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세화/<한겨레> 기획위원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
이 말에 반발하는 사람을 보기 어려울만큼 보수의 부패가 그렇듯이 진보의 분열 또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하다. 보수에겐 항용 물적 토대가 있게 마련이고, 이 물적 토대는 보수를 부패로 이끌면서 보수들을 집결시키는 구심력으로도 작용한다.
물적 토대가 없는 진보는 부패의 여지는 없는 대신 같은 이념을 매개로 뭉치게 된다. 따라서 진보는 일상적으로 다른 진보의 이념을 검증하면서 자기와 같은가, 아닌가를 확인하는 경향을 갖는다.
자유주의자들, 개인주의자들은 자신의 세계관에 의해 남의 이념에나 생활방식에 저울질하지 않는 반면, 진보주의자들이 자신의 세계관으로 다른 사람의 이념과 생활 방식을 저울질하는 것도 이 경향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윤건차 교수 등 여러분이 이미 지적했듯이 한국사회의 진보는 진보의 양에 비해 그 폭이 무척 넓다는 점에 있다. 쉽게 말해, 진보세력은 많지 않은데 그 폭이 워낙 넓어서 진보끼리도 진보가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려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보수에게서 공익개념을 찾을 수 없는 한국사회의 현실은 진보에게 공익을 목표로 하는 ‘진정한 보수’까지 그 안에 담도록 요구한다.
예컨대, 공화국 이념은 서유럽에서 좌파나 우파 모두가 전제하는 공통 분모다. 라틴어 어원인 ‘Republic’이 말해주듯 ‘공화국’은 본디 공익 목적이 전제된 것인데, 대한민국 ‘공화국’에선 그런 개념조차 찾기 어렵다. 실제로 한국의 자칭 보수들은 공익 추구보다 사익 추구 집단에 가깝고 보수할 것이라곤 오직 기득권뿐이라는 점에서 진보에게 요구된 폭은 그만큼 넓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가 태생적으로 공익과 무관하여 관심조차 없다면, 사회민주주의조차 ‘개량주의’라고 간단히 규정하는 일부 진보에게서 알 수 있듯이 공익을 전제하는 공화국 이념 정도는 가볍게 보는 경향을 갖고 있다.
이 점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공익을 목표로 한 건전한 진보/진정한 보수 사이의 경쟁 관계에 익숙하지 못한 탓에, 진보의 틀이나 규정에 갇혀 사회 변화 세력끼리 서로 다투어 극복 대상인 사익추구 세력에게 어부지리를 주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세계를 해석하는 데 있지 않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데 있다’면, 진보는 ‘진보의 선명성’을 주장하기보다는 이 사회의 변화를 궁극적으로 바라는 모든 세력을 감싸안는 ‘불편함’을 즐겁게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극복대상인 수구 기득권 세력이 헤게모니를 장악한 땅에서 공익 추구를 전제하는 경쟁 대상끼리는 서로 뭉쳐야 마땅하지 않은가.
[ 99호] 8.12 ~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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