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순의 그림이야기⑤]감옥 한번 가보는 것도 괜찮다고?

고흐<죄수들의 보행>

박홍순/편집위원  ilovezorva@yahoo.co.kr
90년대에 5년 동안 감옥살이를 한 적이 있다. 80년대에 1년 있었던 것까지 포함하면 꿈 많던 20~30대 시기에 6년을 1평이 채 안 되는 감옥 독방에서 지낸 셈이다. 고흐의 <죄수들의 보행>은 바로 그 감옥에 있을 때 한눈에 확 들어온 그림이었다.

이 그림은 1890년, 고흐가 귀를 자르고도 몇 번의 발작을 더 일으킨 후 생 레미의 정신병원 독방에 갇혀있을 때 그렸다. 독방 안에서의 작업만이 허용되던 때 그는 렘브란트, 들라크루아 등 다른 화가들의 작품을 모사하곤 했는데 이 그림도 어떤 책에 있던 판화를 모사하여 그렸다.

고흐는 감옥 안에서 간수의 감시 아래 좁은 공간을 빙빙 돌아야 하는 죄수들의 모습에서 자신을 보지 않았을까? 과부 마음 홀아비가 안다고 했던가. 정신병원 독방에서 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 고흐의 고통이 백년이 더 지난 한국의 감옥 독방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내게 그대로 전해왔다.

나는 간혹 후배 활동가들 중에 ‘감옥에 한번 가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한 대 쥐어박고 싶을 때가 있다. 자유를 송두리째 빼앗기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를 모르는, 자유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이다. 나치의 감옥에서 나오면서 본 회퍼가 쓴 시가 있다.

“태연하고도 확고하게 마치 영주가 자기 성에서 나오는 것처럼 감옥에서 내가 나온다고 사람들은 이야기하지만, 나는 누구인가… 새장 속의 새처럼 불안하게 밖을 그리워하다가, 부드러운 말과 인간적인 사랑에 굶주린 채 밝은 빛과 꽃과 새 소리를 갈구하고, 사소한 모욕에도 분노하고 몸이 떨리고, 그러다가 기대에 사로잡히고, 저 멀리 있는 친구를 그리워하다가 다시 낙심하고….”

인간이 한없이 약해지고 초라해지는 곳, 야만스런 국가의 폭력 앞에 굴복해야 하는 나날. 푸코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이 사회 전체가 벤담이 말한 원형감옥과 같다고 한다. 물론 그 사람들이 말하려는 바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감옥은 그렇게 비유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인간에게 가장 야만스러운 곳이 있다면 그곳은 전쟁터와 바로 감옥이리라.

그렇기에 한국의 역대 정권은 수많은 활동가들을 감옥에 처넣었다. 왜? 10명이 들어가면 8∼9명은 운동을 그만 둔다는 걸 그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에 대한 확신과 민중에 대한 신념으로 가득했던 그들이 왜 그만두었을까? 사람에 따라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대부분 공통적으로 깔려있는 것은 두려움이다. 자유를 박탈당했을 때 겪는 끔찍한 고통에 대한 두려움 말이다.

감옥은 그 사회 인권의 척도다. 가장 억압이 심한 곳을 들추어내고 빛을 비추는 것이 운동의 출발이라면 감옥은 당연히 우선 순위에 들어가야 한다. 문민정부니, 국민의 정부니 하지만 감옥은 반대로 점점 더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고 있음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혀 모르고 있다.

고흐의 그림이 오늘 다시 오랜 감옥살이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가슴이 아려온다.
[ 99호] 8.12 ~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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