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에 한 말씀 남겨주십시오"
"나 못 써. 내가…… 내가 여기다가 뭐라고 쓰겠나" 들었던 펜을 다시 내려놓으신다. 1991년 5월 안기부의 전노협 탈퇴 강요에 맞서다가 안양병원에서 죽은 고 박창수 한진중공업 위원장의 아버님은 김종배 동지의 무덤 앞에 끝내 눈물을 보이신다. 아들의 투쟁으로 두 번째 징역을 살았던 아들 같은 종배가 또 자신을 앞섰으니 그 슬픔이 더 깊으리라.
8월 25일 오후 2시 모란공원에서는 15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노동운동가 김종배 동지 제3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가족들이 먼저 제를 올리고, 이어 추모사업회 주도로 추모식이 진행되 었다. 3년이 지났건만 혈육을 잃은 슬픔에서 차마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족들, 동지가 떠난 빈자리를 아쉬워하는 분들이다. 민주노총, 공공연맹 동지들, 지하철노조, 조폐공사 노조 동지들, 노동사회단체 동지들 그리고 전노협 동지들. 생전에 김종배 동지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를 만나보고자 찾아 온 동지들. 모두 숙연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몄다. 8월이 되어 다시 돌아온 김종배 동지. 그는 전노협 사무총국에서 활동하였고, 다들 민주노총으로 매진하던 시기 전노협백서발간위원회 팀장으로서 병마와 싸워가며 「전노협 백서」12권을 만드는 데 중심이었다. 현재의 공공연맹이 기틀을 마련하기 시작한 공노대 시절부터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현장을 조직하고 투쟁을 기획하는 데 온몸을 바쳐왔다. 그의 경력이 말해주듯 한시도 쉬지 않고 계속되는 투쟁 속에서 자신을 돌보지 않고 활동하다가 1999년 8월 27일 불의의 사고로 운명하였다.
김종배 동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를
전노협의 비타협적 투쟁 정신을 온몸으로 실천한 사람, 항상 새로운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한 불도저 같은 사람, 늘 사람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살았던 사람냄새 풀풀 나는 사람이라 한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투쟁의 무게에 지친 동지와 술잔을 기울이며 토론하고 어깨를 보듬어 주고, 게으름이 스멀댈 땐 강요 아닌 강요로 실천을 강제하곤 했다. 동지가 떠난 지 3년. 가족들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던 슬픔을 잘 이겨내고 있고, 그의 빈자리는 남은 동지들이 메워가고 있다. 그를 추모하는 모임에서는 동지가 하고자 했던 노동운동자료실을 꾸려가고 있다. 25일 추모식 자리는 김종배 동지를 생각하면서 지금 활동하는 우리들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자리였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 노동운동가로서의 자신의 활동을 돌아보는 계기였다.
이렇게 동지는 늘 실천적인 활동가 상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 아니, 우리 곁에 살아 있다.
노동운동가 김종배 추모사업회 (02-463-4643 / jongbae.labordata.org)
노동운동역사자료실 (02-463-4643 / wbook.labordata.org)


김종배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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