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투기와 비리의 장으로 만드려는가?

- 자본이, 자본을 위한, 자본의 산업교육진흥법

최문경(진보교육연구소 대학교육분과 연구원)

교육인적자원부(다음부터 교육부)는 지난 4월28일 산업교육진흥법개정안(다음부터 개정산교법)을 입법예고했다. 하지만 시민사회학생단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규제개혁위원회는 거의 원안 그대로 8월9일 심의의결했다.
이 법안은 대학 안에 학교기업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하고, 대학에서 만들어진 연구의 상품화를 촉진한다는 내용이다. 이미 언론에서는 국공립대학에 특허의 이전을 전담하는 법인을 설립하고, 대학에 산학협력단을 설립해 대학연구 특허의 상업화를 촉진한다는 내용으로 알려지고 있다. 80년대 미국이 베이돌법(Bayh-Dole)을 만들어 대학의 연구와 기술을 상업화했듯이 우리도 그렇게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베이돌법이 미국 대학의 연구와 지식생산기관으로서 대학의 본질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산학협동촉진'과 '기업이 요구하는 노동력의 양성'이라는 목적으로 법안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
대학 본연의 목적은 교육과 연구, 기존 지식의 재검토와 지식의 생산에 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자본이 OK할 때까지 대학이 생산하고 있는 지식을 철저히 기업에 맞추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대학이 대학다움을 찾기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해야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고, 기업의 요구에 맞게 대학도 이윤창출을 위해 전력질주 하는 모습으로 바꾸라고 요구하는 꼴이다.

김대중정부는 집권 후 일관되게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국립대특별법을 통해 대학의 사유화(민영화)가 추진되고 있고, 교수의 계약직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사립학교법을 개정하기는커녕 사학에 자율운영권을 주려하고 있다.
이런 일방적인 개악(?) 때문에 우리 대학은 황폐해져가고 있다. BK21은 전반적인 대학교육의 질을 부실하게 하여 일부 명문대학을 집중 육성했다. '학부제'는 어떤가. 골고루 교육하고, 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기초학문과 인문관련 과목은 설자리를 잃고 학생들은 학부제의 희생양이 되어버렸다. 개정안은 아예 한 술 더 떠서 정부의 전체적인 대학교육에 대한 책임을 포기하고, 이윤추구가 가능하거나 경쟁력이 있는 분야와 대학만 한정지원하며, 상품화할 수 있는 지식만을 생산하는 학교기업을 만들라고 부추기고 있다.
김대중정부는 98년 이후 정부출연연구소를 구조조정했다. 이로 인해 연구원에 비정규직이 50%를 넘으며, 임금마저 받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다. 올 초 기획예산처는 대학이 경쟁력강화의 첨병이 되어야 한다며 대학지원은 산학협동을 잘 하는 대학에 집중하고 대학과 연구소의 구분을 지양하겠다고 했다. 따라서 정부는 허울좋은 세계화와 인적자원개발을 위해 대학과 정부출연기관의 장벽을 부수고, '대학마저 자본의 이해를 실현하기 위한 장'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제 대학도 자본의 이윤추구와 세계화를 위해 전장의 전사로 나서야 한다. 경쟁력강화를 위해 대학과 기업이 '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교육부에서는 이번 개정안으로 현장실습을 강화하게 되면 학생들의 취업난을 해소하고, 기업현장에서 요구하는 더욱 실질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정안은 학교기업현장에 인력이 부족할 때 학생들을 일정기간동안 고용하여 장학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자동차정비공장, 제빵회사, 디자인 용역회사 따위를 학교 안에 설립할 수 있다고 한다. 정부는 이런 학교기업을 학교별로 자율적으로 설립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다. 대학의 학교기업 설립이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한국의 비정규직의 분포는 중졸이하 80.3%, 고졸 59.4%, 전문대졸 40.9%, 대졸이상 26.8%로 학력이 낮을수록 비정규직이 높다. 게다가 노동유연화 공세 속에서 비정규직은 더욱 증가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하는 수가 절대적으로 많아 대졸자실업률도 높다. 한 통계에 따르면 2000년 서울대 졸업자 3,868명 중 취업자 및 대학원 진학자, 군입대자를 포함한 총취업률은 71.1%에 그쳐, 졸업생 중 28.9%는 아무런 직업 없이 지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졸업생 총취업률은 99년 74.6%, 지난 해 72.4%, 올해 71.1%로 해마다 낮아지고 있다. 따라서 실업의 문제는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와 자본재편 속에서 구조적으로 자리잡고 있음에도 오히려 정부는 그것을 핑계로 '산학협동'을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 따라서 당장 취업은 할 수 있을지언정, 노동의 유연화가 심화되고 새로운 기계 도입과 같은 변수가 생기게 되면 그런 지식은 쓸모 없어져 결국은 전직이나 이직, 심지어 실업의 길로 내몰려야 한다.
결국 취업의 달콤한 유혹 때문에 공장의 노동자와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대우는 받지 못하는 유연한 '학생노동자'를 만들려는 의도인 것이다. 자본의 이해는 한 냥, 학생들의 이해는 서푼 꼴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에 대해 미국의 브롬리(H. Bromley)가 한 지적은 의미가 깊다.
"일자리가 너무 부족하다. 특히 정규직, 종신고용 일자리는 더욱 부족하다... 성장률이 빠른 분야가 첨단기술분야라고 해도 실제로 그 분야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일자리 증가율은 상당히 완만하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분야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지위를 낮게 보는 서비스직종이다. 노동통계국(The Bureau of Labor Statics)은 다음 십 년 간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분야는 판매점원, 간호원, 현금 출납원(cashier), 일반 사무직노동자, 트럭 운전사, 웨이터/웨이트리스, 간호보조원, 수위, 음식준비노동자라고 예측했다(뉴욕타임즈, 1994). 결국, 이러한 포스트-포드주의적 노동시장구조에서 기업이, '학교는 자기주도적이고, 다양한 능력을 갖추고,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학생을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그들을 부리나케 데려가기 위한 수요전략이 아니라, 기껏해야 운 좋게 그런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소수'와 임시직에다가 자리마저 부족한 일자리에 들어가기 위해 다투는 '다수'로 나누려는 수요전략이다... 일의 생산성은 근본적으로 학교에서 어떤 공부를 했는가와는 상관이 없으며, 필요한 기술은 대개 공장에서 습득한다."

