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협32조? 그게 뭐 길래
지난 7월 중순 쯤이다. 기아자동차 사내하청노조의 간부들이 본조가 위치한 화성공장과 하청노동자 대다수가 분포하고 있던 광주공장 앞에서 단식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본격적인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 먹을 것이라고는 더위 밖에 없는 단식을 감행하는 이유를 어렴풋하게는 알고 있었다. 기아자동차 하청노조가 출범하던 지난 해 12월부터 노조활동을 주목해 온 기자는 이미 노조로부터 이번 정규직 노조의 임단협 교섭에서 하청문제를 단협에 명시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단협 32조라고 했다. 비정규직의 무분별한 고용을 원천적으로 막게 하는 조항이라고 했다. 정규직 노조의 단체협약을 통해서 비정규직의 확산을 막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한다? 이 얼마나 고무적인 일인가. 다수의 사용자들이 인건비 절감에만 눈이 어두워 탈법과 편법으로 임시직, 파견직 형태의 고용을 남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자체를 정규직 노조가 제한할 것을 단협에 명시하겠다니! 이를 하청노조와 논의하여 요구안을 만들고 임단협 교섭의 핵심 쟁점으로 내걸게 되었다니! 이제 광주는 캐리어 사태의 상흔을 말끔히 지우고 '원·하청 노동자 연대'의 구심점으로 새롭게 떠오르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기대를 하면서 이 교섭의 추이를 더욱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단식은 왜 하지? 교섭은 정규직 노조가 하고 있는데 하청 노조가 20일 가까운 단식을 감행하고 있는 이유를 물어보려 수화기를 드는 순간 또 다른 속보가 들려왔다. 20일째 단식을 하던 하청노조 명등룡 교육부장이 탈진으로 병원으로 옮겨졌단다. 영양제를 긴급 투입해 간신히 기운을 회복한 명 부장과의 통화에서 모기 같은 소리로 그는 말한다.
"단식의 목적이야 다른 것이 다른 게 있겠어요? 하청노조는 교섭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평소처럼 선전전 정도만 배치하기에는 이번 임단협 교섭이 너무도 중요하거든요. 해고자 복직 문제나 단협 확보는 정말 절실한데 회사를 압박하는 가장 극단적인 투쟁이 교섭권도 없는 하청노동자들에게는 '목숨 건 단식 투쟁'밖에 없다는 게 현실입니다."
한여름의 막바지 폭우가 쏟아지던 지난 8월 5일, 광주행 버스를 탔다. 이미 며칠 전인 7월 23일 기아자동차 노사는 임단협 협상을 마무리했다. 고용관련 조항 대부분이 노·사간 합의내용으로 정리된 이번 개정안을 두고 재계와 일부 언론에서는 '사실상의 경영권 침해’라며 열을 올리기도 했다. 무언가 경영계가 심히 불쾌할 만한 성과를 이뤄낸 것은 틀림 없나보다. 또한 노조가 타결과 동시에 하계휴가를 떠나 공장의 라인이 멈추자 "교섭기간엔 잔업거부며 시한부 파업 등으로 생산에 차질을 주더니, 이젠 휴가 가느라고 라인을 멈추면 언제 일할 거냐"는 불만을 담은 소비자 항의성 글이 기아차노조 홈페이지 게시판에까지 적잖이 올라왔다. 이를 두고 노조 한 관계자는 "기아차가 요즘 잘 팔리기는 하나봐요. 소비자 상담 사이트도 아닌 노조 게시판에 이런 글들이 올라오는 걸 보니 말이죠"하고 웃는다.
어찌 되었건 이번 기아자동차의 임단협 결과는 노동계 뿐 아니라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고, 이는 비정규직 고용제한 조항을 신설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렇다면 이 조항을 신설하기까지 비정규직 관련 사업의 주체적 역할을 해왔던 기아차 광주지부와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이번 단협 결과를 두고 어떤 평가를 할까? 사실은 '공식적인 평가'가 나오기 전에 원·하청 노동자들의 여과되지 않은 반응을 보고 싶었다. 정규직 노조는 '경영권 침해'라는 비난을 감수하며, 하청노조는 '목숨 건 단식투쟁'을 해가며 확보한 이 조항이 현장 정서에 어떻게 영향을 줄런지, 아니 어떤 변화된 현장 정서가 이 조항 확보에 영향을 준 것인지, 이 조항 자체로는 또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는지, 광주에 가서 '조사'가 아닌 '그냥 보기'를 할 계획이었다.
