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석(노동자의 힘 회원)
식구들의 등쌀에 따끔따끔 살을 태우는 이글거리는 태양을 머리에 이고 남해의 한적한 어촌마을에 1박2일의 여장을 풀었다. 한려수도의 시퍼런 바닷물과 바닷바람을 한껏 마시며, 계급투쟁의 일상으로부터 짧은 일탈을 맘껏 누리리라...
작은 돌맹이들로 이루어진 이름 모를 짤막한 해변에서 어민들과 함께 숯불에 삼겹살을 구어 먹으면서 세상사는 얘기를 나누었다. 한가로운 어촌 풍경과는 달리 이들의 속내는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만큼이나 시커멓게 타 있었다.
돈 되는 사업은 외지인에게 다 넘어간 상태고, 육지에 집이라도 사서 떠난 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어민들은 빚더미에 짓눌려 있었다. 정부의 어민 지원제도(농어촌 후계자 지원제도)에 힘입어 수억에서 많게는 수십 억씩 수협에서 돈을 대출 받아(주민상호 빚 보증) 가두리 양식장 등의 사업을 시작했는데, 언론에서 비브리오 패혈증에 대한 보도가 한번 있고 나면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되며, 이런저런 이유로 빚만 지고 망하는 경우가 많다. 거액의 빚을 들여 고기를 키워 보지만 망하는 것은 순식간이요, 그래서 빚은 더 늘어만 간다.
젊은 사람들이 도시의 공장이나 서비스업계에서 힘겨운 노동으로 삶을 이어가다가, 어촌의 친구나 친척들의 권유에 의해 거액의 지원금을 대출 받고 막연한 희망에 부풀어 어촌으로 들어온다. 이들에게 귀향을 권유하는 것은 대출보증을 세우기 위한 목적도 크다 한다. 이렇듯 상호 빚 보증을 서가며 수억대의 대출자금을 지원 받는다.
금융자본은 경기불황을 맞아 농촌과 어촌으로 투자처를 옮겨 순박한 사람들을 꾀어 빚으로 얽어 놓는다. 거액의 빚에 코가 꿰인 어민들은 갚을 능력을 상실하여 숫자감각에 무디어 지고,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식 반응이라는데...
이렇듯 농촌 못지 않게 어촌은 이웃간 빚 보증으로 얼키고 설켜 야반도주를 하게 되고, 그 파장으로 동네가 위태롭기까지 하다. 또한, 빚잔치는 이혼과 가정의 해체를 동반하기도 한다. 수협에서도 어민들의 빚 보증의 고리가 너무도 복잡하게 얽혀 있고, 그 금액 또한 엄청나서 섣불리 손을 대지 못하고 임시방편으로 책임을 모면키 위해 당장의 문제를 무마하는데 급급하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또 비정상적인 금전 채무관계는 눈덩이 불 듯 비대해 지고, 곪을대로 곪아서 언젠가 터져 버린다면, 결국 그 피해는 어민대중과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될 것이 뻔하다.
남해는 육쪽 마늘로 유명하다. 그만큼 마늘농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얘기인데, 최근 불거진 마늘수입 자유화를 내용으로 하는 한·중 마늘협상과 관련해서 어느 지역보다도 분노가 크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매일 저녘 '6시 내고향' 에서는 위선적인 내용의 연출된 농어촌의 현실 이데올로기 선전의 한 방편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반기에 전농과 민주노조 진영의 '신자유주의 분쇄! 식량주권 사수!'를 위한 노·농 연대투쟁의 불길은 마늘협상으로 열 받은 남쪽 끝 남해에서 가장 치열하게 불타 오를 것이며, 그 투쟁에 남해의 어민들도, 아니 남한의 어민조직인 어민총연합도 함께 투쟁의 깃발을 움켜 쥘 수 있을 것이다.
한맺힌 노동자 민중들의 서릿발같은 투쟁만이 극단적인 모순으로 가득 찬 체제의 벽을 깨뜨릴수 있으리라.
돌아오는 길, 눈에 들어오는 한가로운 남해의 촌마을 풍경들은 너무도 평화스럽고 아름답기만 했는데, 고깃배 양식장 수산물 가공공장의 어촌노동자들의 삶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그들의 수심이 시퍼런 바닷물보다도 깊다. 내 짧은 생각은 시퍼렇게 배 난간에 부딪혀 오는 바닷물과 시원한 바닷바람에 금새 묻혀 버렸다.(2002.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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