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술의 발달은 새로운 직업, 생활방식을 양산하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수익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직업이라고까지 얘기 할 순 없지만 이른바 '논객'의 확산은 순전히 신기술의 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인터넷은 쌍방향의 매체문화를 주도함으로써 논객의 양산을 부추기고 한편으로는 그들을 멀티미디어시대의 스타로 만들고 있다. 각종 사회적 현상과 의제들에 관한 논객들의 분석과 비평, 주장 등은 뜨거운 찬반논쟁을 불러일으키며 적지 않은 사회적 파급효과를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을 통해 벌어지는 이 같은 현상은 수동적으로 논쟁에 참여하는 각 개인들의 의견조차도 광범위한 공유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존의 대중매체와 명백한 차별성을 보이며 날로 확산되고 있다. 그래서 온-오프라인을 오가며 필명을 떨치는 비교적 알려진 논객에서부터 갖가지 ID와 논리로 무장한 사이버논객에 이르기까지 논객을 이루는 스펙트럼이 실로 다양해지고 있다. 이러한 논객의 수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한 포탈사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사이버 논객들이 개설한 칼럼의 수만 해도 총 17개 카테고리 2만여 개에 달한다고 하니 우리 사회에 말 꽤나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이 간다. 가히 '논객신드롬'이라 불러도 될 만 하다.
논객의 성비는, 남녀가 비슷한 걸로 나타났지만 나이별로는 20대 이하가 전체의 70%, 30대(18%), 40대(9%), 50대 이상(3%)의 순이며, 직업별로는 학생이 44.7%로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논객신드롬을 20대 이하의 학생 그룹이 주도하고 있다는 걸 시사하는 결과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여론을 주도하는 매체가 신문, 잡지 등의 인쇄매체와 TV를 중심으로 한 방송이었고, 여기서 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주로 사회지배계층에 속하는 중장년층의 소수 엘리트집단이었음을 상기한다면 획기적인 변화이다.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여 공감과 지지를 얻을 수 있고, 나아가 여론을 주도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분명 매력적인 경험일 것이다. 더욱이 현실세계에서 의사의 표현과 관철이 자유롭지 못한 젊은 세대에겐 말할 나위 없다. 상대적으로 신기술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난 젊은 세대가 인터넷을 통한 자유롭고 탈위계적인 의사소통으로 사회참여를 실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바람직하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일종의 신드롬으로까지 보이는 젊은 세대의 논객 지향성이 두 가지 측면에서 상당히 우려된다는 점이다. 하나는 논객을 실천적 글 쓰기를 통해 사회참여를 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에 방점을 찍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명성과 상징권력을 획득 할 수 있는 사람에 방점을 찍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양자가 대립되는 것만이 아니라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글 쓰기를 통해 자연스레 명성이 따라오는 것과 명성과 권력을 위한 수단으로 글 쓰기를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개인적 경험으로는 후자의 경우 논객은 논객이되 곡학아세의 반사회적 논객으로 전락할 개연성이 매우 크다. 그게 아니더라도 자신의 지위와 입장을 유지하기 위한 필요 때문에 글 쓰기를 할 따름이다.
다른 하나는 논객들의 글 쓰는 태도이다. 최근 각종 사회적 현안에 대한 토론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최소한의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지레짐작으로 상대방을 매도하거나 말꼬리를 물고늘어지는 일이 다반사며 끝내 감정싸움과 인신공격으로 치닫기도 한다. 말과 글이 의사소통을 확대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방해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사실 나는 명성과 권력을 좇는 논객과 잘못된 태도를 가진 논객을 한 몸으로 보아도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지향성에 따라 태도가 결정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논객들은 설득과 합의보다는 승리에만 관심이 있다. 자신에 대한 비판에 귀 기울이고 성찰하기보다는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어 철저히 짓뭉개고 약올리는 데에 집착한다. 그래서 얻어지는 것이 자신의 명성과 독자의 쓴웃음뿐이라면 재고해 볼 필요가 있는 게 아닐까?
논객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그것도 진보적 논객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정작 바라는 것은 글을 써서 먹고사는 것이 아닌 한 논객이 되더라도 논객을 직업이나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진보적인 사람이 글을 쓰는 이유가 사회적 현상과 삶의 문제에 대한 입장과 좌표를 세우는 실천적 행위이지 명성과 권력을 획득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 그걸 원한다면 문학을 할 일이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진보는 입과 머리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몸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시위도 하고 때로는 하찮은 허드렛일도 나서서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들이 하나로 연결돼 진보적인 삶을 이룬다.
논쟁태도에 대해서 한마디만 더 하자. 논쟁을 할 때는 상대의 주장과 논리를 정확히 파악해 비판하되 발전적으로 하자는 것이다. 또 비판을 자기갱신의 계기로 삼는 지혜도 배워보자. 냉소적 태도와 인신 공격적인 글 쓰기는 이제 그만 집어치자.
근래의 '논객신드롬'이 말의 유희가 아닌 실천적 글 쓰기에 충실한 논객들이 늘어나는 방향으로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면, 온라인 상의 실천이 오프라인 상의 실천으로 확장된다면, 이 보다 좋을 수 있을까.
지금종 (문화연대 사무처장) c-man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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