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한국경제:증가된 금융불안정성

미국식 금융제도는 대안이 아니다

김수영(노동자의 힘 경제분석팀)

1990년대 중후반 들어 미국경제는 세계자본주의의 우상으로 등극하였다. 80년대 미국의 증권가인 월스트리트를 제압하였던 일본 자본주의가 쇠퇴일로를 걸었던 것과는 달리, 미국식 자본주의는 자신들이 유일한 대안인 양 선전하고 다녔다. 부르주아경제학자들은 '신경제'라는 이름을 붙이며 고전적 형태의 경기변동은 사라졌다고 미국경제를 찬양하였다. 그 여파는 한국자본주의에도 영향을 미쳤고, 마침 외환위기로 벼랑에 내몰린 한국경제는 미국식자본주의를 유일한 대안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IT산업을 별도로 하더라도 미국식 회계제도는 투명성과 건전성, 그리고 수익성의 상징이었고, 새로 만들어지는 한국의 기업회계기준은 '한국어판 미국회계기준'에 다름 아니었다. 그렇지만 현 상황은 어떠한가? 그런 평가가 내려진지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 IT거품론, 주식거품론이 대두되며 연착륙이냐 경착륙이냐를 걱정하는 처지에 빠지게 되었다. 또한 자본주의적 도덕성의 기준으로 자랑하였던 미국회계기준은 엔론, 월드컴 등의 회계부정사건으로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여기서는 김대중정권의 금융구조조정의 과정을 정리하고 이러한 구조조정이 본질적으로 미국식 자본주의를 흉내내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식자본주의의 금융제도가 결코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증가되는 '금융적 불안정성'이라는 명제로 설명하고자 한다.

외환위기 직후 당선된 김대중정부는 유동성이 극도로 부족했던 14개 종금사와 2개 증권사 그리고 투신사 1개를 퇴출시키고, 채권발행과 재정자금으로 23조원에 해당하는 공적자금을 조성하여 부실채권 매입 및 금융기관 지원에 나섰다. 아울러 예금보험공사의 기능확대, 자산관리공사의 기능확충 등 기업 및 금융구조조정을 위한 관련 법제를 조성하여 구조조정의 기반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본격적인 구조조정시기 구분을 정권은 1998년 4월에서 2000년 8월까지 1차구조조정, 2000년 9월부터 현재까지 2차구조조정으로 나누었다. IMF의 합의 사항을 구체화한 금융·기업구조개혁촉진방안을 발표하면서 시작된 1차구조조정 시기 동안, 정부는 50조원의 구조조정자금을 마련하고 이를 은행의 부실채권매입 등으로 사용하는 한편, 본격적인 금융권구조조정으로 5개 은행을 퇴출시켰다. 99년부터 한국경제가 살아나는 듯 했다. 2000년 초반까지 이런 추세가 지속되었으나 2000년 하반기부터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외국자본은 끊임없이 한국경제의 구조조정이 완성되기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고, 2차구조조정이 2000년 9월부터 시작되었다. <표>를 보자. <표>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금융구조조정과정에서 정리된 은행자본과 정리해고된 금융노동자의 규모를 알려주고 있다.

<표1> 금융권 구조조정 내역
*그외에는 투신사, 생보사, 손보사, 상호저축은행, 신협 등이 포함됨. 상대적으로 규모가 적음. 표는 금융감독원의 '최근 금융산업발전의 현황 및 특징'을 참고한 것임.

90년 중반의 OECD가입을 조건으로 추진한 금융자유화는 투자붐(93년 -0.1%, 94년 23.6%, 95년 15.8%로 높은 설비투자율이 기록됨)과 결합하여 생산과 설비투자를 확장시켰다. 결국 설비확장에 따른 상품공급의 증대는 상품의 가치가 실현되지 않는 과잉생산위기로 한국경제를 몰고 갔다. 실현의 한계를 넘어 생산을 과도하게 확장시켰던 것은 외국단기자본을 손쉽게 빌릴 수 있었던 금융자유화로 인하여 가능하였다. 위기에 대한 대응은 과도하게 확장된 부분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외국의 단기차입금을 빌려오는데 앞장섰던 종금사가 대거 정리되었으며, 뒤이어 부실채권을 많이 보유한 은행부터 차례로 퇴출되거나 합병되기 시작하였다. 구조조정의 과정은 부채삭감이나 채권지불연장을 보장하는 공적자금으로 인하여 자본에게는 고통의 과정이 아니었지만, 노동에게는 일방적인 퇴출과 실직이 수반되는 피말리는 고통의 과정이었다.

