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이동권, 더디가도 반드시 쟁취합니다

무기한 단식농성 중인 장애인 이동권 연대 농성장

서울시청을 마주보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조금만 걸어가면 바로 눈앞에 보이는 높다란 건물에 길게 플래카드 하나가 걸려있다. “발산역 리프트 장애인 추락참사, 서울시는 공개 사과하라!” 발산역 사고에 대한 서울시의 공개사과, 지하철 장애인용 엘리베이터 설치, 저상버스 도입 추진기구 철치 등을 요구하며 장애인이동권연대가 목숨을 걸고 무기한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농성장, ‘국가인권위원회’다.

예상외로 농성장에는 너댓명 정도의 농성단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지 농성단의 수가 처음보다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란다. 각기 일을 마치는 저녁시간이 되면 다시 하나 둘씩 모여들어 농성장이 북새통을 이룬다는 실무자의 설명이다.

단식농성자들이 번잡함을 피해 쉴 수 있도록 마련한 장소의 벽면은 지지방문을 왔던 이들이 남겨놓은 대자보들로 가득차 있었다. 개중에는 일본, 중국에서 온 이들의 글도 남아있다. 한결같이 절망속에서 희망의 싹을 틔우자고, 끝까지 함께가자고 다짐해 놓은 글들이다.

장애인이동권연대의 지나온 투쟁 과정을 함께한 이들은 안다. 함께하자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쇠사슬, 수갑으로 자신의 몸을 결박하고 짐덩어리처럼 길바닥에 내동댕이 처지면서도 그 투쟁을 멈출 수 없는 이들의 절박한 현재를 말이다.

2001년 오이도역 추락 참사 이후 서울역 선로 점거 투쟁, 수 십차례의 장애인 버스타기 투쟁, 수백, 수천 번의 서명운동, 일인시위, 장애인과 함께 지하철 타기 투쟁, 천막농성... 이 과정에서 경찰서를 말그대로 제집처럼 드나들었고 구속도 수없이 당해야 했다. 전경들에게 몰매는 또 얼마나 맞았을까. 덕분에 장애인이동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졌고, 지난 서울 시장 선거에서는 각 후보들의 관련 공약 명문화를 이끌어 낼 정도로 많은 성과를 올리기도 했지만 실제로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2002년 8월 12일 결국 이들은 무기한 단식농성이라는 극한의 투쟁을 선택했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박경석 공동대표가 농성장으로 올라왔다. 눈에 띄게 야윈 얼굴에 눈은 반쯤 풀려있었다. 한마디 말을 내뱉는 것조차 힘겨워 보일 정도였지만, 여전히 그의 의지는 결연했다. “아무 것도 얻은 것이 없지 않습니까. 이대로 끝낼 수가 없잖아요.”

함께 무기한 단식농성을 진행 중인 장애인실업자종합지원센터 최재호 대표는 아예 한쪽에 자리를 펴고 누워있다. 12일 처음 농성을 시작할 때만해도 9명의 장애인들이 단식에 결합하고 있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구토와 탈진 때문에 더 이상 단식을 계속하지 못하고 속속 병원 신세를 져야했고, 지금은 박경석 공동대표와 최재호 장실연 대표만이 무기한 단식농성을 11일 째 계속하고 있는 중이다.

오후 2시경,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이 농성장을 방문했다. 약 20분 정도 머물렀던 심 의원은 버릇처럼 모두에게 악수를 청하고, 광섭씨에게 ‘몸 조심하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총총히 자리를 떠났다. 그 역시 목발을 짚는 장애인이다.

오후 4시부터 지지방문 온 고려대 인권위원회 학생들, 사회당 고려대 학생위원회 학생들과 함께 지하철 시청 역사안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약 세시간에 걸쳐 진행된 서명운동 동안 참여한 시민의 수가 무려 1,000여 명. 같은 시간 모금된 금액이 42만원이다. 서명운동을 마무리하고 평가를 진행하는 자리에서 오늘의 ‘전과(?)’를 자랑스럽게 펼쳐놓는 학생들의 얼굴이 밝다. ‘오늘만 같아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다.

대강의 하루일정을 마무리하고 잠시 쉬고 있을 무렵인 오후 9시 경에 인의협(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회원들이 단식농성중인 박경석 동지와 최재호 동지의 건강을 체크하기 위해 다녀갔다. 혈압이 조금 낮아진 것 외에는 아직 큰 이상이 없다는 말에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간다. 여전히 묵묵부답인 서울시의 후안무치에 분노가 치밀고, 끝이 보이지 않는 험난한 투쟁의 길이 가슴을 먹먹하게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들은 변함없이 한 길을 갈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끝을 보고야 말 것이다. 확신의 근거가 뭐냐고? 궁금하다면 당장 국가인권위원회 11층으로 달려오라. 그곳에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사회를 일궈가는 ‘사람들’이 있다.

장애인이동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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