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하선생 의문사, 또다시 미결로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가 또다시 미결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박정희 정권하의 대표적인 반독재투사인 장준하선생은 1975년 8월 17일 등산회원 40여명과 함께 경기도 포천군 약사봉 계곡 옆산을 등반하다가 일행과 떨어져 하산하던 중 벼랑 14km아래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당시 사인은 추락사로 발표되었으나, 발표 직후부터 ‘정적 제거 차원의 암살’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특히 죽음의 의문점을 지적한일간지의 기자가 구속되고, 인근 군부대의 추가조사가 상부의 명령으로 중단되는 등 당시 취해진 일련의 조치는 이런 의혹을 부추겨왔다.

25년간 죽음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뛰었던 故 장준하선생 기념사업회와 유가족들은 지난 2000년 27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회)에 진정서를 접수했다.

당시 진정서는 장 선생의 실족사와 관련 ▲사인이 발표한 뇌진탕이 아니라 후두부 함몰로 추정된다는 점 ▲팔과 엉덩이에 의문의 주사자국이 있다는 점 ▲절벽에서 추락했다는 검찰 발표와는 달리, 시신에 어디 한군데 부러진 곳이 없이 깨끗하고 추락지점까지 등산로도 없다는 점 등을 주요 의문점으로 지적했다.

이후 위원회는 조사과정에서 선생의 타살 가능성을 시사해주는 단서들을 확보했다.

유일하게 사고현장을 목격해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김용환씨가 “일반인이 맨몸으로 접근하기 힘들다”는 점을 시인한 것. 또한 올해 3월에는 사건 당시 현장에 처음 출동했던 경찰관 이모씨(56·전남경찰청 모 파출소장)로부터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가 파출소로 내려가는 도중 계곡에서 나타난 낯선 남자 3명으로부터 ‘본 것 이외에 다른 말을 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는 진술을 받았다.

이어 8월에는 중앙정보부가 장 선생을 밀착 감시했었으며, 선생이 최고위원으로 있던 통일당의 지구당위원장 등 측근들을 프락치로 활용했던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이러한 의혹들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 배후는 밝혀지지 못했다.

전현정 / jhj@s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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