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봉쇄를 뚫고 한발한발 전진하는 사내하청 노조 건설 투쟁
민주노총의 자료에 따르면, 현재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체 1,300만 노동자 가운데 800만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비정규직, 특히 제조업 대공장의 사내하청 노동자는 90년대초 자본이 신경영전략에 따라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꾸준히 늘려오다가 97년 이후 폭발적인 증가세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사내하청 노동자의 경우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임금·노동시간에서 차별은 말할 것도 없고, 근로기준법 상에 명시된 기본적인 노동권조차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사내하청 노조 봉쇄를 시도한 기아 자본의 대책 문건이 폭로되다
지난 7월 19일 광주 ‘카톨릭 병원 정상화와 기아 사내하청 현안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단체 대책위(이하 대책위)’에서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인력관리팀에서 작성한 [비정규직노조 설립관련 관리방안]이라는 A4용지 7매 분량의 문건을 폭로하였다.
대책위에서 폭로한 문건을 보면, 기아 자본은 비정규직 활동가들의 과거경력을 조사하고 발언내용까지 수집하여 비정규직 활동을 사찰, 감시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인력관리팀은 용역업체별 ‘Postman(프락치)’을 선정해 업체대표와 핫라인을 구축하고 비정규직 관련 동향을 파악·보고하도록 하여, 비정규직 운동과 관련된 동향이 파악되면 퇴출시키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었다.
세부 항목으로 △대학(전문대 포함) 출신 비정규직 단계적 퇴출 △요주의 인물 퇴출추진-2공장 이아무개(선동적 발언), 김아무개(사내활동가 친구) 퇴출 △향후 요주의 인물 지속관찰 △문제인물의 리스트를 작성해서 타 업체 입사 차단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조는 대책위가 폭로한 문건이 실제로 실행되었다는 많은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80년대로 복귀한 노동탄압 - 블랙리스트
이날 폭로된 문건 내용 가운데 특히 “문제인물의 리스트를 작성해서 타 업체 입사 차단” 부분은 지난해 큰 파문을 불러 일으켰던 ‘캐리어 사내하청 노조원 블랙리스트’와 그 성격을 같이 하는 것이어서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해 캐리어 자본은 사내하청 노동조합이 들어서는 시기에 조합원과 비조합원을 구분하여 비정규직 노동자 639명의 명단을 작성하였다. 캐리어 자본은 이 명단을 새로운 불법파견 업체뿐만 아니라 광주지역의 대기업과 중소기업, 하남공단에 위치한 업체(기아 광주공장, 기아 모터, 알프스 등 10여개 업체)에 이르기까지 조직적으로 배포하였다.
더욱 큰 문제는 지난해 ‘캐리어 사내하청 노동조합 블랙리스트 사건’을 담당했던 광주지방 노동청이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물증을 찾을 수 없고 블랙리스트의 출처가 명확하지 않아 사건을 종결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캐리어 블랙리스트 사건은 실제 수많은 피해자가 생겨나서 취업을 제한받았고, 기본적인 노동권을 심각하게 침해하였는데도 광주지방 노동청은 이와 같은 결론을 내리고 만 것이다.
노동조합 필요성을 절감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
지난 4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272명을 대상으로 현대자동차 민투위에서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대해 ‘매우 필요하다’(59%) 및 ‘필요하다’(25%)는 답변이 압도적이었다.
또한 노동조합이 중점을 두어야 할 활동(복수응답)에 대해서는 정규직 전환(45%)과 임금인상(35%)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미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것이다.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사내하청 노조 건설을 원천봉쇄하는 자본의 탄압
그러나 자본은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사내하청 노조 건설을 봉쇄해 왔다.
지난 99년 사내하청 노조로는 최초로 건설된 한라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조합의 경우, 노조가 건설되자 한라중공업에서는 해당 하청업체를 계약해지함으로써 노조에 가입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전부 해고시켰다. 나아가 구사대와 용역깡패들이 폭력을 행사하고 노조간부를 납치하는 등 엄청난 물리적 탄압을 가하여 결국 노조를 무력화·해산시켰다.