이러한 구조조정과 동시에 자본은 금융제도를 전면적으로 변화시키기 시작하였다. 산업순환의 하강국면에 지나지 않았을 97년의 위기를 외환위기로 몰고 간 최대의 원인이 90년대 초반의 금융자유화였음에도 불구하고, IMF와 김대중정권의 전략은 더 확실한 금융자유화조치로 난국을 타개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금융자유화조치는 크게 금융산업 진입제한의 철폐, 금융기관의 업무영역의 확대, 외국금융기관의 국내진출 확대 및 외국인 증권투자자유화로 요약된다(각주 1).
말하자면, 외국자본의 자유로운 유입과 유출을 보장해주고, 증권시장의 업무의 자율성을 보장해주며 다양한 파생금융상품의 거래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었다. <표1>을 다시 한번 보자. <표1>에서 구조조정기 동안 다른 금융기관들이 상대적으로 위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증권사들은 오히려 36개 사에서 46개 사로 증가되었다는 것은 금융자유화가 가져올 변화를 예감케 하는 지점이다. 바로 미국식 자본주의로의 지향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식자본주의는 철저하게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서 기업의 정리가 이루어진다는 점을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주식시장의 규모(각주 2)가 실물부문보다 상대적으로 비대하며, 주식시장에서의 변동에 의해서 기업의 가치가 철저히 평가되는 것이 미국 자본주의의 금융적 특징이다.
<표2>는 지난 10년 간 한국경제에서 국내총생산(GDP)과 주식시가총액, 채권시장의 규모를 보여준다. 한국경제에서 주식의 비중이 미국처럼 거대해진 것은 아니지만, 90년 초반의 변동과 90년 후반의 변동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GDP의 성장은 상대적으로 적은 등락을 거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주식시장은 GDP변동의 몇 배에 해당하는 크기로 변동한다. 문제는 금융자유화 이전과 이후의 방식이 아주 다르며, 이후의 변동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것이다. 전세계 유휴자본의 60%를 흡수하는 미국경제에서 주식시장의 변동은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 것이다. 따라서 주식시장에서 사기와 투기를 이용하여 주가를 조작하고자 하는 시도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또다른 한면일 수밖에 없다. 엔론 등의 분식회계는 그 구체적인 사례를 제공한 것이다.

<표2> 국내총생산과 주식총액, 채권시장의 규모(1991~2001)


한국의 금융시장이 미국처럼 비대해질 것인가는 장담할 수 없지만(각주 3), 금융자유화로 인하여 그 변화의 폭이 상당히 증가될 것은 확실하다. 외국자본의 국내유입과 유출의 자유는 현재의 한국경제에서는 별문제가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자본주의의 특징상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과잉생산/과잉축적의 위기가 도래할 때 위기가 증폭되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실물부문에서 위기가 금융시장의 위기로 전화되어 주식시장의 폭락으로 이어지고 다시 실물경제의 침체로 연결되는 위기경로에서 주식시장의 폭락정도가 심각할 때 위기는 증폭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증폭을 상대적으로 크게 할 수 있는 것이 외국자본의 자유로운 유출인 것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민감하게 움직이는 금융시장의 변동으로 말미암아 실물경제에 심대한 타격이 발생하는 경우도 더욱 빈번할 수 있게 된다. 서두에서 언급한 금융불안정성은 이러한 현상을 의미한다.

여기에 하나 더 첨가할 것은, 금융불안정성을 야기시키는 원인 중의 하나가 가계대출의 증가라는 사실이다. 금융불안정성이 발생하는 원인이 자산시장의 비대화인데, 자산시장의 비대화가 현재 한국에서는 가계대출의 증가로부터 발생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2001년까지 가계대출의 총액이 338억원으로 추정되었고, 올해 들어 가계대출의 증가추세는 주류경제학자들이 가계파산을 걱정할 정도에까지 달했다. 기업에게 자금이 흘러들어 간 것이 아니라 가계대출을 통해서 금융자산 특히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엄청난 자금이 흘러들어 간 것이다. 이런 상태라면 불안정한 주식시장의 위기로 인한 가계파산이 경제위기를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김대중정권하에서의 금융구조조정은 부실금융사를 퇴출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금융제도자체의 변화를 수반하였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그 변화의 핵심은 주식시장중심의 미국식 경제제도를 이식시키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근거는 외국인투자한도의 철폐 등의 관련법의 개정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식 금융제도가 한국경제의 금융불안정성을 증가시켜, 이윤율저하의 위기가 불안정한 금융부문으로 말미암아 더욱 증가된 위기로 전화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식 경제제도, 특히 금융제도는 대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주)
1) 증권거래업 등 7개 업종을 외국인에게 전면 개방하여 외국인의 증권회사 주식보유한도를 폐지하는 한편 외국인의 투자한도를 완전히 철폐한 것이 1998년 4월이었고, 그해 12월에는 투신사에 대한 외국인지분참여제한을 전면 철폐하였으며, 증권거래법의 개정으로 증권업진입제한이 완화된 것이 1999년 4월의 일이었고, 이 당시에 보험업을 개정하여 외국보험회사에 대한 규제도 없어졌다. 또한 증권사의 고유업무를 없애고 환전과 선물환의 취급도 허용해주었으며 증권투자신탁도 취급하게 하였다.

2) 시가총액/GDP의 비율이 미국은 130%, 일본은 70%. 주식시장의 규모가 상당히 크고 주식시장의 빠른 변동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클수 있음을 암시하는 부분. 2001년 평균.

3) 물론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의 성장이 상당히 클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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