천막? 비정규 게릴라성 폭우를 막을 수 있을까
떠나기 전 날부터 서울은 일부 지역이 수해를 입을 정도로 폭우가 내렸다. 그 비를 뚫고 광주에 도착하니 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서울서 남하한 태풍이 이곳에도 무섭게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터미널에서 광주공장으로 가는 길에는 '단협 32조 쟁취!', '기아자동차 불법파견금지', '해고노동자 현장복귀' 등의 문구가 담긴 플랜카드가 빼곡이 늘어서 있었다. 그 플래카드를 따라간 광주공장 북문 입구에는 하청노조의 농성장인 천막이 있었다. 무엇이든 그곳에 자리를 잡으면 그의 일부가 된다고 했었나? 공장 건물 외벽의 색과 비슷한 색인 천막은 예전부터 거기 있었던 듯 자리를 잡고 있다. 천막이 건물의 일부처럼 느껴진다는 기자의 말에 하청노조 조합원 김형남씨는 "며칠 전에 천막이 무너지는 바람에 아주 새로 다시 설치했다"며 새집을 자랑하듯 흐뭇해한다.
"얼마 전에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주차해 놓은 차에 줄을 묶어 임시로 지지대로 썼는데 아침에 누가 생각 없이 차를 몰고 가버렸죠. 그 순간 천막이 쓸려 가 버린 건 말할 것도 없구요. 그래서 다시 지은 건데 덕분에 비도 안 새고 태풍에도 끄떡없게 보수를 했지요. 오늘 태풍이 온다는데 선견지명에 의한 실수였나 봐요." 무용담처럼 웃으며 말한다. 하지만 천막생활이란 것이 결코 여름 하루 이틀 밤 야영장에서 보내는 텐트에서의 그것하고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짐작하지 못할까. 아무리 튼튼하다고 자화자찬을 늘어놓지만 거센 빗줄기가 염려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태풍 탓에 웬만큼 기온이 내려간 지금도 이렇게 더운데 열대야를 운운하던 며칠 전에는 이 찜통 같은 천막에서 단식까지 하고 있었을 생각을 하니 새로 지은 천막이 유쾌해 보이지는 않았다.
천막. 하청노조의 투쟁에서 이젠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이 되어버린 것 같다. 하청 노조의 현실을 가장 잘 보여 준다고나 할까? 지금까지 대부분의 하청노조가 그러했듯 불법파견이나 정리해고에 맞서서 조직된 하청노조들은 그들의 투쟁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조합원 대다수가 직접 고용으로 전환되고 실패할 경우에는 대량으로 계약해지된다. 어차피 조합원의 다수가 하청노조의 틀을 떠나게 되고 마는 것이다. 문제는 항상 노조를 이끌었던 소수의 핵심간부들은 정규직 전환도, 하청으로의 복귀도 어림없는 일이고 항상 해고자로 남게 된다는데 있다.
지난 2001년 4월, 금속노조 캐리어사내하청지회는 캐리어 자본이 불법파견을 해 온 것을 밝혀내면서 2년 이상 근무자인 100여명의 조합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캐리어사내하청지회 역시 이를 주도하던 핵심 간부들은 해고된 상태로 1년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 회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진행 중이다.
기아사내하청노조도 다를 것이 없다. 기아자동차가 지난해 12월부로 7개 하청의 도급계약을 해지하고 하청노동자 401명을 대량으로 해고하자 하청의 고용불안이 팽배해지면서 하청노조가 발족했다. 이후 정규직노조와 하청노조는 파견법 위반의 소지를 들어 직접라인의 하청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도록 끈질기게 요구하였다. 그리고 결국 회사는 지난 4월 12일 130명을 정규직으로 300명을 계약직으로 직접고용했다. 그러나 역시 이 투쟁을 이끌었던 하청 노조의 소수 간부들은 정규직 전환은커녕 일찌감치 해고되어 복직을 요구하는 천막농성을 진행 중이다.
