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시 행정부의 위협을 비웃기라도 하듯 활짝 웃고 있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
윤재설 dllp21@kdlpnews.org
“미군이 이라크를 공격하기 위해 영토를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그동안 이스라엘과 함께 미국의 중동전략의 한쪽 기둥이 돼왔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우드 알 파이잘 외무장관이 최근 언론과의 회견에서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반대한다”며 기지제공 거부 입장을 표명해 미국의 공격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중동의 대표적인 친미국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이같은 행보는 최근 양국간 첨예화되고 있는 갈등의 한 측면으로 해석된다. 이라크의 강제적인 정권 교체를 추진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중동전략은 이처럼 아랍권은 물론, 세계 각국의 전통적인 맹방의 반대에 직면하고 있다.
모하메드 모사데그(1953년 이란), 살바도르 아옌데(1973년 칠레), 마누엘 노리에가(1989년 파나마), 다니엘 오르테가(1990년 니카라과)...
미국의 공작에 의해 정권이 교체된 비운의 인물들이다. 민족주의자, 사회주의자, 군사독재자 등 이력은 다양하지만 이들이 ‘제거’된 이유는 단 하나. 미국의 세계전략 추진에 ‘거추장스러운 걸림돌’이 됐기 때문이다.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는 최근 이 ‘명부’에 과거와는 달리 노골적으로 ‘사담 후세인’이라는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물론 클린턴 행정부 시절에도 “이라크 정권 교체” 주장이 나오긴 했고 부시 대통령도 몇번 ‘으름장’을 놓긴 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구체적인 ‘정권교체’ 방안이 거론되고 투입될 병력의 규모가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9월 2일까지 4주간 계속되는 긴 여름휴가의 시작을 하루 앞
둔 지난 5일 국가안보팀 회의를 갖고 이라크에 대한 군사행동의 몇가지 방안을 브리핑 받았다.
애초 정권교체의 방안은 △국가안전국(NSA)의 ‘이라크 내 반대세력 무장 지원’ △중앙정보부(CIA)의 ‘제한적 비밀 작전을 통한 후세인 암살’ △펜타곤(미 국방성) 내 민간출신이 선호하는 ‘7만명 규모 병력 투입-이라크 내 반대세력과 연합작전’ △미 합참의 ‘25만 병력 투입 대규모 작전’ 등 크게 4가지로 나뉘었고 이중 몇가지를 함께 추진하는 방안도 논의됐었다.
<뉴욕타임즈>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서는 합참이 내놓은 25만명 규모 전면전이 아니라 8만∼10만명 규모의 병력을 바그다드와 주요 거점에 투입, 단시간내에 이라크 정부를 전복시키는 방안으로 가닥이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언제든 투입이 가능한 미 중부사령부 소속 5만명 병력이 이라크 주변에 배치돼 있어 이 계획을 추진하는 것이 미국으로서는 손쉬운 편이다. 게다가 팝가수 조지 마이클에 의해 ‘부시의 푸들강아지’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도 공격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다.
무기사찰 재개 의사를 밝혔음에도 공격이 구체화되자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지난 8일 이란-이라크 전쟁종결일을 기념하는 텔레비전 연설에서 미국과 영국을 지칭하지는 않았으나 “악의 세력”이라는 표현으로 이들이 “자신들의 관을 짊어지게 될 것”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했다.
아랍권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전통적인 맹방이자 중동의 대표적 친미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라크 공격을 위한 기지의 제공을 거부한 데 이어 요르단, 터키 등도 기지제공에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부시의 군사공격 계획은 주변 우방국들로부터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다.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와 프랑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7월말 열린 양국 정상회담에서 “유엔의 승인 없이 이라크에 대한 공격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부시 미 대통령과 블레어 영국 총리는 이라크가 1991년에 유엔과 맺은 휴전협정을 이행하지 않은 것이 군사행동의 충분한 이유가 된다고 주장하며 명분쌓기에 주력하고 있다.
한편 블레어 총리가 부시의 군사행동 계획에 동조하고 있는 영국에서도 반대여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데일리미러>지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91% 이상의 영국인들이 이라크 공격에 반대하고 있으며 6일에는 2천5백여 성직자들이 이라크 공격에는 유엔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총리관저에 제출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성추문 논란 와중에 아프가니스탄 폭격을 벌인 것과 마찬가지로 회계조작, 경제위기로 시끄러운 국내여론을 돌리기 위해 이라크 공격을 감행한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미군이 쿠웨이트와 카타르 등에 기지를 구축하고 있어 이라크 공격은 이미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 99호] 8.12 ~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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