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아 dodani@kdlpnews.org
비 내리는 저녁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500cc 생맥주 한 잔에 샐러드 한 접시만 있으면 정말 ‘딱’이라고 생각했다. ‘21세기 명랑사회’ 구현을 위해 초절정의 입담을 구사하고 있는 김어준(34)딴지 총수를 만나려면 어쨌든 ‘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둘 다 시간이 맞지 않아 아침에 그를 만나야 했던 거다. 그것도 마감 날 아침에.
그가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 2호선에 몸을 실었다. 꼬박 밤샘을 했던 탓일까. 몸이 왠지 찌쁘드드한데 포르노사이트에 대한 얘길 물어볼 생각을 하니 머리까지 지끈거린다. 그는 문래역에 와서 전화를 하라고 했었다.
약속 장소에서 서성거리니까 어떤 사람이 와서 말을 건넨다. 등빨도 좋고 머리도 길고 꼭 산적처럼 생겨서 처음엔 그 인줄 알았다. 알고 보니 딴지 요원. 사무실을 안내하는데 어떤 창고로 들어간다. 테헤란 빌딩 숲을 지나는 것보다는 마음에 들었다. 과자박스를 한 트럭 싣고 있는 마당을 지나 1층으로 들어가니 꽤 넓은 평수에 모던하게 꾸며진 딴지 사무실이 있었다. 여기가 그의 작은 ‘왕국’이다.
<진보정치>에서 김어준을 만나기로 한 사연은 이렇다. 얼마 전 메일박스로 스팸이 하나 날아들었는데 그게 하필 딴지가 보낸 포르노사이트 광고였다. ‘오호라~ 딴지가 남(녀불꽃)로(동)당도 모자라서 이젠 포르노사이트까지 오픈했나?’
“딴지가 포르노를 오픈한 적이 없어요. 아마도 그 사이트가 돈을 주고 배너를 달았겠죠. 남로당에서도 동영상 사진에 일본 비디오로 서비스하는 게 있기는 한데 그건 일부에 지나지 않죠. 아, 남로당은 왜 만들었느냐구? 그냥 재밌으니까요.”
그러면서 그는 ‘성정치학’ 강의를 시작한다. 프랑스 68혁명까지 나오는 그럴듯한 ‘구라’다. “원고를 메우기 위해 그럴듯하게 설명해보자”로 시작하는, 그의 강의 요약.
“독일의 예를 들어보자. 길에서 키스를 하는 게 언제부터 자연스러웠을까? 내가 알기엔 60년대까지 길에서 키스를 하면 사람들이 수군거렸을거야. 남세스럽다고.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웃기지 않나? 그걸 자연스럽게 만들어준 게 뭐겠어?”
“68”
“그래 바로 68이야. 68은 사회변혁운동으론 실패한 혁명이었지만 우리에게 없는 걸 하나 들고 나왔지. 그게 바로 성인데, 그들은 성도 ‘권력’의 문제로 이해했어. 우리 땅에서 마광수, 장정일이 개인적으로 졸라 부딪혔던 것들을 얘네들은 세대 전체가 이슈파이팅으로 해결한 거지.”
성에 대한 부분을 개인의 문제로 남겨뒀다는 것. 그의 불만은 ‘그거’였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핑크 컴플렉스’라고 명명한다. 80년대가 레드 컴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면 ‘핑크 컴플렉스’를 둘러싼 환경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고. 여기서 중요한 성찰하나. 이러한 ‘핑크 컴플렉스’가 어느새 도덕 자체와 싸우는 문제가 돼버렸기 때문에 ‘개인이 헤프냐 혹은 그렇지 않으냐’는 품성론으로 돌아와 버렸다는 것이다. 남로당은 ‘핑크 컴플렉스’를 전복하기 위해 창당된 혁명적 정당이었다.
'씨발ㆍ졸라' 등 엽기문화 선두
사실 딴지도 그랬다. 주류질서에 똥침을 가하는 정신, 그걸 김어준은 똥침정신이라고 불렀다. <조선일보>든 정치인이든 가리지 않고, 거대해 보이는 권력의 위선과 비리를 향해 ‘씨바’ ‘졸라’ ‘조디’ ‘우끼고 자빠졌네’를 섞어가며 처절한 ‘똥침’을 통쾌하게 날려버리는 <딴지일보>야 말로 레드 컴플렉스를 뒤집거나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게 ‘야마’였다고.
“사업 하다가 IMF 때 쫄딱 망해 시간은 남는데 할 일은 없어 심심풀이로 만들어 본 개인 홈쥐“, 딴지일보는 귀엽고 유쾌한 오만과 독선으로 주류사회를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문화를 만들었다. 바로 ‘엽기’.
