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원의 문학이야기]상황에 개입하는 비평

이명원/문학평론가
비평은 상황에 개입하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엉뚱한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나 역시 이런 일을 겪은 적이 있다. 언젠가 한 문학상을 비판한 적이 있다. 내 판단에 해당 문학상의 수상작에 몇 가지 결격사유가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을 담은 글을 한 시사월간지에 발표했다.

그리고 몇 달 후, 나는 해당 문학상을 시행하는 출판사로부터 ‘내용증명’이란 것을 받게 된다. “귀하는”으로 시작되는 그 내용증명에서는 나의 비판행위가 해당 문학상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으며, 따라서 사과를 하지 않을 시 법률적 책임을 질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견이 있으면 반론을 펼치면 될 일을 왜 이런 방식으로 해결하려 하는 걸까.
이른바 ‘협박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 한 여성시인을 시를 통해서 모욕하는 해프닝이 문단에서 일어난 때가 있었다. 그 시를 쓴 사람은 한 남성시인이었다.
나는 이러한 방식의 행태가 전혀 문학적인 사태일 수 없고, 해당 여성시인에 대한 ‘인격권의 침해’라는 요지의 글을 일간지에 발표한 적이 있다. 이 글이 발표되고 얼마 안 있어 나는 그 남성시인에게서 몇 통의 전화를 받게되었다. 역시 처음에는 해당 글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으므로 법률적 책임을 묻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시라”고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

얼마 후 다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앞의 남성시인이었는데, 이번에는 “죽이네 살리네” 하는 육두문자를 다채롭게 활용한 폭언이 이어졌다.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앞으로는 이런 전화를 하지 말아 주셨으면 한다고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

올해에는 한 대학의 교수이자 문학평론가인 어떤 분이 나를 고소하겠다고 전화를 걸어왔다.
2년 전인가 한국 대학원사회의 문제점을 거론했던 한 인터뷰에서 내가 한 말이 자신이 재직중인 학과와 자신을 포함한 동료교수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것이다.

일단 그 이유를 알고자 해당 교수를 ‘언론인권센터’관계자의 동석 하에 만났는데, 그 교수의 폭언이 가관이었다. 나를 비난하면서 하는 비유라는 것이 “당신의 엄마는 창녀” 류의 상식 이하의 폭언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고소해야 하는지 알쏭달쏭 하기만 했다.

얼마 전에는 한 잡지에서 원고청탁을 받았다. 원고를 준비하고 있는데 청탁이 취소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참으로 싱거운 잡지라고 생각했는데, 이유를 알고 보니 내 원고가 해당 잡지에 실리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한 편집위원이 “이명원 씨의 글이 실리면 편집위원직을 그만두겠다”는 식의 격렬한 항의를 해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이구야, 맙소사”였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글쓰기는 불가능해진다. 물론 그 인간은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피와 땀이 흐르는 구체적인 인간이다. 그런데 인간은 모순덩어리다. 그래서 상황에 개입하는 비평은 때때로 모순과 부딪칠 수밖에 없다. 그것을 회피한다면 글을 쓸 이유가 없다.
[ 98호] 7.29 ~ 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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