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휴가를 '술과 노래방의 초대'로 여긴다면, 차라리 일본 대작 만화인 <몬스터>는 어떨까. 만화라고 술렁술렁 얕보며 읽을 작품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만 염두에 둔다면 <몬스터> 18권 독파는 꽤 괜찮은 휴가 이벤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몬스터>가 채택한 이야기 구조는 그리 색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말한다면, 얼마 전 국내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끈 바 있는 해리슨 포드 주연의 영화 <도망자>와 아주 흡사하다. 아니 어떤 점에서는, TV시리즈의 리메이크 작품이었던 <도망자>를 다시 한번 차용한 것으로도 보일 정도다.
누명을 쓴 주인공이 진짜 범인을 쫓고, 장인정신이 아주 투철한 경찰은 누명을 쓴 주인공을 작품 내내 몰아 부친다는 식이기 때문이다. 또한 누명을 쓴 주인공이 대개 그렇듯 주인공은 가는 곳마다 인간적인 믿음을 쌓는 한편 그 때문에 주변의 왕성한 도움을 받는 식이다. 요컨대 <몬스터>를 보는 재미는 이 같은 별로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 구조를 작가가 어떤 솜씨로 요리하느냐를 보는 데 있는 셈이다.
그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밝히자면, 우라사와 나오키의 솜씨는 인정할만하다. <몬스터>는 <도망자>보다 훨씬 더 복잡한 인물과 사건이 등장하지만, 혹은 그 때문에 훨씬 더 긴박감 있게 독자들을 유인하기 때문이다.
<몬스터>의 또 하나의 재미는 작가 특유의 휴머니즘을 살피는 데 있다. 작중에서
'절대악(絶對惡)'으로 표현되는 인물인 요한과 그를 뒤좇는 일본인 인도주의 의사 덴마의 대결에서 그 휴머니즘의 정체는 선명하게 드러난다. 우리들 인간에게는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이 양립하지만, 우리는 애써 꿈과 희망과 사랑 쪽으로 몸과 마음을 움직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절대악은 있지만, 절대악조차 작은 사랑 앞에서는 조금씩 무너지고, 이윽고는 결정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식이다. 이 같은 우라사와 나오키 식의 휴머니즘에서 특이한 점을 꼽자면, 주인공 덴마를 빼고는 상처 없는 완벽한 인물은 없다는 점이다. 곧 인간이라면 누구나 선과 악의 위태로운 균형을 가까스로 유지한다고 작가는 말하려는 듯 보인다. 휴머니즘은 그 위태로운 균형의 무게중심과도 같다.
<몬스터>의 정치적 측면은 조금 생각을 요한다. 독일을 주무대로 하고 있는 <몬스터>에는 동구권 몰락이 시대배경으로 등장하는 데, 동구권에 대한 묘사는 주로 비판적이다. 물론 <몬스터>의 기원이 되는 사건이 다름 아닌 과거 동독에서 벌어졌던 어린이 인격개조 실험인 탓도 있겠지만, 혹시 <몬스터>는 전후처리 문제에서 곧잘 비교대상이 되는 독일에 대한 일본의 상상력 차원의 복수는 아닐까? 왜 주인공 덴마는 한사코 "내가 처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고집했던 것일까? <몬스터>의 이데올로기는 그래서 조금은 덥다.
김용필( 월간 북메거진 <텍스트> 편집장 text@texttat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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