“혹시 ‘엽기’의 4가지 의미를 아남요?” 하나, 주류질서의 전복. 둘, 발상의 전환. 셋, 상식의 회복. 넷, 발랄한 일탈. 점차적으로 ‘엽기’라는 뜻이 전복되고 그 말이 표현하는 행위가 권장된다는 것. 사회적으로 인기를 얻는 것 자체가 그 말에 대한 문화적 다양성을 획득하는 과정이라는 그의 말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우리의 ‘엽기’적인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 기자는 곧장 딴지의 선정성을 캐물었다. 그가 인터뷰를 할 때마다 꼭 한번씩 나올 법한, 그에겐 식상한 주제. 그의 대답은 명쾌했다. 선정성은 하나의 도구이자 전술일 뿐이라고. 졸라, 씨바. 그가 잘 쓰는 욕조차 어쩌면 엄숙주의와 순결주의, 권위주의에 대한 도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자는 별다른 ‘딴지’를 걸지 않았다. 아니, 그냥 걸고 싶지 않았다.
우리의 얘기는 어느덧 ‘여성’과 페미니즘으로 옮겨다니다가 장상 총리 부결문제까지 이르렀다. 그는 장상의 문제를 영국 수상 ‘대처’로 풀고 있었다. 대처가 한 일이라곤 전혀 없지만, 대처로 인해 여성 일반에게 실질적인 제도적 장치가 더 많이 생겨났듯이 장상 또한 마찬가지 경우라고.
“여성계 차이를 드러내는 일은 나중의 일이다. 정치라는 건 우선 순위를 결정하는 것이니까. 국민 전체와, 정치체계 전반을 걸고 ‘딜’을 하는 문젠데, 여성계가 총궐기해서 왜 총리로 앉히지 못하느냐”.
그의 질책은 대충 이랬다. 여기서 그의 말에 하나씩 대구하느라 꽤 오랜 시간을 잡아먹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박근혜다.
“박근혜에 대한 내 입장은 처음부터 간명했어요. 박근혜가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것만으로 여성계에서 비토를 당한다면 그건 틀린 거라고. 이 여자가 보수든 아니든, 어쨌든 중요한 것은 대중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그의 진보성이 함량미달이라면 그를 진보적으로 뜯어고치면 되는 거에요.”
"민주노동당, 너무 촌스러워"
정치 얘기가 나온 김에 대선 후보 하마평을 부탁했다. 딴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대선후보 릴레이 ‘이너뷰’를 통해 대선후보들을 몽조리 만나봤던 김어준이니만큼 그의 평이 궁금했다.
김근태 = 컨텐츠는 좋은데 그걸 사람들에게 딜리버리 하는게 부족하다.
노무현 = 마인드는 좋은데 스킬이 부족하다.
(김어준은 이렇게 부연했다. 김근태에겐 그의 컨텐츠에 반했다면, 노무현에겐 마인드에 반했다고. 김근태의 컨텐츠는 이성적이고, 노무현의 마인드는 감성적이라고.)
계속 되는 그의 하마평.
권영길 = 열정은 있는데 세련되지 못하다.
이회창 = 우리나라 정치역사상 최대의 어부지리다. 그는 정치인이 아니다. 정치인이라면 으레, 정치적 비전을 따라 갖게끔 만들거나, 열정을 느끼게 하거나, 호감을 가지게 하거나, 어쨌든 사람들이 그들에게 바라는 덕목들이 있는데 그 사람에겐 그런 게 전혀 없다.
박근혜 = 생물학적 여성이기까지 한데...
이상희 = 이사람, 물건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유례없는 인물이 될 팔자다. 사이버 얘길 많이 해서 내가 그럼 포르노 어떡할까요? 하고 물었다. 그냥 해야지. 단칼에 이렇게 말하더라.
“그건 그렇고, 민주노동당에게 던지는 쓴소리 같은 거 뭐 없어요?”
“좀 세련되야 할 것 같아요. 아니, 월드컵 때 말이야. 권영길 대표는 붉은악마 옷 입고 왜 안나오는 거야? 대 이탈리아전 때, 우리 선수들이 정정당당하게 싸우는 것에 대해 모독하지 마라. 왜 이런 논평은 안 나오는 거야, 그럼 5% 정도는 올라갈 거 아냐!”
유쾌한 오만과 독선의 소유자
여기까지 하는데 시간은 어느덧 정오를 향해가고 있었다. 이제 5분 전. 인생의 목표가 뭐냐고 물어야 하는데, 어느 잡지에서 보니까 “김어준을 키운 건 8할이 여행이었다”고 하던데, 그것도 못 물어보고 이제 발걸음을 돌려야 하다니. 수다 떨던 한시간 반이 너무 금방 지나가 버렸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다행히도 그가 스파게티를 먹으러 가자고 얘기한다. 다행이다 싶었다. 김어준의 8할을 키운 여행에 대해 물어볼 수 있어서.
여행은 그에게 본질에 빨리 다가가게 하는 능력, 보편성을 선물했다. 자신의 가진 최대 강점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도 그는 ‘보편성에 빨리 접근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머리 하얗게 센 예순 이후에 자기가 원하는 손님이랑 자기가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서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운영하는 게 꿈”이라는 김어준.
귀엽고 유쾌한 오만과 독선의 소유자. 그를 만난 2시간을 김규항의 말로 대신한다.
“세상은 <딴지일보>덕에 별 볼일 없는 놈이 떴다지만, 실은 <딴지일보>가 너무 뜬 덕에 그 놈이 별 볼일 없는 놈으로 가려져 있다”
[ 99호] 8.12 ~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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