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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8월로 들어서면서 노동자투쟁의 불길이 더욱 확산되었다. 8월중순에는 매일 1백 곳이 넘는 사업장에서 투쟁이 터져 나왔다. 8월17일에는 새로 시작한 1백86곳을 포함하여 4백10여 곳에서 투쟁이 벌어졌다. 이날은 울산 현대노동자들이 대규모 연합시위를 벌인 날이기도 하다. 다음날 8월18일 현대중공업 정문을 출발한 6만여 노동자들은 "어용노조 타도하고 민주노조 쟁취하자", "배고파 못살겠다, 임금인상 보장하라"고 목이 터져라 외쳤고, '아리랑 목동'을 신나게 부르면서 남목고개를 넘었다. 행진대열은 4킬로미터나 이어졌다.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 사회사진연구소가 엮은 <답하라, 전세계 노동자>에 실린 이들의 행진 사진은 말로만 듣고, 글로만 보던 '노동자 군대' '노동자 군단'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노동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고
찡하게 하였다. 같은 사진을 보면서도 가슴 섬짓하였던 집단도 물론 있었으리라.
남목고개 넘는 현대그룹 '노동자군대'
1987년 노동자 투쟁에 대하여 정부는 '불순세력 개입' 과 '국민생활', '국민경제'를 들먹이며 노동자들을 협박하였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거세질수록 '좌경척결'이라는 구호를 높여갔다. '좌경척결을 위한 3대 방안'이니 '좌경용공세력 척결을 위한 담화'니 하면서 국민들에게 '노동운동의 격화=좌경세력의 개입'이라는 등식을 주입하면서 대탄압을 준비해 나갔다. 자본측은 노사공존을 내세우면서도 노동자들의 투쟁을 '파괴, 폭력, 불법행동'으로 매도하고 정부당국의 개입을 요청하였다.
그러할 때 챔프그룹의 희한한(?) 광고가 눈길을 끌었다. 노동자 투쟁이 한창이던 8월18일이었다.
광고 내용이 그럴듯하고 세련돼 보이지만 일제 식민사관의 '당파성론'과 전근대적 봉건의식을 끌어와서 '노사분규=당파싸움=부자갈등'의 인상을 심어주려는 것이다.
"당파싸움 속에 온 백성이 굶주렸던 이조말기-가난했기 때문에 외적의 침입을 받아 36년간이란 긴 세월을 나라 잃은 설움에 울어야 했던 눈물겹고 슬픈 현실"이라는 구절은 거의가 거짓이다.
'당쟁'에 직접 관련 있던 인물은 조선시대를 통틀어도 2만을 넘지 않을 것이며, 백성이 가난하고 배고팠던 조선후기나 말기에도 배가 터지도록 호의호식하던 지배층이 있었으며, 그들의 부패무능 그리고 제국주의 외세의 비호를 받은 일제침략 때문에 나라를 잃었던 사실을 외면하고 원인을 모두 '당파싸움' 탓으로 돌리고 있다. "조선인들은 민족성이 당파성에 물들어 있기 때문에 식민지배를 당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조선인들은 독립할 능력이 없다"는 '당파성론'을 어설프게 베낀 내용이다.
'노사분규=당파싸움=부자갈등'
그림을 그려도 자본가는 나이가 많게, 노동자는 젊게 그려 은연중에 '장유유서' 의식을 불러일으키려는 것도 저들 그림의 상투수법이다. 또 '고용주'인 자본가와 '근로자'인 노동자의 관계를 부모자식처럼 설명하면서 노동자들의 투쟁을 마치 자식이 부모에게 대드는 '후레자식' '호로자식' '패륜아'처럼 몰아세운다. 그러면서 노동자와 국민을 이간질한다. 봉건적 가족주의와 충효사상을 끌어들여 노동자들의 투쟁을 왜곡 폄하 무력화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1987년 한여름을 뜨겁게 달군 노동자투쟁은 17년전 전태일 열사가 외롭게 '근로자도 인간이다'고 외쳤던 외침을 수십만 노동자들이 함께 외쳤던 거대한 '인간선언'이었다. 노동자들을 천대하고 비하하던 '공돌이' '공순이'라는 말이 노동자투쟁 이후 썰물이 빠져나가듯이 우리사회에서 사라져갔고, 그렇게 벗으려고 했던 푸른 작업복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녀도 예전처럼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3천건이 넘는 투쟁을 통하여 노동자들의 의식을 높이고 조직을 확대하는 민주노조운동의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으며, 사회 분위기도 바꾸었다.
이번까지 세 번에 걸쳐 노동자가 왜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노동자들의 관점으로 역사와 현실을 보는 것이 왜 중요한지, 머리말에 해당하는 글을 썼다. 한 달에 한 번씩 늦더라도 천천히 노동자들의 역사, 노동운동사를 살펴보려고 한다. 다음부터는 임금노동자들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조선사회부터 시작해 '역사 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독자들의 격려와 질책을 부탁드린다.
박준성 역사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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