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가 만난 사람]"‘야만의 도시’에서 소외된 사람들 얘기 쓰고 싶어"

공선옥 소설가

오진아 dodani@kdlpnews.org
공선옥(39)씨와의 인터뷰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몇 차례 미뤄지고 있던 지난 6월. 어느날 공선옥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어딨어요? 나 지금 의정부 집회하는데 왔는데 민주노동당 깃발이 보이더라. 혹시 여기 와 있나 해서….”
여중생 두명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죽은 것을 규탄하기 위해 의정부 미2시단 정문 앞에서 1차 국민대회가 열리고 있던 날이었다.

“내가 인권운동사랑방 후원을 하고 있거든. 거기서 내는 인권하루소식지를 받아보고 있는데 의정부에서 애들이 깔려죽었다는 얘기가 나왔더라구. 세상에 그 어린 것들이 말이야. 나도 애들 키우는 엄마잖아. 분노가 막 치밀어오르더라구. 그래서 인권운동사랑방에 전화를 걸었더니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인가 하는 데 전화번호를 알려주더라구. 거기 전화를 했더니 26일날 집회를 한다는 거야. 작지만 내 목소리라도 보태야겠다 그래서 무작정 간 거지.”

이어지는 공씨의 말. “만약 미국인이 다른 나라에서 그런 일을 당했다고 하면 미국이 가만히 있었겠어? 미국도 나쁜 놈들이지만 이 나라 정부가 도대체 누굴 위한 정부인지 난 그게 더 화가 났어.”

“그런 집회에는 10년만에 처음 가본 것”이라는 공씨는 이날 집회에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어서 배고픈데 같이 밥 먹자고 할 사람도 없었다”며 좀 쑥스러운듯 말했다.(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같은 장소에서 다시 집회가 열렸다.
그때 기자는 그 집회를 취재하러 그곳에 갔었는데 공씨도 그날 ‘취재’ 때문에-<말>지에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를 연재중이다-그곳에 또 한번 갔었다면서 “같은 장소에 있었는데도 못 알아봤네”라며 웃었다.)


세 아이 둔 '가장'

춘천에 살고 있는 그를 만나기 위해 경춘선에 몸을 실은 건 지난 20일. 여수에 살던 그는 최근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곳 춘천으로 이사를 했다. 우연히 춘천에 왔다가 ‘2천5백만원만 있으면 당신도 내집 마련’이라고 적힌 아파트 분양광고를 보고 내려가 곧장 이삿짐을 쌌다.

“20년 상환조건으로 융자를 받았으니까 월 30만원씩 꼬박꼬박 이자만 내면 쫓겨날 염려는 없을 것 같아서”였다. 세 아이를 둔 ‘가장’인 그에게 매년 오르는 전세값은 부담이 아닐 수 없었던 것.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렇듯 고정수입이 없는 그는, 집을 마련하기 위해 들어간 돈이며 애들 학비가 모두 ‘글빚’이라고 말했다. 출판사와 책을 내기로 계약을 하고 선금을 미리 받아썼기 때문에 글을 써줘야 할 ‘빚’이 쌓여있다는 것이다.

등단작 ‘씨앗불’에서부터 그 뒤 발표된 그의 소설들 중에는 ‘80년 광주’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여럿 눈에 띈다. 그에게 ‘80년 광주’는 어떤 의미일까.

“전남대 사대부고 1학년이었어. 그때 광주 사는 사람들은 전부 시민군이었지. 나도 매일 시내에 나가 아줌마들이 시민군들한테 밥해주는데 가서 불때주고 그랬거든. 내 나라 군인이 내 나라 사람을 죽인 거, 이걸 어떻게 봐야해? 그때 죽어서 어디에 버려졌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잖아. ‘광주사태’가 ‘광주민중항쟁’으로 바뀌었지만 아직도 광주는 진상규명이 안됐다고 봐. 그때 싸웠던 사람들이 ‘폭도’, ‘간첩’으로 몰리면서 광주가 전국적으로 ‘왕따’를 당한 거나 마찬가지잖아. 그게 광주사람들한테 다 ‘상처’가 된 거지.”

그는 “사람을 죽인 전두환이 월드컵 때 버젓이 귀빈석에 앉아 경기를 관람하는 게 용납되는 이 사회”에 대해 진저리를 쳤다. 시민군이었던 남편을 만난 것도 그에게 또 하나의 ‘상처’로 남았다. 감옥까지 갔다가 육체와 정신이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남편은 오랫동안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고 결국 이혼에까지 이르렀다.


공장아줌마에서 작가선생님으로

그는 아직도 “작가 선생님”이란 호칭이 여간 어색한 게 아니다. “소설 쓰기 전까지만 해도 다들 ‘아줌마’라고 불렀는데 소설 한편 쓰고 나니까 그때부터 ‘선생님’이 되었다.”
80년대 말, 애들 둘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온 그는 구로공단에서 미싱을 밟았다.

