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지 않는 의혹, 계속되는 군의문사

의혹은 숱한데 결론은 언제나 ‘자살’ 3일에 1명꼴 자살, 군은 무마하기 바빠 … 책임 조사할 국가기관 절실

자살로 알려졌던 허원근 일병의 죽음이 타살로 밝혀진 다음날인 21일,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실을 찾았을 때다. 40대 후반 즈음으로 보이는 남자가 한창 말을 하고 있었다.

“명예회복이죠. 지금와서 뭘 바라겠어요” 84년 형의 죽음을 자살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던 그는, 허원근 일병의 기사를 보고 찾아왔다고 했다. 그의 손에 든 몇 장의 신문조각 곳곳이 색색의 형광펜 투성이다.

허원근 일병 사건이 보도된 이후 천주교인권위원회 군의문사·군폭력대책위원회(이하 천주교인권위)에는 군의문사에 대한 문의전화가 빗발친다. 이 중에는 53년 사건을 물어온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허 일병 사건이 밝혀지기까지 18년의 세월이 걸렸다는 데서 보여주듯, 군에서 발생한 죽음의 원인을 밝히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힘든 것이 현실이다.

2000년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지금도 군대에서는 한 해에 300여 명의 젊은이가 죽는다. 전시도 아닌데 하루에 한 명 꼴로 죽는 셈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중 100명이 ‘자살’로 밝혀진 점. 사망원인의 30%다. 그 동기도 한결같다. 내성적 성격 탓이거나 가정문제, 이도 아니면 여자친구 문제다.

“국방부가 3년 전에 300명 중 100명이 자살이라고 했다. 그런데 작년에 200명 중 100명이 자살이라더라. 사망자가 준 것처럼 말하지만 자살자 비율은 배로 늘었다는 말 아닌가” 천주교 인권위원회 홍기영 간사의 지적이다. 왜 이렇게 ‘자살’이 많은 것일까. 홍 간사는 “책임자의 인사 불이익이 가장 없는 것이 자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렇듯 의혹이 끊이지 않자, 국방부는 유족들의 한을 풀어주겠다며 99년 4월 ‘민원제기 사망사고 특별조사단’(특조단)을 꾸려 재조사에 나섰다. 지난 해까지 특조단에 접수된 사건은 무려 166건. 하지만 이 가운데 유족들이 제기한 ‘타살 의혹’이나 ‘자살 원인’을 제대로 밝혀낸 경우는 단 한건도 없다. 천주교 인권위와 군가협은 “특조단은 진실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며 “특조단을 해체하고, 국가가 책임지고 진상규명에 나설 것”을 요구해 왔다.

홍기영 간사는 군 조사체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군이 초동수사에서 ‘작품’을 만들어 버린다. 한 명의 지휘관이 인사권, 수사권과 지휘권 모두를 가지고 있으니 사고가 발생하면 그 지휘관도 안전하지 않다. 그러니 ‘덮어라’는 지시를 내리고, ‘증거인멸’을 위한 회의까지 열리는 것이다” 결국 진실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의혹만 남는 것. 홍 간사는 초동수사에서 유가족 대표와 유가족이 지정한 시민단체, 군의 합동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심각한 것은 군의문사를 책임지고 조사할 국가기관이 없는 점이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있지만 이 곳은 ‘민주화’ 운동 관련 사안만 조사하고 있어 유족들은 이 곳을 찾아봤자 “다른 곳을 찾아가보라”는 답변을 들을 뿐이다. 그러나 ‘권한’을 가지고 군의문사를 조사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 현실. 홍기영 간사는 조사권한이 없는 시민단체의 한계를 지적하며 ‘현재진행형’인 군의문사에 대해 국가 차원의 책임있는 조사가 절실하다고 했다. “변호인단, 유족들과 함께 현장검증하고 조사 해 보면 타살임이 확실한 사건들이 종종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무런 권한도 없는 것이 문제”라면서 “의문사위나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군의문사까지 조사범위를 확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군은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군 존재자체가 의미가 없다. 더 이상 신뢰를 잃기 전에 진상을 규명하고 억울한 죽음을 막아야 한다”며 경고의 메시지를 남겼다. “시민단체가 군에 딴지걸려고 이러는 것 아니다. 나라에서 불러서 갔는데 나라가 책임지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참회의 마음으로 진상규명에 나서야 하며 이는 죽은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이현주 / lhj@s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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