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에서 ‘과거사 청산’을 말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이 친일파 문제다. 하지만 규명해야 할 과거는 부지기수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을 비롯해 의문사 사건, 삼청교육대, 녹화사업 등 끊이지 않는 국가폭력과 피의 역사가 있다.
국민들의 인권을 지켜야 할 국가가 민간인학살의 주체였고, 인권유린의 주체였다는 사실은 과거사를 분명히 밝히지 않는다면 또다시 그런 과오는 되풀이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녹화사업이나 의문사 사건 은 개별적인 사건 모음이 아니다. 이는 국가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진 ‘국가범죄’다. 그런데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거부로 녹화사업의 진상이 규명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여전히 군부독재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나치 청산에 전력을 기울인 독일, ‘진실과 화해위원회’를 통해 인종차별의 상처를 해소하려 한 남아공, 그리고 일본과의 과거사에 한 치도 타협하지 않는 북의 경험은 좋은 본보기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분리정책으로 고통을 당한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족들을 고문하고, 살해한 인종분리정책의 앞잡이들의 처벌을 원하는 것은 당연했다. ‘진실고백’을 한 사람의 경우 사면한다는 정책은 많은 반발에 부딛쳤지만 진실규명에 나섰다.
과거사 청산을 모범적으로 했다는 독일은 어떨까. 독일은 몇 년 동안 나치독일이 점령했던 러시아, 폴란드, 체코,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피해를 본 사람들, 그리고 유대인들에 대한 사죄의 방법을 놓고 논의를 거듭했다. 전후세대인 슈뢰더 독일 총리는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공언해 왔으며, 2000년 독일 정부는 나치독일에 강제동원됐던 피해자 1백50만명에게 1백억마르크라는 천문학적 액수의 배상금을 지급하기로 결정, 이는 독일이 계속해 온 ‘역사적 책임 벗기’의 결정판으로 평가받았다.
두 차례나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쟁범죄 국가로서 독일은 그 동안 기회있을 때마다 과거의 잘못을 ‘확실하게’ 반성하고자 했다. 70년 폴란드는 방문한 브란트 총리가 나치독일이 무자비한 살육을 자행했던 유대인 게토의 전몰자 묘역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바란 것은 유명한 ‘사건’이었다.
독일의 과거에 대한 반성은 비단 정부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독일인들은 사회 각 분야에서 자신들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고, 피해자들에게 배상해 오고 있다. 또 독일은 역사 교과서에서 히틀러가 등장해 대학살을 자행하기까지의 자세히 과정을 실어, 역사의 교훈을 심어주고 있다.
이현주 / lhj@sp.or.kr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http://www.newscham.net/data/coolmedia/0/KakaoTalk_20180411_120413041_copy.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