그 천막도 지키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월드컵 기간에는 미관상 좋지 않다며 회사가 '방해물 제거 및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고 강제 철거를 하겠다고 하더니, 지난 7월 13일에는 '법원이 8월 2일 천막 강제 철거를 대체집행 하겠다'는 결정서가 날아왔다. "법원이 대체집행 할 때는 아무도 없는 한 밤중에 하지는 않겠지요?"라고 물어보는 하청 조합원은 정말 자기 집이 철거라도 당하는 듯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번 기아자동차의 임단협 교섭에서는, 앞서 말했듯이 이러한 비정규직의 고용문제와 하청 해고 조합원의 현장 복귀 등을 논의하려는 시도를 했다. 그러나 정확히 말하면 사내하청노조의 문제는 단협안에서 풀어내지 못했고 별도 합의서도 아닌 별지 회의록에 "사내하청노조 문제는 광주공장에서 광주지부 또는 당사자와 성실히 협의한다"라고 명시하는데 그쳤다. 그러니까 사내하청노조의 문제해결은 아직 미완의 단계에 있는 것이다.
선험적인 규약? 맞아요, 어차피 힘 겨루기니까
천막이 있는 북문을 돌아 동문으로 갔다. 승합차를 생산하는 1공장 입구에 있는 기아차노조 광주지부 사무실은 조금은 술렁거리고 들 뜬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임단협 타결 직후 7월 29일부터 기아자동차 전 라인이 하계 휴가에 들어갔고 오늘은 일주일만에 출근이다.
바로 이기곤 지부장을 만났다.
- 이번 기아차의 임단협 협상이 주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 지난 6월, 현대자동차의 임단협 결과보다 한 단계 발전한 것은 단협안에 최초로 비정규직의 고용제한을 명시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번 단협 32조에는 비정규직을 채용할 경우 '노사의견 일치케 하여 실행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회사가 일방적으로 비정규직을 채용할 수 없으며 사실상 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합의문구'로 해석되어 진다고 봅니다.
- 바로 32조 ②항에서 '비정규직을 직접라인에 투입할 경우 노사 일치케 한다'라는 그 조항이 투입을 전제로 합의를 이끌겠다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던데요.
= 물론 초기 요구안대로 "정규직의 업무를 파견노동자로 대체해서는 안 되며"라는 안을 넣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그러기에 노조의 힘이 밀린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지금 협의안도 더 이상의 확산을 막기에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노조가 합의를 한다는 전제를 내려버리면 할말이 없어지는 것 아닙니까? 어차피 어용 집행부가 들어선다면 자본의 요구대로 할 텐데 단체협약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선험적인 조항이라도 노사간의 합의를 제도화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후 일들은 노조가 노력하여 사업 속에서 담아내는 것이 관건이지요.
- 이번에 단협 6조 협약의 적용범위에 조합과 조합원 뿐 아니라 '일반적 구속력에 따른 전 종업원에게 적용된다"라고 개정했습니다.
= 일반적 구속력의 범위도 회사와 노조가 각각 다른 입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조가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동일노동 동일임금'까지 적용한다면 이상적이겠지만 그것까지는 힘들 것입니다. 조합 활동 역시 똑같이 할 수 없을 것이고요. 그러나 복지나 기타 모든 혜택을 동등하게 적용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 그렇다면 지난 4월12일 하청에서 기아차로 직접고용 된 300명 계약직은 조직대상이면서 단협 적용대상입니까?
= 물론 조직대상이고 (단협) 적용대상입니다. 그러나 아직 여력이 없어 미조직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번 임단협 협상을 통해 이 계약직 300명에 대해 "2004년 신차종 투입시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정규직으로 채용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때문에 2년 후에는 모두 정규직 조합원이 될 것이고, 그전에 이들에 대한 조직화는 고민 중에 있습니다.
- 하청문제를 본조에서 광주지부로 떠넘기는 것은 아니냐는 의문도 나오던데요.
