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내용규제, 다른 나라는 어떻게?
-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필요없다
<편집자주>인터넷국가검열반대공동대책위원회에서 인터넷내용규제와 관련된 외국사례를 본지에 제공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본지는 이 사례가 사이버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는 판단 아래 앞으로 4주 동안 이 글을 정리·요약하여 연재하기로 했다. 독자 여러분께 애정어린 열독(熱讀)을 부탁드린다,
<연재 순서>
① 연재를 시작하며 - 유럽
② 미국
③ 호주
④ 연재를 마치며
<편집자주>
지금까지의 그 어떤 매체보다 탈중심적이며 탈규제적이라는 인터넷. 인터넷을 둘러싼 논쟁 가운데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를 가장 뜨겁게 달구었던 주제는 인터넷내용등급제에 대한 것이었다. 원래 인터넷내용등급제는 픽스(PICS)라는 기술을 기반으로 한 내용분류시스템이지만, 한국에서는 지난 2000년 정부가 직접 청소년유해매체물을 대상으로 인터넷내용등급제를 시행하겠다고 나서면서 논란이 시작되었다. 반대자들은 인터넷내용등급제의 핵심 문제로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존재를 지적하고 있다. 반면 어떤 사람들에게 인터넷내용등급제가 설득력이 있는 이유도 역시 정보통신윤리위원회라는 존재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같은 국가 차원의 인터넷 내용규제 기구가 어째서 필요한 것일까? <네트워커>는 앞으로 네 차례에 걸쳐 다른 나라의 인터넷 내용규제 정책을 검토하면서 정보통신윤리위원회를 넘어서는 이 시대의 상상력을 북돋아보고자 한다. (필자 : 김유승 - 런던대 인터넷 내용규제 정책연구자)
시장기능에 무게를 싣는 미국의 인터넷내용규제
인터넷 규제정책에서 정부와 산업체, 민간기구가 협동하는 유럽의 공동규제모델과 달리, 시장기능에 좀더 무게를 싣고 있는 미국에서는 상업적 소프트웨어의 활용이 중요시되고 있다.
유럽의 내용등급제가 유럽연합의 강력한 지원 아래 공공적 성격의 제도로 개발되고 단일한 표준을 마련하고 있는 것과 달리, 미국에서는 시장에 여러 개의 서로 다른 내용등급서비스가 공존하면서 분산된 상업적 내용등급제가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부모, 교사들은 인터넷의 부적절한 정보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현실적인 기술적 해법으로 소위 '1세대 필터링'이라 불리는 차단-허용목록 기반의 필터링 소프트웨어(filtering software)를 선택하여 왔다. 지지자들은 필터링 소프트웨어의 효율성과 정확성이 괄목할만큼 향상되었으며, 시장의 인기가 이를 증명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몇 해 동안, 인터넷의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필터링 소프트웨어의 인기도 놀랄 정도로 성장하였다. 미국의 조사기관인 포레스트 앤 설리번(Frost& Sullivan)에 의하면, 2000년 미국의 필터링 소프트웨어 시장규모는 1억1천9백만 달러에 달하였으며, 2007년에는 1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필터링 소프트웨어 시장의 놀라운 성장에는 여러 가지 원인을 찾아볼 수가 있는데, 그중 하나로 통신품위법(CDA)으로 대표되는 일련의 내용규제입법을 둘러싼 논쟁을 들 수가 있다. 1995년 2월 민주당 제임스 엑슨(James Exon) 상원의원에 의해 제안되어, 인터넷의 저속한(Indecent) 표현을 형사처벌(징역2년 혹은 10만 달러의 벌금)로 규제하려 했던 이 법은, 비록 대법원에 의해 위헌 판결을 받았지만, 세계 최초의 인터넷내용규제법을 둘러싼 논쟁으로써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소중함을 새삼 일깨웠다는데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 법원이 인터넷의 인쇄매체적 성격을 인정, 인쇄매체가 가지고 있는 폭넓은 표현의 자유를 인터넷에서 보장하였다는 것은 크나큰 성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인터넷의 법적규제에 대한 여러 난점이 드러나면서 많은 사람이 인터넷에서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기술적 대안을 찾게 되었고, 이는 소프트웨어 출판업자들이 다양한 필터링 소프트웨어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도록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1세대 필터링 소프트웨어의 문제점
그러나 미국시민권연합(ACLU)과 전자개척자재단(EFF)을 비롯한 반대자들은 필터링 소프트웨어가 근본적인 기술적 결함으로 인하여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상업적 필터링 소프트웨어가 인터넷 사용자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논쟁적인 소수의 의견을 인터넷에서 사라지게 만들 것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1세대 상업적 필터링 소프트웨어는 이용자의 자율성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각 소프트웨어의 차단목록 데이터베이스가 지적재산권이 있는 사적 자산으로서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이용자는 소프트웨어가 어떠한 내용을 차단하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일부 소프트웨어는 사용자로 하여금 차단목록의 일부를 수정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지만 매우 제한적이어서 차단목록은 여전히 비밀 속에 숨어 있는 것이다.