“협신양행이라는 데에서 탁아소를 운영하고 있어서 거길 취직했지. 근데 젖먹이 둘째는 탁아소에서도 안 받아주고 어디 맡길 데가 없는 거야. 공장에 안 나가면 살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할 수 없이 둘째를 아동일시보호소에 맡기고 일을 나갔지. 공장에 다니면서 너무 힘들었어. 공장에는 말을 안 했지만 결핵까지 걸려서 죽을 지경이었지. 큰애는 홍역에, 폐렴까지 걸리고. 그래서 공장을 그만 둘 결심을 하고 있는데 우연히 한겨레신문에 시민을 위한 문학교실을 한다는 광고가 난걸 보고 거길 나가는 둥 마는 둥 하면서 강의를 들었어. 어느날 글을 하나씩 써내라 해서 써서 냈더니 윤정모 선생이 잘 썼다고 하시더라구.”

그때 쓴 글이 ‘씨앗불’이다. 공장을 그만둔 그는 쪽방 한쪽에 미싱 한대를 임대해 들여놓고 가내수공업을 하면서 “미싱다이 위에서” 틈틈이 소설을 써나갔다. ‘씨앗불’이 <창작과비평>에 소개되면서 등단을 한 그는 창비에서 받은 원고료 60만원을 들고 다시 광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업종을 전환해” 글쓰기만 전업으로 하는 작가가 되었다.

그는 최근 소설집 <멋진 한세상>을 세상에 내놨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이 책에 실린 두편의 글이 실화라고 소개했다. 그중 단전단수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어린 남매의 이야기를 그린 ‘그것은 인생’은 그가 여수에 살 때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다.

“아파트라고 해도 수도나 가스 뭐 이런 것들이 공급되어야만 사람이 살 수 있잖아. 그런데 돈을 안 냈다고 해서 단전 단수조치하고 가스 끊고… 끔찍하지 않아? 그 비정함이. 그 아버지가 집을 나간 건 아버지가 있으면 애들한테 정부 보조금이 안나오니까 일부러 집을 나가준 거야. 근데 그때 기자들은 애들이 부모한테서 버림받았다 이렇게 썼더라구.”

돈이 없으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조차 유지할 수 없는 사회, 제 돈벌이에만 열중할 뿐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무관심. 그는 이런 ‘비정함’이 가득한 사회를 어떤 글에선가 “야만의 도시”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그가 앞으로 써보고 싶은 주제도 “법이나 제도로부터 누구보다도 먼저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그것으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되어 있는 현실”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DJ 한계

“올봄 ‘노무현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인 모임 지지 선언자 명단에 이름이 있던데요?”
“아, 그거. 소설 쓰는 한 선배가 오랜만에 전화해서는 노무현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인 선언이 있대. 그러면서 여기에 참여할 생각이 없냐고 묻더라구. 사실 그때만 해도 권영길씨에 대해 확신이 없었어. 노무현씨에 대해서도 그렇구. 그래서 내가, 노무현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나서서 지지할 생각도 없다고 말하고 끊었거든. 나중에 명단에 나왔더라구. 좀 황당했지. 근데 아는 선배가 한 일인데 뭐라고 항의하기도 그렇구 해서 그냥 있었어.”

“그때만 해도 권영길씨에 대해 확신이 없었”던 그는 지난 6.13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을 찍었다고 말했다. “시장후보도 나오고 다 나왔으면 다 찍었을텐데 많이 안 나왔더라구. 그래서 정당투표는 민주노동당에 찍고 다른 후보들은 민주당에 찍었지.”

그의 고향은 전남 곡성이다. 그에게도 김대중은 ‘선생님’이었던 때가 있지 않았나.
“전라도에서 유일한 정치지도자였잖아. 그때는 ‘선생님’이었지. 97년에도 김대중 찍었어.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그 사람도 어차피 보수정객일 뿐이잖아. 그동안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그 사람의 한계를 보면서 정말 이건 아니구나 싶더라구. 지금 봐, 노동자 농민들 생존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잖아. ‘우리편’이 아니라는 게 확연하게 드러나잖아. 노무현도 ‘리틀 김대중’이나 마찬가지야. 어차피 민주당은 정책정당이 아니잖아. 그런데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개혁적이라고 해서 찍으면 되겠어? 난 이제 확실하게 보수정당들에 대해서는 (기대를) 버렸어. 완전히.”

“민주노동당에 아직 가입을 못해서 미안하다”는 그가 민주노동당에 바라는 것 한가지. “노동자 농민들처럼 삶이 뿌리 채 뽑힌 사람들을 위한 정책, 민주노동당만이 할 수 있는 거잖아.”


공선옥이 쓴 작품들

소설집
<피어라 수선화>(1994)
<내 생의 알리바이>(1998)
<멋진 한세상>(2002)

장편소설
<오지리에 두고온 서른살>(1993)
<시절들>(1996)
<수수밭으로 오세요>(2001)

산문집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2000) 등
[ 101호] 8.26 ~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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