비 사태"다. 지난 7월 11일 서울지검 강력부(김규현 부장검사)가 가요순위프로그램 출연을 명목으로 신인가수의 매니저로부터 거액의 PR비를 제공받은 공중파 방송의 전 PD 황모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모두들 "음... 또 터질 때가 되었나보네..." 정도로 생각했을 텐데, 이거 장난이 아니다. 검찰이 케이블 음악채널의 제작 책임자들은 물론이고, 이와 관련된 각종 기업들, 그리고 한국의 주요 연예기획사 책임자들에 이르기까지 관련 수사가 거침없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강 하고 말겠지", "몇명 집어넣으면 그만이지"라는 관행이 무색할 정도로, 현재 연예 프로그램을 둘러 싼 PR비 사태는 매일 매일 출전 선수를 바꾸어 가며 주식 증여, 주가 조작에 이르기까지 그 불똥이 튀고 있다.
한편 한 순간 벌집이 되어 버린 한국 연예산업의 부정부패만큼이나 주목할 만한 것은, 이번 사건에 대한 우리 사회의 수용 방식이다. 먼저 올 초 문화개혁을위한시민연대가 검찰에 처음 제보하였을 때만 해도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너무나 일반화된 관행"이라며, "연예 프로그램 시장에 대한 개혁은 꿈도 꾸지 말라"고 점잖게 충고하던 언론권력들은 이제 "해당 언론의 연루자가 누구인가" 염탐하던 시기를 넘어 새삼스레 개혁의 선봉임을 자처하고 있다. 또한 "터무니없는 모함"이라며 시민단체를 "고소하겠다"고 고함치던 대형 연예기획사 책임자들은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그 오래된 부정부패의 전통을 계승해 온 한국의 대중가요, 음반산업, 연예 프로그램의 수혜자들은 이제 "나도 피해자!"라며 아우성치고 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중음악, 음반산업, 연예 프로그램을 둘러 싼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자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특히 그 더러운 관계 혹은 부적절한 관계를 모른 척했던 방송자의 책임자들과 관련 단체들은 시종일관 묵비권을 행사 중이다. "소비자, 시민, 팬들의 권리를 위해 이러 저러하게 개혁하고 대안을 모색하자"는 자기반성과 대안 찾기는 또 다시 미궁 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것인가!
사건 셋, 2002년 화창한 봄날의 기자회견.
마지막으로 조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광화문의 한 빌딩에서 "한국 음악저작권협회 개혁 촉구 기자회견"이라는 것이 진행되고 있다. 근데 이상하다. 저작권의 수혜자여야 할 작곡가, 가수들이 격앙된 목소리로 저작권 제도와 한국음악저작권협회를 비판하고 있다. 그것도 비주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유명한 작곡가들이... 그리고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 서태지마저 저작권 협회를 비판하며 탈퇴를 선언한다.
"협회 임원들의 배임과 수사 촉구", "협회 탈퇴와 고소", "협회의 비리 사례" 등이 빼곡하게 적혀있는 것을 보니, 대중음악 저작권의 문제가 "온라인 대 오프라인", "창작자 대 네티즌", "소리바다 대 음반업자"만의 이분법이 아니었나 보다. 더욱이 유명 작곡가까지 시위를 할 정도이니 언제나 "가난한 창작자의 권리 보호"를 부르짖던 자본가들의 외침은 거짓말이었던 셈이다.
물론 "소리바다는 디지털 저작권 문제이고, PR비 사건은 연예계 로비 사건에 불과하며, 저작권 협회의 문제 또한 별개의 저작권 사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개별 자본의 이해, 개별 이해 당사자의 득실이 아니라 대중음악의 사회적 공공성, 시민의 문화적 권리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세 개의 사건은 하나의 중요한 궤를 가지고 있다. 현재 대중음악을 둘러 싼 채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사건들, 그 사회적 합의와 논의 과정에서 다수의 소비자, 시민, 팬, 네티즌 등은 철저하게 배제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최소한 대중음악의 사회적 기능과 공공성, 다수의 들을 권리와 문화 인프라, 음악산업의 경제적 가치 창출과 공익 등을 인정한다면, 위의 세 가지 사건은 현실의 오래된 구조적 모순 속에서 복잡하게 연계되어 있다. 그리고 이는 궁극적으로 창작자의 표현할 권리와 이용자의 들을 권리를 동시에 구조적으로 박탈한다. 따라서 너무나도 분명한 현실의 문제점에는 애써 눈감으면서, 아직 실체도 분명하지 않은 디지털 문화만을 일방적으로 규제하려는 이익 집단들의 폭력이 괘씸할 뿐이다.
이원재 / 문화연대 정책실장 redgang@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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