실효성 면에서도 이들 소프트웨어는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하루에도 수백만 페이지가 새로 생겨나고 사라지는 인터넷 매체의 특성 때문에 대부분의 소프트웨어는 데이터베이스의 작성을 위해 인공지능기반의 로봇을 사용하고 있는데, 인간언어의 복잡성과 함축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계에 인터넷의 내용분류를 의존한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계에 의해 작성된 데이터베이스를 전문가가 이차적으로 확인작업을 하더라도 하루 수백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내용을 심의, 검증한다는 것은 필연적인 오류와 실수를 동반한다.
Consumer.org, Censorware, Peacefire와 같은 시민단체의 보고서에 의하면, 시장에서 유통되는 모든 필터링 소프트웨어에는 차단해야 할 것을 차단하지 못하는 언더 블록킹(Under Blocking)과 차단하지 말아야 할 것을 터무니없이 차단하는 오버 블록킹(Over Blocking)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등급데이타베이스도 이런한 문제점에서 한치도 자유롭지 못한 실정인데 비전문가의 검증작업이 이러한 문제를 한층 증폭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1세대 필터링 기술과 등급제 시스템을 한 상업적 프로그램 안에서 구현하는 지난 몇 해 동안의 흐름을 볼 때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등급 데이터베이스와 기술 지원 아래 개발 중이라는 소프트웨어들도 이러한 문제점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으리라 예상된다.
어린이 인터넷 보호법(CIPA)
하지만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2000년 미국 의회는 학교와 공공 도서관에 필터링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어린이를 위한 인터넷 보호법(Children's Internet Protection Act: CIPA)"을 제정했다. 1999년 1월 네 명의 공화당 상원의원에 의해 제안되고 이듬해 12월 노동, 건강, 인적 서비스 세출예산안의 일부로 입법된 이 법은 미국 전역의 공공도서관과 학교의 인터넷접속 컴퓨터에 필터링 소프트웨어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였는데,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연방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이 법은 형사처벌을 규정하고 있었던 이전의 두 인터넷 규제법안인 CDA나 COPA(Children's Online Protection Act)와 달리 형사처벌 없이 행정적인 규제만을 규정하고 있지만, 연방보조금에 운영비의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공공도서관과 학교에는 형사처벌 못지않은 강제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하겠다. 미국도서관협회(ALA)와 ACLU는 즉각 이법이 수정헌법 제1조가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며 소송을 제기하였다. 비록 하위법원의 결정이지만, 이미 1998년 버지니아의 라우던 카운티 공공 도서관의 사례에서 공공도서관의 필터링 프로그램 설치의 위법성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CIPA의 미래도 그리 밝지는 않다. 필터링 소프트웨어들이 가지고 있는 원천적인 기술적 결함과, 사서와 이용자들에 대한 권리침해 때문에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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