= 본조 차원의 논의를 이미 거쳤습니다. 그렇지만 비정규직 사안을 고민한 핵심주체가 광주지부였고 하청노조 또한 광주에 있습니다. 때문에 광주지부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지 떠넘긴 것은 아닙니다.
- 그렇다면 이번에 별지 회의록 합의에 의해 만들어질 3자 협의회 상은 어느 정도로 보십니까? 최소한의 선을 어디까지 긋고 있는지요.
= 협의회를 통해 '이것만큼은 하겠다'라는 말은 사실, 하기가 곤란합니다. 아직 만나보지도 못했는데... 그런데 이 협의회는 5명의 하청노조 간부 해고자 복직을 우선적으로 요구하는 자리입니다. 이것은 회사에서는 이들을 복직시키는 것은 선례를 남기는 일이어서 수용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때문에 지금 확답을 하기는 곤란합니다. 그러나 이 협의회는 원청 회사와 하청노동자가 최초로 교섭을 하는 장이 되는 큰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이기곤 지부장은 시종일관 지금의 단협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당장 하루 뒤인 6일에 별지 회의록으로 합의했던 3자 협의회 첫 실무회의가 내정되어 있었다. 이 지부장은 이 협의회에서 당장 무엇을 이루겠다는 것보다 이후 투쟁을 어떻게 가져가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계속해서 집행부의 의지만으로 진행되는 사업은 소모적으로 갈 가능성이 큽니다. 기본적으로 조합원들의 지지를 충분히 받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이는 사실 기아차 단위사업장 혼자서 이끌어 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민주노총 차원의 투쟁으로 규정하고 장기적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입니다. 당장 기아차에서 하청문제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물론 비정규직 문제는 단위노조의 노력으로는 늘 한계에 부딪혀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임단협 때 하청노조와 관련한 것을 모두 3자 협의회에서 '성실히 교섭할 것'으로 넘겼고 이것이 아무런 성과도 낼 수 없는 최악의 사태에 이른다면, 이는 정말 원청 회사와 하청 노동자들이 '만났다'는 것만의 성과에 그치고 말 것이다. 이 또한 임단협이 만든 제도화 중에 하나로서.
이 공장에 오늘 출근한 정규직들 중에는 정말 오늘이 의미가 큰 사람들이 있다. 바로 지난 4월 12일 60만원이 조금 넘은 기본급을 받는 하청노동자로 있다가 정규직으로 전환된 130명의 노동자들이다. 그들은 3개월 간의 수습기간을 마치고 오늘부터 원청의 진정한 정식사원으로 첫 출근을 하게 됐다.
월급이 3~4배로 오른 것은 물론이고 정규직 노조 조합원 자격도 갖게 되었다.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정규직화'를 꿈꾸고 있는데 그 꿈이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그들의 심적인 변화와 환경의 변화가 궁금해서 정식 직원이 된 두 명의 노동자를 만나 보았다.
"저요? 태도 자체가 변했죠. 과거 협력업체 시절에는 미래도 없고 의욕도 없어서 무엇 하나 내 손으로 열심히 해 본 일이 없었어요. 괜히 불만만 많아져서 조반장들하고 별일 아닌 것 가지고 아니꼬운 마음에 계속 부딪히기만 했었어요. 그런데 이젠 회사에서 근무하는 태도가 달라져요. 하나하나 열심히 하려고 하고. 모두 다 내 일 같은 주인 의식도 생기고, 자신감도 생기고... 또 조장이나 반장의 간섭도 줄어드니까 이제 내가 이 회사에서 어떤 존재로 인정받는 것 같아서 뿌듯하고, 이런 것들이 가장 달라진 점이죠."
흔히 비정규직 채용을 시장논리에 의해서 규정하는 경우가 많다. 싼값에 다량의 인력을 쓰니까 효용성이 높다는 말이다. 그러나 하청노동자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신분상승(?)의 꿈을 이룬 노동자는 '일하는 태도가 달라졌다'고 한다. 애사심이 들고 주인의식에 책임감까지 생긴다고 한다. 당장 주는 월급이 많다고 비경제적이라고 치부할 일이 아니다. 자본도 중요한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찍 결혼해서 서른 초반에 두 아이의 아버지라는 또 다른 노동자는 하청 시절 가장 힘든 부분은 역시 경제적인 궁핍함이라고 한다.
