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법을 시행하지 말라" 적용범위 제한에 상인들 분통

상가임대차보호법시행령 제정 공청회

윤재설 dllp21@kdlpnews.org
서초상가번영회에 소속된 상가 4백여곳 가운데 한 곳도 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될 거면 차라리 법이 시행 안되는 게 맞다.”
“임대료 깎아달라거나 동결시켜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5년동안 마음 편히 영업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뿐이다. 우리가 건물주에게 엄청난 불이익을 주는 것처럼 얘기하지 말라.”

지난 23일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시행령 제정 공청회(사진)에서는 임차상인들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2000년부터 민주노동당이 시민단체들과 상가임대차보호공동운동본부를 결성해 벌인 법 제정운동의 결실로 오는 11월부터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지만 법무부가 마련한 시행령안에 따르면 대다수의 상인들이 법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이제야 비로소 건물주의 횡포로부터 안전하게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상인들로서는 이날 시행령안에서 규정된 적용범위를 확인하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보증금 1억6천 이상은 제외"

주제발표를 맡은 문장운 법무부 법무심의관은 시행령 제정을 위해 중소기업청이 실시한 상가 실태조사 결과를 인용하면서 법 적용범위와 관련 지역을 △서울시 △수도권정비계획법에 의한 수도권 중 서울시를 제외한 과밀억제권역 △광역시(군 지역과 인천 제외) △그밖의 지역 등으로 구분하고 서울은 1억6천만원, 과밀억제권역은 1억2천만원, 광역시는 1억원, 그밖의 지역은 9천만원으로 보증금액 상한을 규정한 시행령안을 설명했다. 또 임대료 인상률의 상한선에 대해서는 “최근 재계약시 증액된 경우의 전국 평균치인 연 12.4%의 근사치인 연 12%로 정했다”고 밝혔다.

지정토론자로 나온 이건호 변호사(대한변호사협회)는 “보증금 규모에 따라 적용범위를 나눈 시행령안의 규정에 대해 건물주가 보증금액을 올리거나 넓은 평수로 임대해 법 적용에서 벗어나려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하고 “보증금 규모가 아니라 소득규모 얼마 이하의 임차인을 대상으로 법을 적용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 제정취지 무력화"

송태경 민주노동당 정책2국장(상가임대차보호공동운동본부)은 “명동, 이화여대, 여의도 등 주요상권의 상가임차인들의 피해실태를 고려하지 않은 시행령안의 임차인 보호범위는 법 제정 취지 자체를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것”이라며 “모법의 단서조항이 삭제돼야한다”고 주장했다. 또 임대료 인상률 12% 상한 규정에 대해서는 “임대료가 내려가거나 동결된 경우는 빼고 오른 경우의 평균을 내는 엉뚱한 통계치를 제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영 부동산114 대표이사는 “영세상인을 보호하는 것이 법의 목적이라면 영세상인을 보증금을 기준으로 정의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상진 기업은행 차장은 “임대보증금 보호한도가 지나치게 상가임차인들의 입장만을 고려한 것이고 담보력 감소에 따른 금융위축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적용범위를 더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정토론자의 토론이 끝나자 공청회장을 가득 메운 방청객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임차상인연합회의 조연수씨는 “보증금 상한 규정을 둔다면 나머지 보호받지 못하는 상인은 불이익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냐”며 “상한 규정은 하루빨리 철폐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선근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임차인은 임대인의 횡포에 한번 노출이 돼버리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며 “규모가 크니까 소상인이 아니라고 내칠 것이 아니라 임대인에 대해 상대적으로 약자인 임차인 보호를 위해 상한규정을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초상가번영회의 조국환 총무는 “번영회의 4백개 업소 가운데 법 적용을 받을 수 있는 곳은 한 곳도 없다”며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법을 만들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안산지역 상인들과 함께 공청회장을 찾은 노세극 민주노동당 안산을지구당 위원장은 “시행령에 따르면 안산의 경우 9천만원 이하만 적용을 받는데 상인들 대부분이 적용을 받지 못한다”며 지역 상인들로부터 받은 민원을 전달하고 “현실에 맞게 제정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번 공청회는 법의 보호를 절박하게 호소해왔던 임차상인 대표자들을 토론자에서 배제한 반면 상가법 제정과정에서부터 법 제정 자체를 반대해온 이건호 변호사와 법 제정시 담보가치 하락을 이유로 건물주의 부도시 세입자가 우선해서 받을 보증금의 범위를 건물가액의 1/2에서 1/3로 하락시켰던 은행연합회 쪽 인사가 지정토론자로 나와 편파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토론자 구성 편파성 논란

민주노동당은 이날 공청회에 앞서 오전 11시 서초역 7번출구 앞에서 상가임대차보호공동운동본부, 전국임차상인연합회, 한국음식업중앙회,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등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공청회 지정토론자의 편파적 선정을 규탄하고 상가 세입자 보호범위를 대폭 확대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같은 시각 연세대 체육관에서는 2박3일간의 여름법률연수에 들어가는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법대학생회가 “편파적 공청회를 중단하고 상가세입자 보호범위를 대폭 확대하라”는 제목의 기자회견문을 발표했다. 이들 3개 법대 학생회는 지난 2000년부터 민주노동당과 함께 상가임대차보호법 제정운동을 함께 해왔다.
[ 101호] 8.26 ~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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