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성타 스님
7월 25일 송추 농성장에 용역깡패들이 들던 날, 성타 스님도 그 자리에 있었다.
“전경 옷을 입었더라구요. 그래서 우리는 경찰인줄 알았지. 우리는 여기 사는 사람이니까 끌어내지 말라고 소리를 치는데도 마구잡이로 끌어내니까 처음엔 뭔가 착각했구나 싶다가 또 속았다는 걸 알았지요. 건설회사에서 고용한 용역이었어요.”
그 때가 새벽 3시. 원각사 입구에 서 있는 경찰에게 긴급하게 구조 요청을 했지만 경찰은 40여 분이나 지나서야, 모든 상황이 종료된 후에야 슬그머니 나타났다. 왜 이제 나타났느냐고 따졌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한 겁니다’하는 대답이 돌아올 뿐이다.
“아까 들어오면서 보셨겠지만 거기 전경 버스에서 여기 농성장까지 걸어서 5분이나 걸려요? 법으로 되는 일이 없어요. 농성을 시작한 다음에야 알았지만 세상에 정말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싶었어요. 법은 힘있는 사람들 편이라는 걸 내가 정말 뼈저리게 느껴요.”
산 아래 농성장에서 겨울을 나고, 불볕 여름까지 견디자니 나이 드신 스님들은 몸 버리기 쉽상이다. 가끔 휴가를 받을지언정 농성장을 떠나겠다는 생각만은 안 들더라는 성타 스님도 처지는 비슷하다. 그래도 사람 나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 농성장 밖으로 손가락 하나 내밀기도 겁나는 추운 겨울에는 바닥은 뜨겁고 위는 추워서 ‘밑은 데 죽고 위는 얼어 죽겠다’는 말을 농담처럼 주고받곤 했다.
“이보다 더 못한 비닐하우스, 판자집에서 먹고 사는 사람도 얼마나 많은데요. 농성장에서 저희가 몇 달 사는 건 고생도 아닙니다. 한 데서 자고 잘 못 먹는 건 정말 아무 것도 아니예요. 아예 모르면 몰라도 보고 나서, 다 깨우치고 나서 입 다물고 가만있는 건 못하겠어요. 그저 산을 지키고 생명을 지키자고 시작한 이 일이 잘 안 풀려서 전례로 남지 않을까 그게 걱정이지요.”
속세를 떠나 수행 중인 스님이 ‘농성’을 하겠다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을 때는 모든 것이 어색했다. 구호를 외치는 것도, 손을 올리는 것도, 전경들에게 맞서는 것도. 그러나 공부해서 깨우침을 얻는 것이 수행인 것처럼, 생명 하나라도 살리고 공해를 줄이려고 애쓰는 것, 세상 사람들이 얼마나 억울하게 당하며 사는 지 몸소 느끼는 것, 이 모든 싸음에 익숙해지는 것, “이게 다 수행”이라며 웃는 성타 스님, 그의 눈에 아득하게 북한산이 담겨 있다.
장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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