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련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네요. 차라리 몰랐던 편이 나을뻔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장 18년의 ‘싸움’ 끝에 밝혀낸 진실이지만, 그 앞에서 아버지의 가슴은 미어졌다. 강제 징집당해 군에 간 아들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도저히 믿기 어려웠던 아버지는 싸늘한 아들의 주검 앞에서 결심했다. ‘내가 니 죽음의 진실을 꼭 밝혀내마’. 그 때가 84년 4월. 당시 허원근 일병은 총기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버지 허영춘(63) 씨가 지난한 싸움 끝에 알아낸 사실은 아들이 술취한 상관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는 것이었다.
“죽은 사람을 10시간이나 방치한 것도 모자라 자살로 위장하기 위해 2발이나 더 쐈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그래, ‘차라리’ 몰랐더라면 이렇게 아프지는 않았을 게다. 담담하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지난 18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전남 진도의 평범한 농부였던 허영춘 씨. 의지가 강한 아들이 자살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그는 생계도 팽개치고 진상규명에 매달렸다. 사건 직후부터 청와대, 헌병대 등 각계에 청원서를 수십번 넣었지만 결론은 매번 똑같았다. ‘자살’이었다. 군 헌병대로부터 “그래봤자 소용없다. 몸 조심하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독학으로 법의학 공부도 했다. 이 지식을 바탕으로 96년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진정을 내 “자살로 보기 어려우므로 국방부에 재조사를 권고하겠다”는 성과를 이끌어 냈다. 하지만 국방부로부터는 아직까지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했다. “진실규명만 된다면 다 용서하겠다고 했는데”.
“처음 몇 년은 내 아들만 죽은 것 같았지요. 하지만 나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사람들과 함께 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허씨는 88년 유가협의 의문사 진상규명 135일 농성에 참석한 후 유가협 의문사 지회장을 맡기에 이르렀고, 98년 의문사 특별법 제정을 위한 422일 농성을 주도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진실은 밝혀졌지만, 현재 15년의 공소시효가 지나 가해자에 대한 법적 처벌은 불가능한 상태다. “국가가 저지른 범죄에 공소시효가 어딨데요? 나라가 불러서 갔는데, 죽었다구요. 나라가 책임져야죠. 국제법에도 국가 범죄는 공소시효가 없어요. 우리나라도 국제법 적용을 받는 규약에 가입해 있으니 거기에 따라야죠”
허영춘 씨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가해자들의 처벌을 바라기 때문이 아니다. 앞으로 억울한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면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우리 아들이 조금 먼저 밝혀졌을 뿐입니다. 억울한 죽음이 아직도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민주주의(운동) 하다 죽은 사람만 생명이고 민주주의 안 한 사람은 생명이 아닙니까? 나라 지키려다 죽은 사람 조사 안하면 말이 안되죠. 이미 우리들 가슴은 멍들만큼 들었으니 우리 세대에서 과거사 청산하고, 끝내야지요.”
이제야 아들을 가슴에 묻으려는 아버지. 그의 바람은 국가가 나서서 수많은 아들들의 원혼이라도 달래주는 것이다. “인자 묻어야죠. 내가 묻는 게 아니라 나라에서 묻어 줘야죠”.
이현주 / lhj@s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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