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나서 또 다른 죽음 막아야”

군의문사 진상규명과 군폭력 근절을 위한 가족협의회(군가협) 김정숙(58) 회장

“난 우리 아들 자랑스럽게 군에 보냈어요. 그런데…”

30년 동안 주부로 살았던 김정숙 회장이 군가협 회장까지 하게 된 것은 98년 학군단으로 입대했던 아들 박도진 씨가 1년만에 변사체로 발견되면서부터다. 그렇게 쾌활하던 아들이 내성적인 성격 탓에 죽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그는 군대로 직접 찾아갔다. 군과 숱하게 싸웠다. “코흘리개한테 사탕주듯 유족들을 달래려 하거나 아예 고압적인 자세로 나와요. 죽기살기로 드러누워야 사진 한 장이라도 받을 수 있어요.”

군의 수사라는 게 유족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이다. 군사보안지역이라는 이유로 유족조차 현장출입이나 사진 촬영, 관련자 면담 등을 극도로 제한하는 것. “자식이 죽었는데 보안이 다 뭐요. 우리가 간첩입니까”

이런 이유로 군가협이 가장 주력하는 부분은 군대 사망에 대한 국가 책임을 명시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제3의 기관이 사건 수사를 맡도록 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2000년부터 매달 마지막주 화요일마다 국방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군의문사는 가정을 파탄낸다. 어떤 가족은 엄마와 딸이 다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또 어떤 집은 아들이 죽은 지 일 년만에 아버지가 세상을 떴다. 아들의 죽음을 연로하신 부모님께 알리지 못한 채 “미국에 유학갔다”고 말하고는 아버지 혼자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집도 있다. 김정숙 회장도 속앓이가 심해서 늘 약을 가지고 다닌다. “순간순간 보고 싶어 미칠 때가 있어요. 그럴 땐 혼자 아들하고 얘기하고, 혼자 중얼거리고…”

결국 김정숙 회장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가 했더니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명절이 되면 유족들이 남산에 올라가서 각자 자기아들 이름 불러요. 국방부는 이런 것을 압니까”

이럴수록 김정숙 회장은 더욱 강해져야겠다고 결심한다. “군대와의 싸움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들 합니다. 많은 유가족들이 중간에 지쳐서 나가기도 했고요. 하지만 아무리 큰 벽도 밑에서부터 파면 무너지는 법이쟎아요. 내 아들은 다시 못오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또 다른 아들이 억울한 죽음을 당할 것 아닙니까”

이현주 / lhj@sp.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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