"사실 일하면서 내가 하는 일이 정규직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협력업체나 원청이나 격 없는 동료처럼 지냈습니다. 그런데 월급날 되면 영락없이 기분이 우울해 집니다. 월급명세서 자체도 정규직들은 기아마크가 새겨 진 종이에 폼 나게 인쇄 돼서 나오지만 하청은 보통 A4지에 기본적인 항목만 적혀 나오지요. 비교도 할 수 없는 월급에 낙담하는 것은 매달 있는 일이니까 그나마 견딜 만 해요. 그런데 명절 같은 때 원청은 상여금도 두둑하고 큼지막한 선물도 받아가지만 하청이야 그런 게 있습니까? 명절이 돌아오는 것이 싫었어요."
부양가족이 있는 경우 경제적 조건의 변화를 가장 크게 느낀다는 말이다. 이제 기아 광주 공장은 직접라인에 하청이 같이 일하지는 않으니까 월급날 주눅 드는 노동자는 없게 돼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제가 직접 '아빠가 기아자동차 정식 사원됐다'라고 말한 적도 없는데 초등학교 1학년인 제 아들 녀석이 지 엄마한데 들었는지 제가 퇴근할 시간에는 통근버스를 기다리곤 합니다. 아빠가 거기서 당당하게 내린다는 것. 그것도 아이한테는 자랑스럽지요."
그도 그럴 것이, 이젠 아이가 크면 자녀에 대한 학자금 지원도 받을 테니 기혼자들에게는 양육의 부담을 던 것도 큰 변화라면 변화일 것이다.
이번에는 하청노조를 바라보는 시작에 대해 물었다.
"물론 하청노조에 대해 고마운 마음이 크죠. 자기 일자리 잃어 가며 회사와 싸워준 그 사람들 때문에 내가 정규직이 됐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하청시절 같이 해보자고 할 때도 고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내 스스로가 불안해서 동참할 수가 없었습니다. 회사에 밉보이면 하청이라는 것이 언제 잘려 나갈지 모르니까요. 정규직 전환 말이 나올 때는 더더욱 몸을 사리게 되더군요. 심정적으로는 지지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디다."
흔히 기아차 사내하청 노조의 한계를 '조직화 실패'로 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하청노동자의 전반적인 정서가 이렇다. 자신이 처한 극심한 고용불안은 이를 개선하자고 외치는 하청노조도 믿을 수가 없게 만든다. 정규직 노조처럼 힘이 있어 뵈지도 않으니까. 오히려 회사 쪽에 충실한 것이 안전할 것 같아 보인다.
그래서인지 4.12 정규직 전환을 둘러싸고 기아자동차 내에는 말이 많다. 정규직 전환 대상자의 기준이 전혀 마련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기준이 없다는 것은 이권이 개입되기 마련이고 이는 "회사에 잘 보인 사람들만 정규직이 됐다", "일부 대의원들이 명당 2천만 원 정도의 돈을 받고 정규직으로 전환되도록 해 줬다", "(지금은 해체된) 고용안정소위원회도 돈을 받고 전환자를 선정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돈을 주고 정규직을 사는 현대판 '공명첩'이란 말인가.
이번 단협 32조에는 "신규인력 소요가 발생, 정규직 채용 시 직접 생산 공정의 비정규직을 채용 규정에 의거 우선 채용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하청노조쪽은 이 조항에 대해 '채용규정에 의거"라는 표현이 적절치 않고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채용규정이라는 것이 명확하지 않으면 또 한번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권력에 의해 줄서기 하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규직노조도 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한 노조 관계자의 말이다.
"예전부터 광주 기아자동차 입사는 외적으로는 지방인사들, 내적으로는 노조 간부나 회사의 '빽'이 많이 작용했죠. 국회의원이나 대의원 '빽' 정도? 라인에 친인척이 같이 있는 근무하는 경우가 허다해요. 이게 너무 관례화되다 보니까 채용기준을 새로 마련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에요."
<다음 편에 계속>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