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주 (노동자의 힘 회원)
"엄마, 안녕히 다녀오세요."
자신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돌아서는 엄마를 향한 아이의 밝은 인사에 가슴을 쓸어 내리며 총총히 발걸음을 돌린다. 2주 가까이 아침마다 치르던 전쟁이 끝나려나 보다. 어린이집에 가지 않고 엄마, 아빠랑 같이 있고 싶다는 애원과 결국 터지는 울음 앞에 회유와 협박으로 대응하며 쩔쩔매지 않았던가.
아이는 태어나 3주만에 할머니 품에 안겨 시골로 갔고 세 돌이 다 돼가도록 그 곳에서 자랐다. 서울 집에서 엄마, 아빠와의 단란한 생활을 상상하며 할머니를 기꺼이 포기했던 아이에게 어린이집에 보내진다는 것은 낯선 곳, 낯선 사람에게 버려진다는 공포를 느끼게 하였으리라.
그러나 아이에 대한 안쓰러움보다는 앞으로도 어차피 항상 같이 있어줄 수 없다면 빨리 적응시키는 게 낫다는 생각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무늬만 부모일 뿐 아이에게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직장생활과 활동을 하던 우리에겐 당장 아이를 맡겨야 하는 현실이 일차적이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삶과 활동에 대한 상을 제대로 고민하지 못하고 어렵게 구축해온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욕구가 강하다보니 아이를 기른다는 것이 어떤 관점과 계획을 가지고 이루어져야 하는 지에 대한 것은 뒷전이었던 셈이다.
돌아보면 우리가 그만큼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희생을 담보로 한 것이었다. 젊어서는 시집식구들 뒷바라지 때문에 자유로울 수 없었고 자식들 키우느라 속도 많이 끓이셨던 어머니는 활달하고 놀기 좋아하는 천성을 오랜만에 친구 분들과의 계모임과 백 원 짜리 고스톱으로 풀어내고 계셨다. 우리가 덜컥 아이를 맡기기 이전에는.
손주는 이쁘지만 사람들을 만나기 힘들어 가끔씩 답답해 하시는 어머니를 볼 때면, 우리의 사회활동을 위해 어머니의 사회생활을 제약하고 있구나 라는 죄책감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곤 했다.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자신의 직장생활과 일을 위해 어머니들에게 불가피하게 육아노동을 떠맡기곤 한다. 여성의 사회진출을 위해 또 다른 여성을 발판으로 삼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물론 이 말은 육아가 여성의 일이라는 것을 전제하는 게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는 거다.
우리 주위의 수많은 예를 살펴보자.
부부가 같이 일을 하는 경우 탁아는 최대의 화두다. 경제적으로 좀 넉넉한 경우 개인적으로 보모를 구할 수도 있겠지만, 없는 우리네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영아의 경우는 맡길 곳이 딱히 없고 그러다 보면 부모님께 손을 벌리게 된다.
아이가 둘이 되면 사정은 더 나빠진다. 많은 여성노동자의 경우 퇴직을 하고 전업주부의 길을 택하게 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월급과 육아비가 거의 동일한 수준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일부 직종을 제외하고 여성노동자의 임금은 남성노동자의 60-70%밖에 되지 않는데다 직장에서 별 전망도 보이지 않고 휴직의 길도 사실상 없어 결국 일을 포기하는 것이다.
퇴직을 부추기는 또 다른 요인으로는 "아무리 그래도 애들 잘 키우는 게 남는 장사야. 애들은 엄마 손이 가야 돼" 식으로 얘기되는 여성 육아 책임론이 아닐까. 아빠의 경우 별로 그렇지 않은데 일하는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사는 경우가 많다. 출산의 경험과 사회적 대물림 속에서 여성 스스로 육아를 자신의 영역으로 상정하고 있으며, 사회적 통념 또한 현모양처로서의 어머니와 아내를 끊임없이 강요한다.
이렇듯 육아는 여유노동자군이며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게 집중되도록 사회가 만들어 간다. 그렇다면 아빠들이 육아를 맡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육아는 아이의 신체와 정신, 정서의 건강한 발달을 위하여 온가족이 함께 애써야 한다. 그러나 육아는 기본적으로 사회의 재생산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제이며, 또 동시에 사회가 여성 노동을 부단히 요구한다는 점에서 사회의 책임이 일차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과연 이 책임을 얼마만큼 느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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