또한 개정안은 '대학의 돈벌이 기관화'와 '지식의 상품화'를 노골적으로 부추기면서 대학교육의 공공성을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이제 사학도, 국공립대학도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기업을 대학으로 끌어 들여야 하고 기업을 위한 교육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교육은 '프로크라스티스의 침대'(침대에 맞추어 침대보다 키가 큰 사람은 신체를 자르고, 침대보다 키가 작은 사람은 억지로 잡아늘려서 침대길이에 맞췄다는 것)와 같은 이윤추구의 논리에서 잘려나가고 만다. 학문의 균형발전, 지식의 비판과 재검토라는 대학의 목적은 형체도 없이 사라질 위기로 내몰리는 것이다.
정부는 '학교기업'을 설립해서 그 수익금을 학교에 재투자하게 되면 학교로서도 이익이라고 하지만, 시장에서는 성공보다 실패가 많은 법. 학생들의 등록금을 학교기업에 투자해서라도 기업을 만들라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과연 누가 지라는 것인가.

대학의 공공성이란 단지 '대학의 문호'를 열어두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 생산하는 지식이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학교기업을 육성하고, 특허의 상업화를 전담하는 '산학협력단'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한다면 대학과 기업에 어떤 차이가 있을 수 있겠는가.
이미 베이돌법이 시행된 지 20년이 지난 미국에서는 '환경친화적 연구'나 '당장 이익을 내지 않는 연구'는 대학에서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징후는 BK21 이후 심해지고 있다.) 당장 현금화가 가능한 연구, 투자금을 막대하게 끌어올 수 있는 연구만이 숭상 받는다. 결국 그런 연구는 기업의 입장에서 막대한 이윤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인데, 막대한 이윤을 만들어내는데서 대학은 든든한 토대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이 30년대 이후 미국의 '군산복합체'가 성장한 배후에는 미국의 종합대학이 든든한 밑거름 역할을 했다. 이제 그 대상이 초국적기업, 대기업으로 바뀌고 있을 뿐이며, 대학 역시 기업화하고 있다. 시장의 논리에서 대학의 공공성은 한낱 휴지조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사학의 비리가 심각하고, 교육 없는 기관으로서 사학의 문제가 심각한 상황인데 '자율'이라는 논리로 기업설립의 자유를 주고 아예 노골적으로 돈벌이하라고 부추기는 것은 대학을 투기의 장, 비리의 장으로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효율성의 잣대로 이윤창출의 거대한 게임에서 살아남는 대학과 그렇지 못한 대학을 재단하는 산업교육진흥법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공공기관'이라는 대학이 '기업을 위한' 지식생산과 노동력을 만드는 자본의 하수인 위치로 전락하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손놓고 있어야 할 것인가 아닌가'란 물음에서 이미 답은 나와 있다. 다만 실천의 문제만 남아 있다. 산업교육진흥법을 저지하기 위한 투쟁은 한치의 양보와 타협이 존재할 수 없는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싸움이어야 한다는 것을 인. 식. 해. 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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