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노동 기상도 한 복판, 기아차를 가다(Ⅱ)

캐리어 사태? 광주에서 한 번이면 족해요

다음 날인 6일, 막 1차 3자 협의회 실무회의를 마치고 온 고재한 하청노조위원장을 만났다. 27일의 단식 탓에 광대뼈가 툭 불거져 나온 그는 "병원에서 기운 빠진다고 말 많이 하지 말라고 했는데..."하며 웃는다.

그러나 막상 인터뷰가 시작되자 고 위원장은 많은 말을 쏟아냈다.

- 원청과 하청노동자가 공식적으로 처음으로 만난 자리였습니다. 첫 실무회의 결과는 어떻습니까?

= 오늘은 상견례 정도로 끝났어요. 서로의 입장을 전달하는 정도였지요. 원만히 해결하자는 의지만을 확인했습니다. 다음 주 중으로 2차 실무회의가 잡혔습니다. 정기적으로 회의를 가질 수 있을 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기아차 사내하청노조 고재한 위원장

- 하청노조의 요구는 무엇입니까?

= 하청노조의 요구는 단협안을 작성할 때부터 시종일관 같습니다. ① 해고조합원 현장복귀 ② 남은 사내하청 100여명 직접고용 쟁취 ③ 사내하청 2년 이상 근무자 정규직화 ④ 하청노조탄압 분쇄 등입니다. 이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회사쪽에서는 ②항과 ③항에 대해서는 임단협 협상 때 별도 회의록을 통해 '현재 남아있는 비정규직 문제는 공장별 고용안정소위를 개최한다'로 합의했기 때문에 하청노조와는 해고 조합원 문제와 노조탄압에 대한 논의만 하겠다는 입장이었고, 하청노조도 오늘 회의에서 이를 수용했습니다. 나머지는 정규직 노조가 고용안정소위를 통해 풀어야할 일이라고 동의했습니다.

-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 같습니까?

= 해고조합원 전원을 현장복귀시키려 하지는 않을 겁니다. 회사는 아직까지 다른 업체로의 취업알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말하는 현장 복귀는 우리가 일하던 자리인 메인라인이기 때문에 어차피 최소한 기아차의 계약직으로 입사하는 것입니다(이미 지난 4.12때 직접라인의 하청노동자들은 모두 정규직과 계약직으로 직접 고용했다). 쉽게 들어주지 않겠지만 몇 명이라도 복귀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계속해서 집행부 회의를 통해 대응전략을 모색하겠습니다.

- 지난 달 하청노조는 회사 노무인력팀이 2001년 3월 작성한 '비정규직 노조 설립 관련 관리방안'이란 내용을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어떤 내용입니까?

= 광주공장에서 하청노조 설립 움직임을 막기 위해 작성한 시나리오입니다. 그에 따르면 노조를 조직할 것 같은 요주의 인물을 퇴출하고 타 업체의 취업까지 제한하는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는가하면, 대졸자를 단계적으로 퇴출하고 원청 관리자들을 포섭하는 등 매우 치밀하게 노조설립 저지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지난 12월에 있었던 대량해고 역시 생산물량 감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태하청 노조 설립을 사전에 방해하려는 목적이라고 봅니다.

- 이 문건을 공개할 당시 정규직 노조와 아무런 상의가 없었다고 하던데. 공동투쟁의 의미를 훼손하는 것은 아닙니까?

= 광주에는 목포카톨릭병원과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문제 해결을 위한 지역대책위원회가 꾸려져 있습니다. 이 문건은 지역대책위 차원에서 공개 된 것입니다. 물론 정규직 노조와 공식적인 협의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건 보안에 매우 신경을 써야 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임단협 시기에 맞춰서 하청노조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전 협의가 없었다고 해서 방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너무도 명백한 노동탄압인데 같이 문제제기하고 여론화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것은 보여지는 사실이지 하청노조가 독단적으로 내놓은 정책도 전략도 아닙니다.

