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도노동조합의 역사(14)
부도에 따른 만도 자본의 공격적인 노무관리는 더욱 노골화되고 노동조합과의 합의 없는 희망퇴직 모집 등 회사는 조합원을 거리로 내몰기 위한 것이라면 극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높아지는 투쟁의 강도 그리고 임금협상 파업
98년 5,1절을 기점으로 노, 사는 사실상 대화 단절에 들어간다. 회사는 노동조합의 무조건적인 항복을 요구하고 노동조합은 5월7일 임금인상과 관련한 전면파업에 돌입한다. 그러나 전면파업 2일차인 8일 노동조합이 가장 염려하였던 일이 발생하고 만다. 계속되는 임금체불로 인해 생활고를 이겨내지 못한 문막 지부의 최돈균조합원이 자살하는 비극이 벌어진 것이다. 최돈균조합원의 자살은 노동조합의 투쟁에 기름을 부어놓은 결과로 이어지고 노동조합은 체불된 임금을 즉각 지급 할 것을 요구하고 계속 전면파업을 지속한다. 이에 매각문제에 노심초사하던 회사는 조합원들에게 체불된 4월 임금을 지급하고 또한 체불된 상여금 중 50%를 먼저 지급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12일 전면파업을 종료한다. 하지만 체불된 임금을 계속 요구하는 노동조합에 의해서 임금협상을 지속된다. 한편 노동조합은 그룹사 위원장들에게 부도에 따른 회장과의 면담을 추진하게 되고 위원장들과 간부들은 6월 16일 정몽원 회장과의 간담회를 갖기 위해 그룹 본사를 찾아가는데 간담회는 정몽원 회장의 무성의로 결국 무산되고 만다. 이렇듯 회사는 노동조합의 대화요구를 철저하게 거절하고 회사는 극심한 불신감을 조성하고 만다.
정리해고 전면파업과 아! 9월 3일
8월을 시작으로 노동조합은 회사와 더 이상의 대화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하기휴가 후에 강도 높은 투쟁으로 정리해고의 벽을 돌파하게 된다. 노동조합은 8월 10일 정리해고 박살 생존권 사수를 위한 조합원 임시총회를 개최하고 11일 구역별 2시간 부분파업을 벌여 나가고 8월 17일 드디어 전면파업에 돌입하게 되는데 조합원들의 단결력은 사상 최고점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8월 18일부터 19일 양일 모든 조합원들은 대전공장으로 집결하여 일방적인 정리해고 방침에 맞서 회사의 정리해고를 박살내기 위한 투쟁을 한다. 19일 조합원들은 대전시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수의 시위대 수를 기록하면서 대전시민들에게 정리해고의 절박성을 선전한다. 대전 시민들은 조합원들의 이러한 투쟁에 박수로서 격려하며 투쟁의 대열에 합류하며 조합원들에게 힘을 보태준다.
전면파업을 진행하면서 노동조합은 공장별로 상경투쟁조를 서울과 군포 본사로 보내 만도투쟁을 알려내기 시작한다. 전면파업 13일차인 8월 28일 아산공장 문화행사에 참가하고 노동조합으로 복귀하던 황성근 위원장을 체포하기 위해 닭장차 4대가 대기하고 있다가 위원장 외 4명의 간부들을 폭력으로 침탈해 가면서 투쟁의 분위기를 꺾으려 한다. 위원장을 구속시킨 경찰 놈들은 이때부터 7개 공장 주변에 대규모의 경찰로 포위하고 호시탐탐 공장 안으로 침입 할 기회를 엿보게 된다. 그리고 29일 경찰과 자본은 7개 공장의 핵심 간부들에게 사전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공장 안으로 프락치를 투입하고 식수는 물론 모든 물품을 사전에 차단 하고 압류하고 공장 안으로 들어가려던 가족에게조차 폭력을 휘두르는 만행을 거듭한다.
그리고 9월 1일 회사는 노동부에 1,144명의 정리해고 인원을 통보하고 조합원을 추려내는 작업을 한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이러한 회사의 정리해고를 막아내고 더 많은 조합원을 공장에 남아있게 하기 위해 2일 회사와 마지막 협상을 가진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회사는 저들의 욕심대로 하려하고 교섭은 최종적으로 결렬된다. 그리고 잊지 못할 9월 3일 새벽이 온다.
전면파업 18일차인 3일 새벽 5시 30분 경찰 놈들은 7개 공장에 약 1만 5천명의 경찰을 전격적으로 공장으로 투입한다. 이에 맞서 자랑스런 만도 조합원들은 정문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불을 지르며 공장에 진격하는 경찰 놈들을 온 몸으로 막아낸다. 이 와중에 수많은 동지들이 경찰들의 군화발에 짓밟히고 진압봉에 다치고 가족들까지도 경찰 놈들의 만행에 치를 떨어야만 했다. 그리고 아산공장에서는 옥상에서 결사적으로 경찰을 저지하던 조합원들이 밀리면서 손성균조합원이 옥상에서 떨어져 허리가 부러지고 양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당한다. 그리고 최후까지 저항하던 조합원들은 그야말로 치욕적인 모욕속에 경찰로 연행된다(2,600명 연행. 41명 구속. 7명 수배. 300명 입건) 경찰 투입 이후 노동조합은 명동성당으로 투쟁의 장소를 옮기고 출근거부 투쟁과 가족들의 투쟁을 호소하며 끝까지 싸울 것을 선언한다. 9.3이후 일주일동안 가대위와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출근 거부투쟁을 지속한다. 그러나 주요 간부들이 구속과 수배되면서 투쟁의 대오는 흐트러지게 된다. 비대위는 9월 11일 조업 복귀를 결정하고 만다. 회사는 명동성당에 남아있는 지도부와는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회사가 모든 일을 일방적으로 결정한다고 선언한다. 그러면서 회사는 무급휴직자를 양산하고 회사에 주요 간부와 활동가들에게 일방적인 해고를 자행한다.
지금까지 만도노동조합의 역사를 읽어주신 조합원 동지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이쯤에서 당분간 역사를 마치고 다른 좋은 내용으로 채울 것을 약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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