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자와 남은 자들⑮]"민주노동당이면 우리 편이잖아요"

한상근 열사 어머니 김수연

윤재설 dllp21@kdlpnews.org
“우리 상근이가 살아있으면 서른하나일텐데. 이렇게 젊은 사람들 만나면….”

인터뷰는 중단됐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 아들 또래의 젊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떠나간 아들 생각에 북받치는 눈물을 흘린다. 아들이 떠난 지 5년. 아들의 ‘부재’를 받아들일 만도 하겠는데 김수연씨(사진)는 요즘도 가끔씩 아들이 곁에 살아있는 줄로 착각할 때가 있다.

“아직도 깜빡깜빡 잊을 때가 있어요. 그러다가 ‘아참, 우리 막둥이가 죽었지’ 깨닫는 거예요.”

김씨가 연신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1997년 음력으로 섣달 그믐날. 대학에 들어가 부모와 떨어져 객지에 살던 막내아들 한상근(당시 26세·용인대 4년)이 전주의 고향집으로 내려왔다. 그동안 막내아들이 유독 보고 싶었던 김씨는 오랜만에 만난 아들을 한참 쳐다봤다.

“우리 상근이, 키도 크고 이쁘기도 하네.”
“엄마, 엄마 맘에 드는 사람 며느리로 골라서 우리 같이 살아요.”
“그래, 애 낳으면 엄마가 키워줄께.”

하룻밤을 함께 하고 아쉽게도 막내아들은 바쁘다며 다시 학교가 있는 용인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이틀 뒤. 정월 초사흗날인 2월 10일 한강성심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부리나케 서울로 올라가서 병원 응급실을 찾았더니 아들이 온몸에 하얀 붕대를 감은 채로 누워있는 것이었다.

1991년 용인대 격기학과에 입학한 한상근은 군복무를 마치고 1994년부터 용인대 농촌문제연구회 ‘흙사랑’에 가입해 활동하다 1995년 동아리연합회 부회장, 1996년에는 총학생회 정책국장 등 용인대에서 핵심적인 학생운동 활동가로 성장했다. 1997년에는 용인대 11대 동아리연합회장으로 학원자주화추진위 ‘대학종합평가인정제’ 소위 위원장으로 활동했던 한상근은 사건 당일 새벽 4시 30분경 분신을 기도했고 3일만에 숨을 거뒀다.

“요만치도 눈치를 못 챘어요. 걔가 착하니깐. 데모는 악한 놈들만 하는 줄 알았거든요.”

어머니는 막내아들이 운동권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걔가 맞아죽을 놈이 아니에요. 합기도가 3단인데. 얼마나 분통이 터졌으면 그랬겠어요. 부모를 버리고 갈 때 그 맘이 어땠겠어요.”

마석공원묘지에 아들을 묻어놓은 어머니는 ‘유가협’이란 곳을 알게됐다. 그 뒤부터 유가협 활동에 참가하면서 어머니는 남편 한영재(72)씨와 떨어져서 서울로 올라오게 됐다.

“상근이 일 때문에 여기서 못 떠나겠더라구요. 유가협이 있으니까 내려가지를 못하는 거예요.”

1998∼1999년 유가협의 여의도 4백20일 농성에도 참가한 김씨지만 정작 그 농성의 결과로 제정된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지 못할 판이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 일어난 사건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을 받았으나 한상근은 작년 11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심의위원회의 심의에서 ‘보류’ 결정을 받았다.

보류가 된 이유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으나 함께 보류된 노수석, 권희정 등의 경우로 봐서 김영삼 정권 때 벌어진 사건이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즉 ‘김영삼 정권이 권위주의 정권이 아니기 때문에’ 이 당시 일어난 사건은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김수연씨는 지난달 13일부터 18일까지 경복궁 옆 심의위 사무실에 유가협 회원들과 함께 들어가 농성을 벌였다. 심의위원회의 마지막 회의를 앞두고 압력을 넣어보겠다는 심산이었다.

“불안하잖아요. ‘당신들이 손댔던 것 마무리하고 가거라’는 의미로 들어와 있는 거예요.”
“지가 한 만큼 찾아주고 싶다”는 김씨는 김영삼 정권때 일어난 일이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주장이 말도 안된다는 생각이다.
“김영삼이가 뭐요. 독재하고 합당하지 않았어요. 독재랑 합의한 정권이 독재와 다른 게 뭐냐고요.”

좀체 기자들에게 얘기를 하지 않는다는 김씨가 눈물을 닦으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민주노동당이라 해서 오시라고 했어요. 노동당이면 우리 편이잖아요.”
[ 99호] 8.12 ~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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