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진/중앙대학교 겸임교수ㆍ정치학
오랜만에 낭보가 들려왔다. 7차 장관급 회담이 개최된다는 소식이다. 금강산 실무접촉을 통해 회담의 시기와 의제에 합의하고, 부산아시안게임에도 북측이 참여키로 했다. 아시안게임 참여는 북한식 표현대로 ‘사변’에 가깝다.
이번 회담도 남북간의 ‘주고받기’ 식의 ‘나쁜’ 거래가 될 것이라는 재뿌리는 식의 분석도 적지 않다. 우리 한반도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동아시아 지역 차원의 평화와 협력이라는 차원에서 보더라도 시대적 과제를 망각한 망발이 아닐 수 없다. 남북간의 주고받는 식의 거래가 왜 잘못인가.
분명 ‘주고받기’ 식의 거래에 익숙해져야 하고, 이를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대폭 늘려야 할 시점이다. 왜 ‘국가간 협력’ 혹은 ‘국제협력’이라는 개념을 떠올리지 못하는가.
이는 (남북관계를 접근하는데 있어) 화해와 공존을 위해서는 기존의 민족중심적 접근틀 만큼이나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남·북한의 국가성(國家性)을 인정하는 방향, 다시말해 국가 대 국가모델로 접근하는 틀도 충분히 고려, 보완돼야 함을 강력히 시사한다.
필자는 남북관계 전반에 있어 북측 또한 우리네의 보통시민들과 마찬가지로 그 관계개선을 열망하는 상당한 ‘합리성’을 지닌 행위자로 확신한다. 다만 이유야 어떻든 그동안 우리가 그들 나름의 ‘합리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거나 혹은 애써 이해하지 않으려고 했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왜곡해온 측면이 존재했을 따름이다. 물론 이 부분은 역으로 북측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탈냉전이 시작된 90년대 이래 북측의 절대절명의 과제는 체제생존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과의 적대관계 청산과 남북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은 누구도 부정하기 힘들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번에 보여준 북측의 ‘적극성’은 특별한 설명이 불필요하다. 물론 구체적 국면(conjuncture)으로 볼 때, 북측으로서는 식량지원과 금강산관광 활성화 조치 등을 내심 기대할법하다.
구체적 성과물이야 뚜껑을 열어봐야 알겠지만, 남북 철도와 도로 연결, 개성공단 건설, 금강산 관광사업의 활성화, 북한 경제시찰단의 남한 방문, 군사당국자 회담의 재개 문제 등은 무엇보다 이미 합의된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안이 나와야 할 것이다. 특히 군사 당국자 회담은 NLL 문제를 포함한 서해상의 (국제)분쟁수역을 해소하기 위해 긴요한 문제다.
아울러 개성공단 전력지원 건은 특히 눈길을 끈다. 지난해 우리측의 지원방침에도 불구하고 미국측의 부당한 반대로 무산된 바 있어 더욱 아쉬움을 남긴 과제다. 외부 입김에 흔들리지 않을 우리의 원칙과 ‘외교적 자율성’을 되새겨보아야 할 문제다.
이같은 의제들의 실천을 통한 경제협력과 군사적 신뢰구축은 바로 최근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경제제도적 변화과정에 핵심변수가 되는 ‘안정적이고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지름길이다.
사실 필자는 이번 회담의 구체적 결과 못지 않게 이를 둘러싼 정치권의 소모적 공방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예컨대 올 9월에는 우리의 ‘영웅’ 히딩크가 지휘봉을 잡는 가운데, 남북축구경기가 열리기로 되어있다. 남이든 북이든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TV와 마주할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세력들의 축구와 히딩크를 정략적으로 활용했느니, 마느니 하는 식의 ‘딴지걸기’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과거 혹독한 냉전시절의 이른바 ‘적대적 상호의존’ 관계에서 벗어나 일정정도 남북간의 교류와 상호작용이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대북정책 혹은 대외정책의 국내정치화 현상이 심화됨은 아주 자연스런 현상이다. 대북정책의 국내정치적 연계(linkage) 혹은 정치적 활용 자체가 결코 문제가 될 수 없다. 사안의 핵심은 탈냉전적 변화라는 세계사적 변화흐름에 맞춰 그러한 연계성을 우리가 소망하는 방향으로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가 하는 측면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국내외 주요 사회세력들간의 역학관계가 결정할 터인데, 이와 관련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세력들이 대북정책 결정에 제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시급한 일차적 과제일 것이다. 이를 위한 당면한 현실적인 정치적 노력들이 구체적 내용물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 99호] 8.12 ~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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