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민주화’ 앞세워 ‘항구적 패권’ 추진

미-사우디 관계 악화 배경과 전망

정상률/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연구원
2001년 9월 11일 슈퍼 테러 이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간의 전통적 우호관계에 금이 가고 있다. 왜 그런가? 미-사우디 관계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①냉전기간(1948~1990년)과 탈냉전 기간(② 1990~1999, ③ 2000~현재) 동안의 복잡한 국제관계 메카니즘의 변화를 이해해야 할 것이다.

냉전시대 미국의 중동정책 기조는 소련 팽창주의에 대한 봉쇄정책, 석유의 안정적 공급, 이스라엘 안전보장이었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은 두 기둥정책이었다. 미국의 대중동정책의 결과 사우디를 포함한 친미·친서구적인 걸프협력위원회(GCC) 국가들은 ‘배는 맥도널드와 코카 콜라로 채우고, 머리는 헐리우드로 채우는 서구화 현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냉전체제의 와해와 함께 발생한 걸프전은 새로운 국제관계의 형성을 예고했다. 현재시각(real time)으로 시청할 수 있었던 최초의 전쟁인 걸프전 당시 미국은 사우디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그리고 UN다국적군의 이름으로 참전하여 완승을 거두었다.

미국은 정보전쟁(C4I)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 후 많은 전쟁수행 자금을 거두어들이고 첨단무기를 판매함으로써 흑자를 냈고, 사우디를 포함한 GCC 국가들에 미군을 주둔시킬 수 있었다. 독재자 후세인으로부터 이슬람형 봉건체제의 안보를 보장해 준 대가로 석유의 안정적 공급, 중동지역에서의 균형자 역할이라는 외교목표도 달성할 수 있었다.

1933년 미국이 석유채굴권을 확보한 이후 60여년 동안 미-사우디 관계는 정략적 동거관계였다. 이 관계는 1991년 걸프전 때부터 미군이 사우디에 주둔한 이후 약 10여년 동안 준동맹관계로 발전했다. 한편 팔레스타인 문제는 미국이나 사우디 모두에게 딜레마를 안겨주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클린턴 정부)은 평화과정(1991년 마드리드협상~2000년 캠프데이비드협상)을 추진해왔고, 사우디는 아랍연맹을 주도하면서 팔레스타인 독립을 지지해 왔다. 이와같이 미국과 사우디는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에 1990년대 미-사우디 관계는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이스라엘에서 샤론이, 미국에서 부시가 정권을 잡고, 일방주의 강경노선을 추구하면서 중동문제가 복잡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2000년 10월에 발생하여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제2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봉기), 2001년 9.11테러사건은 여러 원인이 있지만, 일방주의 강경노선에 대한 반발이라는 성격도 띠고 있다.

한편 이슬람 성지인 메카 부근에 서구 십자군 세력으로 인식되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슬람원리주의 단체들에게는 투쟁의 명분이 되었다. 팔레스타인 문제, 사우디로부터의 미군철수, 사우디 왕정 타도는 빈 라덴 등 이슬람단체들에게는 목표달성을 위한 최고의 명분이었다.

이제 이슬람종주국 사우디 왕가는 미국의 일방주의 강경노선과 이슬람 아랍 형제국들, 국내외 이슬람단체과 국민들로부터 사면초가에 직면해 있고, 경제 상황도 악화되고 있다. 더욱이 쿠데타를 통한 왕권 교체를 몇 차례 경험했던 사우디 왕가는 현재 매우 취약한 상황에 있다.

사우디는 일부다처제이고 많은 왕자들(현재 5천명 이상)을 생산하기 때문에 왕자들간에 왕위계승 다툼이 자주 있었다. 사우드(53년)―파이잘(64년)―칼리드(75년)―파흐드(82년~현재)가 국왕으로 즉위했고, 파흐드 국왕이 노쇠하여 현재 파흐드의 이복 동생인 왕세자 압둘라(79세)가 실권을 행사하고 있다.

압둘라는 3월 27~28일 아랍연맹 22개국 정상회담에서 중동평화안을 제시하여 만장일치로 채택(부시는 이를 수용하지 않음)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많은 미제 신형무기를 도입하긴 했으나 이라크, 이란, 이스라엘 등 주변국들로부터의 사우디안보는 여전히 취약하다.

한편 미국은 사우디에 대한 석유의존도는 과거에 비해 낮추고, 테러와의 전쟁 이후 원유 공급지를 중앙아시아 및 러시아로 전환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9.11테러의 주범 대다수가 사우디 출신(19명중 15명)이고, 더욱이 사우디 왕자와 일부 자선사업가 등이 빈 라덴에게 자금(4천억원)을 후원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미 당국은 주장하고 있다. 9.11테러의 희생자 가족들이 이들을 대상으로 거액(1조 달러)의 집단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또 테러와의 전쟁에서 사우디는 적극적으로 미국을 지지하지 않았고,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테러와의 전쟁 선포 이후 미국은 이라크 공격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는 후세인 이후의 중동질서 재편이라는 미국의 대중동 외교정책 기조의 변화를 시도하기 위한 전략인 것으로 보인다. 부시는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전략가들의 입을 빌려서 정책변화를 언론에 흘리기 시작했다.

지난 8월 10일, 미 국방정책위원회 브리핑에서 랜드연구소의 한 연구원(노랜트 무라빅)은 사우디를 ‘악의 핵’이기 때문에 미국의 적이라고 주장했다. NAC(새로운 미국의 세기) 회장(윌리엄 크리스톨)이 지난 5월 의회 청문회에서 “미국은 테러리스트를 지원하는 사우디정권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이라크를 아랍권 정권교체의 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최근에 부시정부는 중동 11개국의 민주화 추진 의도를 내비쳤다. 중세기적인 이슬람 왕정국가들을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지원해 왔던 미국이 이제 와서 민주화를 추진하겠다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의 대외정책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요약하자면 미국은 중동에서의 사우디의 효용성에 대해 의심하고 있고, 사우디는 미국의 대중동 음모론을 의심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동정책 기조의 변화가 어떠한 모습을 보일지는 아직 예측하기 힘들지만, 탈냉전시대에 미국은 사우디의 대내외적인 취약성을 이용하여 중동에서의 항구적 패권을 추구할 것으로 판단된다.
[ 102호] 9.2 ~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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