- 이번 임단협 합의안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 물론 의미가 큽니다. 사내하청 논의를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요.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가 단협에서 다뤄진 것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제32조는 우리가 신설할 것을 요구하며 제시한 것인데, 노조의 안이 협상 대상이 된 것이 아니라 결국 사측의 내용으로 찬반을 물었다는 것입니다. 통과된 내용도 메인라인 비정규직 투입에 대해 '노사 의견 일치케 하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문구가 '합의'라고 하더라도 합의 이후에는 투입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닙니까? 애초의 취지가 희석된 것이지요. 또한 비정규직의 임금협상 및 처우에 대한 문제를 비정규직과 협의가 없이 진행했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지난 해 12월 사내하청노조 출범 당시 만났던 고재한 위원장은 "캐리어와 같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극한으로 대립해서 서로를 공멸하는 사태를 만든다면 우리는 이 투쟁을 미련 없이 접을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했었다. 그 같은 노-노간 대립은 광주에서 한 번이면 족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기아차의 원·하청 노조들은 적어도 캐리어와 비교할 때 대외적으로는 연대가 원만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이번 임단협 교섭과정에서부터 타결안에 대한 견해에 이르면 조금씩 이견이 보인다. 고 위원장은 이러한 현실에 대해 타결책을 모색 중이다. 임단협이 종료되면서 더 이상 정규직노를 통한 성과만으로 의존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노동기상도 변화?, 기아 속에 있다.

지난 13일부터 3자 협의회 2차 실무회의부터 광주지부가 사실상 빠지게 됐다. 하청 해고조합원 복직과 하청노조 탄압만 관련 건만을 논의하기로 했으니 자연스럽게 회사와 하청노조 양자구조로 변하게 된 것이다. 이제 정규직 노조를 제외한 하청노조와 회사의 본격적 협상이 시작될 것이고 하청노조는 처음으로 주체에 섰다.

그러나 정규직노조도 하청노조도 이 협의회를 통해 하청노조의 요구가 완전히 관철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회사는 이번 임단협 교섭에서 풀지 못하는 문제를 이 협의회로 떠 넘겨서 협의회 자체가 실효성이 없도록 할 의도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별지 회의록에 기록된 '성실히 협의한다'는 문구는 어차피 성실히 협의하면 그만일 테니까. 바로 그 수준이라는 사실이다.


자본은 캐리어 사태 이후 절대로 노-노간 갈등을 부추기거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극한으로 몰고 가지 않는 양상이다. 적당히 불법이 아닌 편법이 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둔다. 이번 기아차의 130명 정규직 전환과 300명 계약직 전환이 그 예이다. 또한 이제는 더 이상 하청의 문제를 방관하기 어려운 정규직 노조에도 적당히 체면치례를 할 수 있는 '떡고물'도 마련해 준다. 지난 현대자동차의 임단협 협상에서도 회사는 정규직 노조가 제시한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인상과 근무환경 개선 등에 합의를 해주며 작년 성과급 배분을 둘러싼 하청노동자들의 불만을 일부분 잠재우기도 하는 했다. 한편 정규직 노조에게 '면피'의 기회를 주기도 했다.

이는 기아자동차의 임단협 협상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15대 집행부 조남일 지부장 시절 현 집행부 세력은 당시 노조가 하청문제에 냉담한 것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 해 왔고 때문에 당선 이후에는 비정규직의 문제를 중심 사업에 배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 임단협은 교섭은 16대 집행부 비정규직 사업 역량을 평가하는 장이기도 했다. 또한 노조안을 전면적으로 부정할 수도 없는 회사가 적당히 정규직 노조의 체면을 유지할 수 있는 타협안을 제시한다. 노조는 그 안을 수용할 수 있는 투쟁력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집행부의 의지만으로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흩어져 있는 각 지부 조합원에게 비정규직 사안을 자신들의 싸움으로 가져가게 하는 데 실패했고, 이는 처음 의도한 요구안대로 단협 32조를 확보하는 것을 힘에 부치게 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번 기아차의 임단협 체결 과정은 분명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민해서 단협안까지 마련했다는 것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는 이후 대공장의 단협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이 성과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98년 울산에서 현대차 정리해고 과정에서 하청노동자들이 소리 없이 잘려 나가면서, 지난해 광주에서 캐리어 노동자들이 '고용 위협'이라는 회사쪽 논리에 말려 하청의 구사대로 돌변하면서 많은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희생과 반성 속에 이뤄진 것들이다.

이러한 과오를 통해 변화되는 것은 노동계뿐이 아니다. 이제 거대 자본은 훨씬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비정규직의 '불만을 잠재울 요소'를 고민하는 것 같다. 예전처럼 섣부른 대량해고도, 노-노간 갈등 유발도 쉽게 하지 않는다.

기아자동차의 단협 32조 신설과 하청문제 논의는 그래서 더욱 면면히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지금보다는 이후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도입을 막고자 하는 노조의 의지가 중요하고, 조합원의 정서를 바꾸는 것도 중요하고, 하청 노동자들의 조직화도 중요하니까. 또한 이 단협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자본보다 한 발 앞서서 다음을 준비해야 할 판단력의 근거를 제시한 것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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