지난해 초 결성된 캐리어 사내하청 노조는 처음부터 캐리어 광주공장 내 6개 하청업체 전체를 포괄함으로써, 계약해지를 통한 사내하청 노조 무력화 수법을 극복하고자 했다. 이러한 시도는 하청노조의 파업으로 공장가동을 중단시키기도 하고, 100여명에 이르는 2년 이상 근속자를 정규직화해내는 등 상당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자본은 몇 달간의 과정을 거치며 하청업체 전체를 계약해지하고 새로운 업체로 대체하였다. 사내하청 노조를 무력화하기 위해 구사대와 용역깡패를 동원한 엄청난 물리적 폭력이 가해졌고, 노동부와 경찰은 자본의 노조탄압을 적극 지원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캐리어 자본은 앞서 말한 블랙리스트까지 만들어 배포했다.
이번에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사내하청 노조 원천봉쇄를 시도한 문건이 폭로된 것은, 사내하청 노조를 원천봉쇄하려는 자본의 극악한 탄압이 특정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업장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사내하청 노조 건설은 무엇보다 사내하청 노동자 스스로를 조직하는 투쟁
IMF 이후 자본의 신자유주의 재편은 엄청난 속도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있다. 이는 무한 이윤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시대 자본의 속성으로부터 야기되는 필연적인 결과다.
자본이 노동조합이라는 방해물 없이 극단적인 이윤추구를 도모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사내하청을 양산하고 있는 만큼,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임금과 근로조건 및 고용조건은 대단히 열악한 상태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한 열악한 삶을 벗어나고자 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 스스로의 힘이 모아지지 않는 한, 사내하청 노조 건설은 요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즉 사내하청 노동조합의 건설은 무엇보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조직하는 투쟁이어야 한다.
그런데 사내하청 노조 건설 투쟁은 숱한 시도 속에서도 아직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70년대로부터 10여년 이상 숱한 패배로 점철되었던 지난한 투쟁을 밑거름으로 하여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폭발하게 되었던 한국 노동운동의 경험이 주는 교훈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자본의 혹독한 탄압으로 아직 대중적인 주체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지만, 사내하청 나아가 비정규직 노동조합 건설을 목표로 뛰고 있는 활동가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조직화와 투쟁을 지속해 나간다면 머지않아 반드시 결정적인 전환점이 올 것이다.
정규직 노동자, 사내하청 노동자와 단결해야 희망이 있다
덧붙여 사내하청 노조 건설에 정규직 노동자들의 지원과 연대가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같은 노동자로서 열악한 노동조건에 허덕이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기 때문이지만, 더 중요하게는 사내하청 노동자를 노조로 조직하고 그들의 권리를 향상시키는 것이 정규직 노조의 힘을 강화하고 생존권을 지키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부 정규직 노동자들은 다시 정리해고 광풍이 몰아쳐도 사내하청이 고용의 안전판 역할을 할 것이라는 헛된 꿈을 꾸고 있다.
그러나 생산현장의 절반 가까이 무권리 상태로 전혀 조직되지 않은 사내하청이 일하고 있고, 따라서 생산에 결정적 타격을 줄 수 없게 됨으로써 그만큼 힘이 약화된 정규직 노조가 과연 정규직을 줄이는 것이 훨씬 이득인 자본의 도발을 얼마나 막아낼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사내하청 노동자를 내팽개친 정규직 노동자들만의 고용안정투쟁이 얼마나 전체 노동자의 연대와 사회적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사내하청 노동자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현장으로부터 공동의 목표를 찾아 함께 싸워 나가고, 노조 건설 지원(혹은 정규직 노조로의 포괄) 및 근로조건 개선과 정규직화를 위한 투쟁에 적극 연대하는 정규직 노조만이 자기 조합원의 생존권을 지켜낼 수 있는 강력한 노동조합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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